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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맞이굿, 오방기 중 홍제를 뽑고 즐거워하는 김매물 만신과 관객
새해맞이굿, 오방기 중 홍제를 뽑고 즐거워하는 김매물 만신과 관객 ⓒ 김기
굿 연구소(소장 박흥주)와 김매물 만신 팬클럽이 주최하는 '새해맞이굿'이 12월 31일 오후 1시부터 안국동 '철학마당 느티나무 카페'에서 열렸다. 올해로 제3회째를 맞았다. 무박2일간에 걸쳐 진행된 이번 굿은 이튿날인 새해 1월 1일 서울 남산 팔각정에서 열린 '일월맞이'로 막을 내렸다.

외국문화의 범람으로 우리민족의 전통문화가 말살되고 억눌려 왔던 터라 '굿'이라고 하면 퍼뜩 '혹세무민', '미신' 같은 용어를 먼저 떠올리기가 쉽다. 더욱이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의 음악으로 올드랭사인이거나 베토벤 환희의 송가 따위가 당연하다고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또한 종교라고 한다면 으레 거창한 건물을 하늘 높이 세운 대형교회나 웅장한 사찰만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 우리들 의식의 현주소이다. 한정되고 짧은 기사 한 꼭지에서 그 모든 문제들을 아우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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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맞이굿-타살군웅굿 돼지를 삼지창에 꽂아 세우는 의식으로 돼지가 서야 영웅들이 치성을 받아들인 것이다
새해맞이굿-타살군웅굿 돼지를 삼지창에 꽂아 세우는 의식으로 돼지가 서야 영웅들이 치성을 받아들인 것이다 ⓒ 김기
단지 그러한 문제 의식을 염두에 두고 무박 2일로 진행된 새해맞이굿의 과정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굿이란 무엇인가'라는 단순한 질문에 대한 더 단순한 대답 한 대목을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옛말에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라'라는 말이 있다. 이것 저것 참견하고 나서지 말고 그 '현장'에서 잘 지켜보고 있다가 당시에는 별식이었던 떡을 먹을 수 있었던 곳이 바로 '굿판'이었다.

굿판에서 떡을 얻어먹을 수 있는 자격이라고는 단지 그 자리에 함께 하는 것뿐이다. 무당은 여러 신들을 위해서 우선 상을 차리지만 궁극적으로는 굿판에 모여든 사람들과의 먹거리 축제를 벌이는 것이었다.

먹고 사는 일 자체가 전체 식솔들의 최선의 목표였던 조상네 삶 속에서 굿은 신명나는 축제였고 주린 배를 술과 떡으로 채울 수 있었던 '횡재'의 자리였다. 다시 말하면 굿은 잘 먹는 것이다. 잘 먹었으니 신명이 넘쳐나는 우리 민족들은 자연 잘 놀았던 것이다.

새해맞이굿- 오방기를 들고 춤을 추는 김매물 만신
새해맞이굿- 오방기를 들고 춤을 추는 김매물 만신 ⓒ 김기
굿은 이중 구조를 가진다. 굿을 의뢰한 사람과 굿을 주제하는 무당에게는 종교적인 신의 의미가 중요하며 목적이지만 굿판의 주요 요소 중 하나인 구경꾼들에게는 그보다는 먹거리와 볼거리가 함께 제공되는 마을 단위의 소축제인 것이다.

자, 이제 모든 이들의 어머니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니는 김매물 만신에 대해서도 간단한 소개를 곁들인다. 올해로 일흔 여섯이신 김매물 만신은 인천 신기촌에서 거의 사십년 동안 굿을 비롯한 무속의 길을 걸어오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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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맞이굿-굿 한거리가 끝난 후의 김매물 만신의 땀에 젖은 얼굴
새해맞이굿-굿 한거리가 끝난 후의 김매물 만신의 땀에 젖은 얼굴 ⓒ 김기
김매물 만신은 뱃굿과 물진오기굿으로 유명하다. 인천 부둣가 중선배들의 뱃굿은 도맡아한다고 할 만큼 명성이 높았으며, 물에 빠져죽은 혼을 건져내 저승천도해 주도록 인도해주는 물진오기굿을 할 때면, '진짜 귀신이 있다'는 확신을 갖도록 만들 정도로 영험하다는 평판을 받아왔다.

김매물 만신의 굿은 일단 아름답다. 또한 기품이 있으며 굿판 거리에 따라 적절하게 표현되는 표정은 지켜보는 사람의 정서적 동화를 기꺼이 이끌어낼 만큼 따뜻하고 우아한 춤솜씨는 전반적으로 긴 굿판의 일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다.

또한 10세 중반에 신내림을 받은 박인겸 박수는 재치 있는 익살과 재담, 분명한 발성과 성음을 가진 몸을 아끼지 않는 굿바라지이다. 순발력 있는 임기응변과 위기 대처 능력의 소유자 박인겸, 그가 들어선 굿판은 항상 생기가 넘치고 웃음이 있으며 막힘이 없는 진행이 이뤄진다.

