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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선택, 대통령선거도 끝나고 정말로 다사다난했던 2002년이 저물어간다.

한 해의 마지막 끝자락을 부여잡고 시민단체와 함께 이 지역의 뉴스를 재 정리해본다.

1.핵 폐기장 논란

진도군(당시 박승만 군수)의 요청에 따라 2001년 8월 19일 한국수력원자력(주)의 주관으로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부지확보 설명회를 갖은 이후 한수원은 돈에 눈이 어두운 매판 주민들을 끌어들여 핵폐기물 처분장 부지유치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은밀하게 돌아다니며 유치신청서에 서명을 받은 유치위원에게 얼마의 보상을 지급하는 등 저급한 수단을 동원 유치여론 형성에 혈안이 되었었다.

한수원의 물량공세는 지금도 은밀하게 계속되고 있다. 정부의 공개적이고 투명한 방침이 아닌 음성적이고 비도덕적인 방법으로 지방 및 지역언론에 광고를 개재하고 ‘내 고향 쌀사주기’로 농민의 격한 감정을 누구려 뜨리려 안간힘을 다했다.

@IMG@진도 상가의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진도환경협의회가 꾸려지고 핵 쓰레기장(이때부터 핵 쓰레기장으로 부름) 반대 운동이 시작되었다. 1998년 해남 외립리 핵발전소 건설저지 선봉에 섰던 진도사랑연대회의를 비롯한 농민회, 노인회, JC, 라이온스, 등 40여개 사회단체가 참여하여 핵 쓰레기장 반대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활동했다.

핵 쓰레기장 유치논란은 6.13지방선거의 최대 쟁점이 되어 핵 반대 대책위 내에서도 지지하는 군수 후보자에 따라 입장이 서로 달라 심한 갈등을 겪기도 했다. 2002년 말 현재도 한수원은 진도 후보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중앙언론 등을 통해서 정보를 흘리며 지역여론 파악에 분주한 모습이다. 2001년부터 현재까지 2년 동안 진도군민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른 사건이며 현재도 진행 중이어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있다.

2.민선3기, 군수교체

6.13전국동시 지방선거는 변화와 개혁에 대한 주민들의 욕구가 가장 확실하게 분출한 선거였다. 지속적인 발전을 공약으로 내건 3선에 도전하는 현직 박승만 후보와 진도군의회 의장을 역임한 양인섭 후보의 ‘이번만은 바꿔보자’는 격돌은 98년에 이은 두 번째 대결이었다.

진사련은 정책선거를 이끌어 내기 위해 후보자에 공개질의서를 보내고 공약을 검증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유권자의 결정은 현명했다. 3600여표 차이로 양인섭 후보의 압승으로 끝났다.

하지만 선거기간 내내 핵 유치공방은 최대 쟁점이 되어 모(某)후보 선거운동원이 진사련 의장을 폭행하는 사건(오히려 상대측에서도 피해를 입었다며 맞고소로 대응, 경찰에서 맞고소라는 이유를 들어 흐지부지 넘어 감)이 발생하는 등 상호비방 및 유언비어가 난무한 진흙탕 선거였다. 이번 선거는 선거문화를 10여년 뒤로 후퇴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양인섭 당선자가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풀려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 심각한 선거후유증을 앓고 있다.

3.민주시민단체협의회 발족

‘진도의 미래는 오늘의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며 주민이 주인으로서 권리를 당당히 행사하는데 있다고…’

2002년 11월 1일 7개월의 산고 끝에 진도민주시민단체협의회는 태어났다. 진도의 부분별 운동을 이끈 세력들이 총 망라되어 협의체를 구성했다. 농협노조, 전교조, 농민회, 사회보험노조, 체신노조, 공무원노조(당시 직장협의회), 환경운동협의회, 진도사랑연대회의, 한국통신노조, 현대자동차판매노조 등 10개 단체가 참여했다.

4.해사채취 허가 결사반대

신임 양인섭 군수는 환경정책에 대한 첫 시험무대에서 사실상 낙제점을 받았다. 업자와의 사전협의를 통해 해사채취허가를 사전에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이 어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회단체들이 군수실을 방문하는 등 항의가 10월 한 달 동안 계속되었다. “해사채취허가 중단은 모래수급 불균형을 초래 건설경기 침체로 지역경제에도 악영향을 초래한다”며 그래서 해사채취허가는 점진적으로 양을 줄이며 서서히 중단해야한다는 군수의 강경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전남시민사회단체협의회의 진도군 방문과 신문 방송의 환경파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자 환경평가가 나오는 내년 6월까지 유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골재채취업자들은 불허방침에 행정심판을 청구했으나 위원회는 12월 20일경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여 해사채취불허는 적법하다’며 업자들의 행정심판을 기각했다.

