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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에 2003년 첫 해가 솟았다. 불타는 햇살이 모든 번민을 쓸고 갔으면….
태백산에 2003년 첫 해가 솟았다. 불타는 햇살이 모든 번민을 쓸고 갔으면…. ⓒ 권기봉
국민적 자존감을 일깨워준 2002 한일월드컵 4강 진출, 국민들의 사회참여 욕구를 확인한 ‘촛불시위’, 새로운 시작과 변혁의 시발을 알린 제16대 대통령 선거. 2002년은 우리들에게 많은 희망을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결코 간단치 않은 과제를 남긴 해이기도 하다.

개인사적으로도 오는 2003년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해이기에 여느 때와 다르다. 길지 않은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사회로 돌아오는 해가 바로 2003년이다.

새해 소원도 빌겸 사회복귀를 앞두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리라는 생각에 강원도 태백산(太白山)을 찾았다. 서울에서 4시간 이상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지만, 동해 일출과는 또다른 웅대한 맛이 있기에 친구와 선배 몇몇과 함께 길을 나섰다.

해발 1567m의 태백산은 그다지 높지도 않고 험하지도 않은 산에 불과할지 모르나, 낙동강 1천3백리의 물길이 시작되는 곳이자 514km를 내리 달리는 한강 발원지 ‘검룡소’가 근처라는 점에 주저 없이 태백산을 택했다.

탄광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든 이래 태백이나 고한 등은 이미 우리들 뇌리에서 잊혀진 지 오래다. 그저 1월 1일마다 붐비는 풍경이 강원도의 모습이 되어 버렸다. 태백역은 이른 새벽부터 일출을 보기 위한 사람들을 싣기 위한 택시들로 붐빈다.
탄광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든 이래 태백이나 고한 등은 이미 우리들 뇌리에서 잊혀진 지 오래다. 그저 1월 1일마다 붐비는 풍경이 강원도의 모습이 되어 버렸다. 태백역은 이른 새벽부터 일출을 보기 위한 사람들을 싣기 위한 택시들로 붐빈다. ⓒ 권기봉
산바람이 아무리 매서워도 일출을 보기 위한 이들의 기를 꺾진 못한다. 문수봉 정상에 일출을 보기 위한 등산객들이 자리를 잡았다.
산바람이 아무리 매서워도 일출을 보기 위한 이들의 기를 꺾진 못한다. 문수봉 정상에 일출을 보기 위한 등산객들이 자리를 잡았다. ⓒ 권기봉
2003년 1월 1일 오전 7시 10분 경. 아직 해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벌써 동쪽 하늘이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저기 저 그믐달은 태양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할 판이다.
2003년 1월 1일 오전 7시 10분 경. 아직 해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벌써 동쪽 하늘이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저기 저 그믐달은 태양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할 판이다. ⓒ 권기봉
관광버스를 대절해 태백산을 찾은 산악회도 적지 않았다. 특히 매년 첫날은 ‘산사람’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일출을 보기 위해 산을 찾는다. 산에서 보는 일출, 한번 경험하면 다음 해에 또 찾게 되는가 보다.
관광버스를 대절해 태백산을 찾은 산악회도 적지 않았다. 특히 매년 첫날은 ‘산사람’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일출을 보기 위해 산을 찾는다. 산에서 보는 일출, 한번 경험하면 다음 해에 또 찾게 되는가 보다. ⓒ 권기봉
사회의 주축에서 이제는 점차 밀려나고 있는 50대. 서울에서 왔다는 샐러리맨이 빌고 있는 소원은 무엇일까. 태백은 홀로 오른 그에게 소원이 무어냐 묻는다.
사회의 주축에서 이제는 점차 밀려나고 있는 50대. 서울에서 왔다는 샐러리맨이 빌고 있는 소원은 무엇일까. 태백은 홀로 오른 그에게 소원이 무어냐 묻는다. ⓒ 권기봉
해가 떠오르면 이제 계곡과 능선도 잠에서 깨어난다. 그들에게 있어 신년에 뜨는 첫 해는 별반 의미가 없겠지만, 우리는 여러 의미를 부여하며 불안을 떨쳐내고자 한다.
