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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당선자는 지난해 28일 ‘여중생 사망사건 범국민 대책위원회’ (이하 범대위) 지도부와 여중생의 부모를 만난 자리에서 “미국에 대해 굴복을 요구해서는 안된다”며 “촛불시위를 자제해 줄 것을 간곡히 호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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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 촛불시위 중단해달라"


다분히 12월 31일로 예정된 “100만 촛불평화대행진”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그의 이 발언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가뜩이나 북핵으로 위기감에 떨고 있던 사람들을 자극해 발걸음을 뚝 끊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내가 대표로 있는 단체의 한 회원은 29일 나에게 전화를 해 “한번도 촛불시위에 참석하지 못해 죄송스러워서 이번에는 꼭 참여하려고 했는데, 노 당선자의 말처럼 집회를 중지해야 하지 않을까요? 신문을 보니까 핵문제가 심각하던데…”라며 사실상 안 나올 마음을 비쳤다.

그녀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결국 노 당선자의 ‘촛불시위 자제’ 발언으로 인해 그 날의 집회는 그렇게 찬물을 뒤집어 쓴 꼴이 되었다. 그 일이 없었더라면 15만내지 20만명은 족히 모였을 법한 “100만 촛불평화대행진” 집회에 겨우 2만 가량이 모였으니 말이다.

‘촛불시위자제’ 발언으로 찬물 뒤집어 쓴
“100만 촛불평화대행진”


지난 6월 월드컵 때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응원을 벌인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국민의 저력’을 보여준 것이라 평했다. 거기 쏟아져 나와 ‘대~한민국’을 외치는 사람들이 애국자라는 둥, 민족의 저력이 확인되었다는 둥 온갖 찬사가 난무했었다.

언론에서도 많은 사람들과 외국인들의 인터뷰 기사를 실으며 한참 분위기를 띄웠고 일부 지식인들도 그 행렬을 거들었다. 마치 우리나라가 갑자기 엄청 자랑스러운 강대국이나 된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그 시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 당시 한 신문에 기고한 "월드컵에 묻힌 것들"이라는 시론에서 나는 “누구나 붉은 티를 입고 거리로 나오기는 쉽다. 그렇게 함으로써 애국자 대열에 합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군의 총 앞에서 옆의 친구가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끊임없이 새총으로나마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젊은이의 진한 애국심처럼 우리 국민의 붉은 함성은 그런 상황에서도 타올라야 그 애국심을 진정한 애국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쓴 적이 있다.

그것은 언론의 그런 여론몰이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었으며 월드컵 응원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애국심'이라는 시각에 동의할 수 없음을 밝힌 것이었다.

그리고 여중생 사망사건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대~한민국"과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온 국민이 환호작약하는 이 순간에도 미국의 선제공격론으로 인한 어두운 그림자는 한반도를 뒤덮고 있고, 우리의 국민적 자존심은 신음하고 있다. 우리가 이런 부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을 수없이 당하고도 항의할 생각조차 못하고 저자세로 일관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경이스러운 일이다.

무시당하고 사는데 이골이 났는지, 웬만한 푸대접과 무시에는 낯도 찌푸리지 않는다. (중략)

이제부터 우리는 SOFA가 우리의 삶과 민족적 자존심을 어떻게 옥죄고 있는지 공부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중략) 그리고 우리를 업신여기는 모든 부당한 것에 대해 당당히 항의할 줄 알아야 한다."


생각같아서는 여중생이 둘이나 미군 장갑차에 깔려죽었는데 그건 외면하면서 축구에만 열광하는 우리 국민에게 돌팔매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절망감 같은 것이 밀려왔다.

언론과 주위 사람들이 온통 환호성을 지르던 그 때 오히려 나는 우리 국민이 이 정도 밖에 안 되나 하는 생각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 때의 열기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그 날의 경험이 오늘의 ‘촛불시위’를 일구어낸 토대가 되었으며, 그 당시 거리로 뛰쳐나온 것 그 자체는 ‘국민의 저력’이라고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 사건(?)이 있었기에 오늘의 촛불시위가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말하자면 그 때의 미완의 저력이 지금의 촛불시위로 완성이 되고 있다고나 할까.

‘국민의 저력’ 일구어낸 ‘미완의 저력’- 월드컵 열풍

어쨌든 지금의 ‘촛불시위’는 진정한 우리 ‘국민의 저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월드컵 때 시청 앞에 모인 수십만의 응원인파보다 촛불시위에 모인 몇만명의 참여자에게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들이야말로 진정 용기와 애국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2002년 말의 ‘촛불시위’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은 계속되었어야 했다. 상전같이 군림하던 미국에게 실로 50여년 만에 우리의 목소리를 세계에 내지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현대사에서 6월항쟁 이후 최대의 ‘봉기’로 기록될 지도 모른다. 미국의 오만에 항거하는 조용한 봉기.