그 외에도 김매물 만신의 신딸인 김선희 만신과 장구이모 차영녀, 징이모 김인분 등의 연행패는 오래 인천을 중심으로 전통의 굿을 이어온 소중한 굿의 자산이다.

사실 이 분들의 소개를 이렇게만 하고 말 수는 없다. 민족문화와 민족사상에 관심을 가진 분들은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의 내용은 굿연구소(www.kut.or.kr)의 김매물만신 링크 페이지를 들러보기 권한다.

새해맞이굿-작두거리, 작두를 들고 춤을 추는 모습
새해맞이굿-작두거리, 작두를 들고 춤을 추는 모습 ⓒ 김기
자, 본격적으로 새해맞이굿으로 들어가 보자. 우선 새해맞이굿은 굿 연구소(소장 박흥주)의 주관하에 시작되었다. 걸립희망서는 새해에 바라는 자신의 소망을 적어 제출하면 김만신이 인천 신당에서 7일간의 치성을 무료로 올려준다.

그렇게 치성이 끝나고 12월 31일 안국동 철학마당 느티나무 카페에 거나한 굿상이 차려지면서 무박2일의 긴 굿판이 시작되었다. 1월 1일 남산 팔각정에서의 일월맞이까지 14거리의 굿거리가 준비되었지만 모두를 다 소개하기는 어렵고 그중 몇 거리만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먼저 군웅타살거리이다. 피를 흘리고 돌아가신 영웅들의 혼을 불러다 위로하고 대접함으로써 앞으로의 액운을 없애달라고 기원하는 대목이다.

그 이전에 거행되는 신청울림, 상산맞이, 초부정, 칠성굿들은 어찌보면 일반적인 것이나 이 타살군웅굿은 보는 이들에게 신비함과 재미를 함께 제공하는 부분이며 이 대목에서부터 굿의 종교적 현상에 대한 확인을 가능케 해준다.

새해맞이굿-작두 위에서 장군님의 말씀을 전하는 김매물 만신
새해맞이굿-작두 위에서 장군님의 말씀을 전하는 김매물 만신 ⓒ 김기
타살거리를 통해 군웅들의 넋이 잘 위로되었으면 대감거리로 넘어간다. 즉, 듬직한 영웅들이 지켜주기로 약조를 하였으니 신명나게 한판 놀아보는 대목이다.

이 대감거리 끝에는 걸립을 하게 되는데, 이 대목에서 무당과 구경꾼의 경계를 슬그머니 풀어버리는 행위가 수행된다. 걸립을 통해 약간의 돈을 내고 무당을 따라 연행에 참여함으로써 순식간에 대동을 이루는 것이다.

대감거리가 끝난 후 들뜬 장내를 조금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다음거리가 무당으로서는 목숨을 걸고 임하는 작두거리이기 때문이다. 굿이 열리기 전날 무당은 작두날을 스스로 벼른다. 이때 다른 사람이 보면 부정이 타서 굿이 잘 되지 않을 뿐더러 작두를 탈 때 무당이 위험에 빠지게 된다.

만신이 작두를 타는 이유는 작두날이 나쁜 기운을 끊고 베어 굿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그 영험을 끼치기 때문이다. 때문에 무당이 작두타기에 성공하고 실패하고는 무당 자신만의 문제가 아닌 그 자리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사항이다. 그러기에 이 작두타기에는 모두가 긴장하게 된다.

새해맞이굿-익은타살거리, 박인겸 박수의 모습
새해맞이굿-익은타살거리, 박인겸 박수의 모습 ⓒ 김기
새해맞이굿-섬세하고 세련된 박인겸 박수의 춤
새해맞이굿-섬세하고 세련된 박인겸 박수의 춤 ⓒ 김기
좁은 실내를 벗어나 종로경찰서 맞은편 인도에 설치된 높은 작두대에 오른 김매물 만신은 성공적으로 작두타기를 하여 지켜보는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었다.

이렇게 작두를 타고 난 이후에는 사람들에게 공수를 주는데, 공수는 쉽게 이야기하면 무당에 임한 신이 무당의 입을 통해 사람들에게 말을 해준다는 것이다.

이날 공수받기의 줄은 길게 이어졌고 공수내리기가 끝난 후에는 자연스럽게 휴식 같은 난장거리가 벌어졌다. 굿의 구경꾼이었던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노래와 춤으로 객중의 흥을 돋우고 피로를 푸는 시간이다.

이날 난장거리의 중심은 '또랑광대'로 유명한 수퍼댁 김명자의 창작판소리였다. 굿판이 벌어진 느티나무 카페에 모인 80~90명의 구경꾼들은 막걸리에 거나해진 기분을 제나름의 추임새와 거나한 웃음으로 마음껏 풀어제꼈다.