해가 떠오르면 이제 계곡과 능선도 잠에서 깨어난다. 그들에게 있어 신년에 뜨는 첫 해는 별반 의미가 없겠지만, 우리는 여러 의미를 부여하며 불안을 떨쳐내고자 한다. ⓒ 권기봉
태백산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산으로, 흰 구름과 검은 능선, 매서운 바람이 겹겹이 포개어지고 첩첩이 이어진다.
태백산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산으로, 흰 구름과 검은 능선, 매서운 바람이 겹겹이 포개어지고 첩첩이 이어진다. ⓒ 권기봉
해발 1,517m 문수봉. 바로 옆의 천왕단(天王壇)보다는 다소 낮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그곳보다는 장쾌한 태백과 상서로운 태양에 몰입하기에 이만큼 완전한 곳이 없었다.
해발 1,517m 문수봉. 바로 옆의 천왕단(天王壇)보다는 다소 낮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그곳보다는 장쾌한 태백과 상서로운 태양에 몰입하기에 이만큼 완전한 곳이 없었다. ⓒ 권기봉
문수봉에서 천제단(天祭壇)은 지척이다. 멀리 사람들로 북적이는 천왕단이 보인다. 이제 해 뜨는 모습을 보았으니 천왕단을 한번 찾아볼 일이다.
문수봉에서 천제단(天祭壇)은 지척이다. 멀리 사람들로 북적이는 천왕단이 보인다. 이제 해 뜨는 모습을 보았으니 천왕단을 한번 찾아볼 일이다. ⓒ 권기봉
겨울은 생명이 움트는 시간이다. 결코 생명의 활기를 잃는 시기가 아니다. 아직 움은 트지 않았지만 초목은 봄에 피울 꽃과 새싹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특히 침엽수나 대는 아예 잠을 자지 않고 꿋꿋이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있다.
겨울은 생명이 움트는 시간이다. 결코 생명의 활기를 잃는 시기가 아니다. 아직 움은 트지 않았지만 초목은 봄에 피울 꽃과 새싹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특히 침엽수나 대는 아예 잠을 자지 않고 꿋꿋이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있다. ⓒ 권기봉
태백산에 오른 이들은 주목과 관목들 사이로 여유 있는 발걸음을 옮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과 함께…
태백산에 오른 이들은 주목과 관목들 사이로 여유 있는 발걸음을 옮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과 함께… ⓒ 권기봉
“산을 사랑합시다!”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나뭇가지에 이처럼 조그마한 표식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한 산악회 회원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데, 문화유적에 남겨져 있는 낙서들과는 달리 그렇게 정겨워 보일 수 없다.
“산을 사랑합시다!”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나뭇가지에 이처럼 조그마한 표식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한 산악회 회원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데, 문화유적에 남겨져 있는 낙서들과는 달리 그렇게 정겨워 보일 수 없다. ⓒ 권기봉
천왕단 아래의 하단(下壇)은 옛사람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3기의 천제단 중 하나로, 산간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적석단보다 약간 크다. 천제단의 다른 두 단인 천왕단과 장군단(將軍壇)에 비해 작은 규모로, 지금은 그 기능을 잃었다.
천왕단 아래의 하단(下壇)은 옛사람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3기의 천제단 중 하나로, 산간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적석단보다 약간 크다. 천제단의 다른 두 단인 천왕단과 장군단(將軍壇)에 비해 작은 규모로, 지금은 그 기능을 잃었다. ⓒ 권기봉
높이가 24m에 이르는 천왕단은 3기의 천제단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돌로 만든 단이 9단이어서 9단 탑이라고도 불리는데, 매년 개천절마다 여기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제당골과 당골계곡이 만나는 당골광장 부근에 단군을 기리는 단군성전(檀君聖殿)이 있다.