그러나 그 국민적 저력이 촛불시위를 통해 힘을 발휘하기도 전에 노무현 당선자의 “시위자제” 발언이 찬물을 끼얹었다. 현실적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

나는 노 당선자의 마음을 이해는 한다. 북핵문제로 절박해진 상황에서 촛불시위를 계속하면 미국내의 여론이 악화되고, 한미공조가 흐트러지고 강경파가 득세하여 미국이 독자행동을 할 수도 있으리라는 예상,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가 당선자의 입장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을 이해는 한다.

그리고 그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고 나서 그에게는 큰 압력이 가해졌을 것이다. 그 압력은 미국에서, 또는 미 대사관에서 왔을 수도 있고,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미국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참모진으로부터 왔을 수도 있다. 그리고 시작하기도 전부터 껄끄러운 미국과의 관계를 '촛불시위‘ 처리(?)를 통해 나름대로 부드럽게 해보자는 의도도 깔려 있을 것이다.

주한미군에서 한국정부에 요구한 시위대책 마련 요구도 그에게는 압력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그 압력을 견뎌내고 차라리 침묵을 지켰어야 옳았다는 생각이다. “미국에 굽실거리지 않겠다”던 그의 후보 시절의 행보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오히려 촛불집회는 그냥 두었어야 했다.

나는 앞에서 상정한 촛불시위와 미국의 강경책과의 관계를 납득하기 어렵다. 얼핏 심정적으로는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러나 우리의 촛불시위가 어떻게 미국의 강경책을 유발하는지 그 메카니즘을 이해하기 어렵다. 아니, 오히려 그 역이 아닌가. 우리의 촛불이 강렬하게 타오르면 타오를수록 미국의 수순은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는 우리의 촛불시위를 그렇게 ‘이용’했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그리고 우리의 의사표시가 평화적이고 명분이 충분한 만큼 당당하게 나갔어야 했다. 그런데 촛불시위를 스스로 북핵문제와 연결시켜 우리 스스로 그 당당한 주장을 접도록 한 것을 나는 지독히 아깝고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으며 한편 분한 마음조차 든다. 우리에게 스스로 알아서 기게 만드는 노예의식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납득할 수 없는‘촛불시위’와 미국의 강경책과의 관계

어쨌든 이렇듯 반세기만에 이제 막 피어오르려는 우리 국민의 ‘민족적 자존심’의 발현은 당선자의 ‘촛불시위자제’ 발언으로 인해 좌절되었다. 지금 촛불시위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다. 지리멸렬, 갈라져 있다.

이는 엄청난 손실이다. 계량할 수 없을 만큼 큰 손실이다. 언제 어떻게 우리 국민이 미국에 대해 이렇듯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단 말인가. 노 당선자는 무엇으로 이 손실을 만회할 생각인지, 미국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낼지 궁금하다.

지리멸렬 좌절된 촛불시위, 그 엄청난 손실

노 당선자는 대선기간 중 “깽판” 발언이라든지, 선거전 막판의 “충청도” 발언이라든지, 몇번의 실언으로 고생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발언들은 ‘실언’이라기보다는 보수언론의 왜곡으로 ‘실언화’된 것이 대부분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그 어떤 발언보다도 이번 발언은 큰 실언이라고 생각한다.

노 당선자의 발언이 나오자 벌써 경찰의 태도가 돌변했다. 1일 광화문 시민 열린마당의 추모 농성단을 강제해산하고, 이어 2일엔 경찰청장이 “촛불집회가 폭력화 정치화하고 있어 강력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부녀자, 초·중·고생에 꼬마들까지 참여한 집회가 폭력화, 정치화된다? 이게 말이 되는가? 전 같으면 촛불집회에 대한 국민의 불같은 성원과 당선자의 우호적 입장으로 인해 감히 입에 담기 힘들었던 말이다. 촛불든 시민이 무슨 불법을 저질렀단 말인가. 또, 설사 일부 시민이 불법적 행위를 했다고 해서 그렇게 강경진압을 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노 당선자는 지난 해 28일 범대위 지도부와 여중생의 부모를 만난 자리에서 분명 “‘선 북핵 후 소파’의 수순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자 한다”고 하면서 “나에게 시간을 줄 것을 부탁한다”고 말하였다.

나는 이제 지켜볼 것이다. 국민적 에너지의 분출과 역동성을 끊어버리고 그가 어떤 큰 일을 이루어낼지, 그것이 과연 무엇일지 지켜보아야 하겠다.

지켜봐야 할, 좌절된 촛불시위에 대한 대가

나는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돕기 위해 이번에 난생 처음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낯선 선거판에 뛰어든 이유는 수구냉전적 세력의 재집권을 막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제 큰 목적은 달성되었다. 노무현 당선자가 잘 해나가길 비는 마음 간절하다. 그가 5년후 성공한 대통령으로서 박수받으며 청와대에서 나오길 빈다.

도울 일이 있으면 당연히 도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가 아닌, 그의 잘잘못을 가리고 적절한 비판을 가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제 그에 대한 크고 작은 실망 시리즈를 시작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대자보>와 하니리포터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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