새해맞이굿-또랑광대 수퍼스타 수퍼댁의 막간 난장
새해맞이굿-또랑광대 수퍼스타 수퍼댁의 막간 난장 ⓒ 김기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미 모든 순서가 자정 이전에 끝났어야 하는데 각각의 판이 길어지는 바람에 필자가 가장 무게를 두었던 미선이 효순이 길가르기는 새벽 2시가 한참 지나서 시작되었다.

이미 99년 서대문 형무소에서 억울하게 숨져간 독립투사들의 해원을 풀어준 경험이 있기도 한 김매물 만신을 통해 미선이 효순이 두 어린넋을 풀어주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다.

두 영가의 옷을 겹쳐 입고 시작한 길닦음은 중간에 이승을 떠나기 싫어하는 두 넋의 억울함에 사무친 김 만신의 혼절로 위기를 맞기도 하였지만 다행스럽게도 무난하게 마칠 수 있었다.

김매물 만신의 이번 길가르기는 영가의 사망일이 백일이 지났기 때문에 수왕굿에 해당한다. 해서 길게 늘어뜨린 베를 세 번 갈라 넋을 달래고 천도하게 된다.

수왕굿의 진행을 수왕을 가르고 (목에서) 따서 다시 풀고 들고 뒤로 넘겨준다. 에는 목에 대전고개를 열어달라는 것이며 뒤로 넘기는 것은 단발령을 넘기는 것이다.

새해맞이굿-미선이 효순이 길가르기, 두넋의 옷을 겹쳐 입은 김매물 만신에게 빙의하여 서럽게 우는 미선이와 효순이
새해맞이굿-미선이 효순이 길가르기, 두넋의 옷을 겹쳐 입은 김매물 만신에게 빙의하여 서럽게 우는 미선이와 효순이 ⓒ 김기
이때에 부르는 노래 가사이다.

'산아산아 '수영산아, 이태백이 청술네야,
오마하고 간 님은 유달리도 좋은 술을 잡쉈는지
무지공산에 누운 혼령.
어느 누구라 나를 깨워주나.
동남 서풍이 나를 시시로 깨워주리라.'

'새야새야 뻐꾹새야
서낭나무 죽어서 꽃도 안피고 잎도 안피는데
너는 무엇을 보고 짓느냐.
한번 간님은 잎이 피고 꽃이 피면 오려나.
다시 올길이 가히 없구나.'


새해맞이굿-미선이의 넋을 천도하는 길가르기 장면
새해맞이굿-미선이의 넋을 천도하는 길가르기 장면 ⓒ 김기
새해맞이굿-수왕가르기, 길을 세 갈래로 갈라 목까지 엮어 감았다가 다시 풀어낸다. 이 과정에서 김매물 만신은 탈진하기도 하였다.
새해맞이굿-수왕가르기, 길을 세 갈래로 갈라 목까지 엮어 감았다가 다시 풀어낸다. 이 과정에서 김매물 만신은 탈진하기도 하였다. ⓒ 김기
미선이 효순이 길가르기에는 설움과 분노에 북받힌 많은 사람들이 오열했으며 좌중은 새해를 맞는 대동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 흘리는 눈물과 끓어오르는 분노로써 알게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길가르기가 끝나니 시간이 벌써 새벽 4시이다. 일월맞이굿을 위해 사람들은 풍물과 무구를 챙겨 남산으로 향한다. 아직 동트기 전인 남산 정상 팔각정은 매서운 추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새해맞이굿-일월맞이굿, 남산 팔각정에서의 굿
새해맞이굿-일월맞이굿, 남산 팔각정에서의 굿 ⓒ 김기
젊은이들도 두터운 털옷을 껴입고도 추워 덜덜 떠는데 일흔을 한참 넘긴 김매물 만신은 팔 안쪽이 그저 비치는 얇은 옷을 걸치고도 떨지도 않고 추운 기색도 없이 새해를 맞는 첫날의 기원을 마친다.

이어서 풍물패들의 해를 재촉하는 힘찬 연주가 시작되면서 무박 2일의 새해맞이굿의 긴 여정이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올해는 어려운 경제사정 때문에 굿판을 열리가 무척 힘겨웠다고 했다. 특히 대통령선거와 여중생 압사사건 시위 등의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터져 국민적 관심이 그리로 쏠린 탓도 있었다. 총21시간에 걸친 김매물 만신의 계미년 새해맞이굿은 주변 사람들의 정성으로 모아 올해도 그 명맥을 이어갈수 있게 됐다.
새해맞이굿-전주서 올라온 관객의 즉흥 바라춤
새해맞이굿-전주서 올라온 관객의 즉흥 바라춤 ⓒ 김기
새해맞이굿- 모든 굿이 끝나고 해를 기다리는 풍물패들의 힘찬 모습. 해야 떠라 해야 떠라
새해맞이굿- 모든 굿이 끝나고 해를 기다리는 풍물패들의 힘찬 모습. 해야 떠라 해야 떠라 ⓒ 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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