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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파격.. 조안 리와 같은 사람들의 삶을 난 그렇게 부른다. 스물셋의 나이에, 서강대 초대학장이었던 미국인 신부와 결혼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녀. 결혼할 당시 그녀의 남편 켄은 49세로, 그녀와는 무려 26살 차이가 났고, 파란눈을 가진 미국인이었으며, 게다가 결혼이 금지된 가톨릭 사제였다. 그야말로 나이, 국경, 그리고 신품이 가로놓여 있는 종교의 틀까지 초월한 파격적인 결혼이 아닐 수 없었다.

세상 사람들의 냉대와 혹독한 시련 속에서, 그러나 그들은 사랑하였다. 결혼을 하느냐 못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보여준다. 세상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나 교회의 절대적인 교리에 입각한 많은 크리스찬들의 생각과는 달리, 켄은 하느님을 등진 것이 아니다. 가톨릭 사제인 그가 사제의 길을 포기하고 결혼을 했다 하여 하느님을 배신한 대죄를 지은 죄인으로 몰아간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그 뜻을 왜곡하여 해석하고 있는 '사람들'의 뜻이다. 누구보다 하느님께 의지했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고뇌에 고뇌를 거듭했던 켄은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였다. 누가 그를 단죄하려하는가? 교황? 주교? 신부? 신자? 만약 그러려 한다면, 그순간 그들은 하느님을 믿는 게 아니라, 교리를 믿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믿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뜻을 믿는 것이다.

가냘픈 체구에 남과 어울리기보단 혼자 책읽기를 좋아했던, 그러나 누구보다도 당찬 처녀였던 조안. 그리고 190센티미터를 훌쩍 넘는 큰 키에 일생을 타인에 대한 봉사에 바쳐온, 사랑과 열정이 넘쳐나는 멋진 사제였던 켄. 그 둘은 세상 사람들의 철저한 외면 속에서, 외로이 결혼식을 치르고 가정을 꾸려나간다. 눈물겹도록 힘든 시련의 날들을, 그들은 사랑하였으므로 이겨냈다. 더욱이, 그들의 사랑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했으며,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할 것이었다.

그들은 가정에서의 부부의 역할에 있어서도 파격적이었다. 일생을 남을 위해 사는 데 바쳐온 켄이 이재에 밝지 않은터라, 그를 대신해 조안이 돈을 벌었다. 국제적인 홍보회사 '스타 커뮤니케이션'을 설립한 그녀의 세계를 누비는 종횡무진 활약 또한 눈부시다. 아니, 그녀가 켄을 '대신'해서 돈을 벌었다는 것은 틀린 말일 게다.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는 것이 남자여야 한다는 것 또한 세상 사람들의 습관적이고 길들여진 잣대일 뿐이니까.

켄은 자녀의 교육을 맡는다. 두 딸에게 그는 아버지라기보단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의 모습이다. 나이 지긋이 먹은 '늙은' 아버지가 어린 딸들과 함께 욕조 속에서 벌거벗고 천진난만하게 뛰어 논다. 아기가 어떻게 생기냐는 8살배기 딸의 물음에, 사랑하는 두 남녀간의 정사로 아기가 생겨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주고는, 그와 관련하여 피임과 낙태, 심지어는 낙태에 대한 천주교단의 입장까지.. 그야말로 8살짜리 꼬마에겐 도저히 이해될 수 없을법한 내용들까지 한 시간이 넘도록 진지하고 성실하게 이야기해준다. 그 장면을 보고 무척 의아해하는 아내에게 그는 대답한다. 물론 이 아이들이 지금 당장은 내 말을 이해할 수 없겠지만,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고, 그때 지금 내가 했던 이야기가 도움이 될 거라고.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아이들이 내가 자신들을 완벽한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주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으리라는 점이라고.

켄은 언제나 그렇게 커다란 사랑으로 가정을 보살폈다. 변함 없이 따뜻하고 한없이 푸근한 자연과 같은 그의 큰사랑에, 책을 읽는 내내 몇 번이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들은 세상의 무서운 편견에 굴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을 향해 침을 뱉은 세상을 증오하지도 않았다. 어떠한 절망도 미움도 없었다. 단지 그들은 진심으로 사랑하였을 뿐이다. 서로를 사랑했고, 자신들의 삶을 사랑했고, 세상을 사랑했다. 그 모든 것들을 기꺼이 껴안고 사랑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름다운 파격.. 그들과 같은 삶을 난 그렇게 부른다. 그리고 난 그 아름다운 파격을 사랑한다.

스물셋의 사랑 마흔아홉의 성공 2

조안리 지음, 문예당(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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