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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성당의 돔으로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 동양과는 달리 서양 건축에서는 빛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특성을 갖는다.
바티칸 성당의 돔으로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 동양과는 달리 서양 건축에서는 빛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특성을 갖는다. ⓒ 권기봉
과학에 흥미 있는 이는 과학책을 들춰보고, PC게임에 관심 있는 이라면 게임관련 서적을 들춰보게 된다. 흥미 있는 분야가 있으면, 그것이 자신의 전공이든 일반 취미이든 간에 관련 서적을 탐독하게 되나 보다.

문화예술 관련 분야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 부문에 흥미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개 ‘대원사’나 ‘돌베개’, ‘효형출판’, ‘열화당’ 등에서 내는 서적들을 주로 찾을 것이다. 필자도 요즈음 나름대로 문화예술 분야에 지분거리는 중이라 위 출판사들에서 내는 책들을 특히 주의 깊게 보고 있는 중이다.

행인지 불행인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이후 일반인들 사이에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유난히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각종 답사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이런 현상은 도서 시장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식도락 여행 서적 일색이던 출판시장에도 품격 있는 문화예술 관련 서적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한 나라의 문화예술을 다룸에 있어 ‘건축’ 분야를 무시할 수 없는데, 실제로 서점에만 가면 한옥이나 사찰 등 목조 중심의 우리 건축이나 석조 중심의 서양 건축을 나름대로 소개하는 책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역시 바티칸 성당의 내부 사진으로, 빛이 들어오는 각도를 미리 계산해 설계함으로써 종교적인 신비감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
역시 바티칸 성당의 내부 사진으로, 빛이 들어오는 각도를 미리 계산해 설계함으로써 종교적인 신비감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 ⓒ 권기봉
그러나 유심히 보면 알겠지만 그 둘은 그저 평행선을 달리고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한옥을 다룬 책에서는 유독 ‘한옥은 서양 건축물에 비해 자연 친화적이고 운치가 있다’는 등의 일방적 주장 일색인 것이다. 반대로 서양 건축물을 다룬 서적들은 대부분 축조 양식이나 사상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데 그쳐 지루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이해하는 것부터 일단 쉽지 않다.

결국 그 둘은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만약 비교를 한다고 해도 대부분 과도한 민족주의 혹은 국수주의가 개입돼 ‘우리 건축이 우수하다’는 식으로 결론이 맺어지게 된다. 즉 둘 사이에는 그저 이분법적 사고만 존재할 뿐 화해를 유도하고 접목을 시도하려는 시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지난 95년부터 서양 근현대 건축사를 30권의 시리즈로 묶는 작업은 진행해오고 있는 이화여대 임석재 교수의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은, 이전의 책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일단 머리글만 읽어보아도 책이 어떻게 전개될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임석재는 ‘건축학도로서 답사 횟수가 늘어날수록 한국 건축과 서양 건축간의 이질성뿐만 아니라 그 건축을 있게 한 내면적 동인에 있어서의 유사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건물 구성 요소와 건축의 구성 원리, 건물 감상법의 세 파트로 나뉘어 각각의 장에서 구체적인 예를 적시해가며 한국의 전통 건축과 서양 건축을 비교하고 있다.

이 책에서 발견되는 한 가지 특이점은 동서양의 건축을 비교하면서도 둘 사이의 시대적인 구분을 하지 않았다는 점인데, 아마도 글쓴이가 애초 의도한 것처럼 서로간의 쓸데없는 우열 비교를 막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다

그리스 아테네의 제우스 신전 사진으로, 임석재에 의하면 석재 기둥에 파인 수직홈이 나무 기둥을 상징하려 했다고 한다.
그리스 아테네의 제우스 신전 사진으로, 임석재에 의하면 석재 기둥에 파인 수직홈이 나무 기둥을 상징하려 했다고 한다. ⓒ 권기봉
한편 이 책을 읽으며 가슴에 와닿는 부분은 글쓴이가 한국인이자 건축가의 입장에서 비판하는 우리 현대 건축의 몰상식하고 줏대 없는 모습이다. 이를테면 작금의 한국 건축이라는 것이 인체의 척도에 맞게 지어 편안함을 주고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도록 개방돼있던 우리 전통 건축이라는 기초 위에 서양의 ‘편리’를 가미하는 것이 아니라, 프라이버시를 중시해 가능한 한 폐쇄돼있던 서양 방식을 기본으로 한국적인 요소(말하자면 창호나 목재 정도)를 덧붙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웃간에 점차 단절되어 갔고 가족간에도 보이지 벽이 쌓여만 갔다. 글쓴이의 말 대로라면 서양에서는 오히려 동양 건축이 갖는 ‘투명’이라는 특성을 적극 받아들이고 있는 데도 우리는 가리는 데 급급해져 가는 것이다.

이는 주객이 전도된 현상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서양 하드웨어를 받아들이며 소프트웨어는 적절히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밖에는 어찌 설명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임석재/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대원사/2000
임석재/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대원사/2000 ⓒ 권기봉
이 같은 현상은 비단 건축만의 문제는 아닌 듯 싶다. 이미 우리는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가슴, 오똑한 코, 커다란 눈을 미녀의 기준으로 삼게 되었고, 우람한 가슴과 미끈한 허벅지를 갖는 이를 멋진 남성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우리 생활의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보면 이미 대부분의 생활 환경은 그것이 잘된 것이든 못된 것이든 이른바 ‘서구화’ 되었고, 사고 방식마저도 그렇게 된 지 이미 오래다. 우리는 우리 나름의 가치들을 그저 옛것으로 치부해 버렸고, 또 조선 말기 암울한 역사에 대한 막연한 반발감으로 그러한 것들을 애써 부정하려 했다.

임석재의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은 비단 건축 분야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 전반에 대해 여러 모로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 같다. 2003년 새해를 맞아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이 나와 내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볼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해 주었으면 한다.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

임석재 지음, 대원사(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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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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