높이가 24m에 이르는 천왕단은 3기의 천제단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돌로 만든 단이 9단이어서 9단 탑이라고도 불리는데, 매년 개천절마다 여기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제당골과 당골계곡이 만나는 당골광장 부근에 단군을 기리는 단군성전(檀君聖殿)이 있다. ⓒ 권기봉
『삼국사기』 등에 의하면 신라가 태백산을 삼신오악 중의 하나인 북악으로 여겨 제사를 받들었다고 한다. 사진은 그러한 제사를 지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천제단 중 하나인 장군단이다.
『삼국사기』 등에 의하면 신라가 태백산을 삼신오악 중의 하나인 북악으로 여겨 제사를 받들었다고 한다. 사진은 그러한 제사를 지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천제단 중 하나인 장군단이다. ⓒ 권기봉
소나기재 근처에 조선 제6대 왕인 단종(端宗, 1441~1457)의 능인 '장릉(莊陵)'이 있다. 사진은 단종비각(端宗碑閣)으로, 1457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죽은 단종이 태백산의 산신령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그런 단종을 위해 매년 음력 9월 3일에 제를 지내고 있다.
소나기재 근처에 조선 제6대 왕인 단종(端宗, 1441~1457)의 능인 '장릉(莊陵)'이 있다. 사진은 단종비각(端宗碑閣)으로, 1457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죽은 단종이 태백산의 산신령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그런 단종을 위해 매년 음력 9월 3일에 제를 지내고 있다. ⓒ 권기봉
단종비각의 현판으로 오대산 월정사 탄허가 쓴 것이다. 비각 안의 비에 쓰여져 있는 ‘朝鮮國(조선국) 太白山端宗大王之碑(태백산단종대왕지비)’라는 비문 역시 그가 쓴 것으로 전해진다. 이 비각은 1955년 비각 아래에 있는 망경사(望鏡寺) 박묵암 스님이 세웠다.
단종비각의 현판으로 오대산 월정사 탄허가 쓴 것이다. 비각 안의 비에 쓰여져 있는 ‘朝鮮國(조선국) 太白山端宗大王之碑(태백산단종대왕지비)’라는 비문 역시 그가 쓴 것으로 전해진다. 이 비각은 1955년 비각 아래에 있는 망경사(望鏡寺) 박묵암 스님이 세웠다. ⓒ 권기봉
단종비각 바로 아래 있는 망경사다. 일반적인 가람배치와는 달리 ‘一’ 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아무래도 산 사면에 지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단종비각 바로 아래 있는 망경사다. 일반적인 가람배치와는 달리 ‘一’ 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아무래도 산 사면에 지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 권기봉
언제 누가 죽었는지 모르는 무덤, 호식총(虎食塚)이다. 즉 어느 때인가 호랑이에 의해 죽은 자의 무덤으로, 죽은 자의 유구를 찾아 그 자리에서 화장을 하고 이처럼 돌로 무덤을 만들었다 한다. 물론 요즈음 태백산에 호랑이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언제 누가 죽었는지 모르는 무덤, 호식총(虎食塚)이다. 즉 어느 때인가 호랑이에 의해 죽은 자의 무덤으로, 죽은 자의 유구를 찾아 그 자리에서 화장을 하고 이처럼 돌로 무덤을 만들었다 한다. 물론 요즈음 태백산에 호랑이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 권기봉
당골계곡 입구에 서 있는 이 돌장승은 현 자리에서 북쪽 약 5백m 지점 용담(龍潭) 위쪽 장승둔지라는 솔밭에 있었는데 관광객들이 던진 돌멩이로 인해 점점 묻혀만 갔다. 그러던 것을 장경사로 옮겨 미륵불로 모시게 되었고, 이후 1987년 태백문화원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놓았다.
당골계곡 입구에 서 있는 이 돌장승은 현 자리에서 북쪽 약 5백m 지점 용담(龍潭) 위쪽 장승둔지라는 솔밭에 있었는데 관광객들이 던진 돌멩이로 인해 점점 묻혀만 갔다. 그러던 것을 장경사로 옮겨 미륵불로 모시게 되었고, 이후 1987년 태백문화원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놓았다. ⓒ 권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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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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