5.효선, 미선 촛불시위 -700여명 모여 살인미군처벌 소파개정촉구

지난 6월 다정하게 길을 걸어가던 미선, 효순양이 장갑차에 깔려 숨졌다. 월드컵 망령에 사로잡혀 국민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인터넷을 중심으로 살인미군과 미국에 대한 분노는 들풀처럼 번졌다. 12월 7일과 14일 오후 6시 연 인원 700여명이 진도읍 철마광장에 모여 ‘살인미군 처벌하고 소파개정을 촉구하는 거리행진 및 시위를 벌였다. 거리행진 도중 조규정(의신면 침계리)씨는 눈물을 흘리며 목이 터져라 외쳤다. “소라개정 필요 없다, 주한미군 불러가라”

6.지역신문 수난시대

진도는 지역신문이 가장 많이 발행되는 곳이다. 부정기적으로 발행되는 신문까지 합하면 무려 6개나 되니 말이다. 지방자치 시대가 열리면서 전국적으로 지역신문은 활성화되고 있다. 지역 소식을 담보한 신문의 기능과 중요성이 재인식되면서 중앙언론을 제치고 부동의 위치를 확보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진도의 지역신문들은 지방선거 때마다 특정후보 줄서기로 주민들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특히 6․13 지방선거에서는 노골적으로 특정 후보를 편들고 상대후보를 비방하는 등 선거법 및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발행인 등 5개 신문사가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현재 1심에서 모 신문사 발행인등 기자에게 징역 10월 등 중형이 선고되어 해남 법원이 책임은 없고 자유만을 만끽하던 사이비언론에 재갈을 물리는데 기여했다.

7.서울농민집회

쌀을 지키기 위한 농민들의 투쟁은 올해도 연례행시처럼 이어졌다. 언제쯤 농민들은 농작물 생산에만 신경 쓰며 농사 짖는 날이 올까?

11월 13일 서울 여의도 전국농민대회는 진도농민들의 농업회생에 대한 욕구가 분출된 역사적인 날로 기억된다. 마을 이장들을 중심으로 1300명의 농민이 버스 40대를 동원하여 1박2일 일정으로 ‘우리 쌀을 지키기’위해 서울로 떠난 날이다. 농민들은 너나없이 ‘WTO쌀 수입반대’를 외치며 ‘쌀은 국가의 주권이며 국민의 생명이다’고 강조했다. 이후 12월 13일 경운기 투쟁에서 경찰의 원천봉쇄를 뚫고 군청 앞에 벼 500여 가마를 야적하고 피해 벼 전량수매 및 가격보장을 요구했다.

8.진도군의회 부의장 재선거

이런 실수는 전국 어디에도 없었다. 지방의회 제4기 첫 출범을 알리는 임시회에서 회의 진행 미숫으로 두 명의 부의장을 선출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 사건의 발단은 김덕수 의원의 신임의장 당선에 불만을 품은 최동기 의원이 부의장에 선출되었으나 수락연설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곧바로 의회사무절차를 무시한 채 재선거에 들어가 부의장을 다시 선출했으나 절차상 하자가 발생, 시민단체의 항의로 8월13일 임시회를 다시 열어 재선거에 들어가 최동기, 이창준 의원이 3ː3으로 3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이 벌어져 연장자인 이창준 의원이 부의장에 당선되었다.

9.공무원노조 출범

공무원직장협의회로 출발한 공무원 노동조합이 12월12일 공직사회개혁!, 공무원노조사수!, 공무원노동기본권 회복! 을 외치며 공무원 노조로 공식 출범했다. 간부공무원을 제외한 447명의 가입대상 공무원 중 421명이 가입 94%의 높은 가입률을 보였다.

공무원노조는 2002년 성과상여금 반납투쟁을 벌인 결과 458명 중 452명이 반납에 참여했고 조합원외에도 사무관 22명이 참여하는 성과를 올려 성과상여금 반납은 정당한 요구임이 밝혀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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