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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머님이 극락 세계로 떠나셨던 엊그제는 새벽녘부터 온종일 비가 촐촐히 내렸습니다. 메마른 대지를 흠뻑 적시는 단비였습니다. 이 땅에 남은 가족과 친지들이 당신을 보내며 흘리는 안타까운 눈물이었습니다.

오늘 당신이 유택(幽宅)으로 드는 날은 온 산에 꽃이 가득한 더없이 화창한 봄날입니다. 당신이 끝까지 이승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은혜로운 날입니다.

어머님! 왜 불러도 대답이 없으십니까? 저승길이 너무나 멀고도 매정한 길이라 저의 목소리가 들리시지 않습니까?

지난 설을 앞두고 제가 어머님에게 세찬이나 전해드리고자 전화를 올렸더니, 학교 일이 바쁠텐데 오지 말라고 극구 만류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굳이 동대문 시장으로 어머님을 찾아뵙고 좁은 점포 안에서 큰절을 올리자 너무 너무 반가워하셨습니다.

“점심 아직 안 먹었지?”
“벌써 먹었습니다.”
“정말? 어서 나와 같이 밥집으로 가자.”
“아닙니다. 정말 먹었습니다.”

어머님이 저를 만날 때마다 늘 하셨던 말씀이었습니다. 당신은 오십을 넘긴 저를 아직도 30여 년 전 홍안의 10대 소년으로 여기시고, 객지에서 끼니를 거를까 염려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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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머님을 처음 뵙던 때가 1962년 가을로 기억됩니다. 그때 당신은 동대문시장 노점에서 떡장사를 하셨고, 저는 시골에서 올라온 가난한 학생으로 거처조차 마땅찮은 까까머리 소년이었습니다. 당신 아드님의 같은 반 친구로 당신 집을 내 집처럼 무시로 드나들면서 참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제가 당신 집을 들어설 때면 당신은 언제나 반가운 음성으로 “어서 와. 밥 안 먹었지? 어서 밥 먹어라”라고 하시면서 객지에서 떠도는 제 주린 배를 채워 주셨습니다. 늦은 밤 당신의 대문을 두드려도, 굳이 저녁밥을 먹었다고 해도 당신은 객지 생활에는 늘 배가 고프다고 한사코 제 손에 밥숟갈을 쥐어주셨습니다.

비단 저한테만 온정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당신 주변 사람 모두에게, 지나가는 거지, 장애인, 지게꾼까지도 적선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는 불쌍한 장애인들이 늘 따랐습니다.

당신은 때때로 제 호주머니에 용돈을 넣어주셨고, 저 몰래 학교에 오셔서 잡부금을 내주셨고, 당신 아드님과 똑같은 잠바를 사서 추위를 막아 주셨고……. 당신이 베풀어주신 큰사랑을 어찌 필설로 다 사뢰겠습니까?

저는 당신과는 한 방울 핏줄을 나눈 혈육이 아닙니다만 서슴없이 당신을 어머니라 불렀고, 또 당신은 저를 아들처럼 여겼습니다. 어머님과 저는 혈육을 나눈 모자 못지 않게 그렇게 다정히 지난 33년을 지냈습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잊어서야 되겠습니까?

저는 난생 처음 제 이름으로 된 책을 펴낼 때 책머리 글에다 보은의 마음으로 당신의 함자 ‘홍정순’을 새겼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베풀어주는 출판기념회 날 당신을 애타게 기다렸으나, 당신은 “내가 너를 위해 뭘 한 게 있느냐?”라고 말씀하면서 화환만 보낸 채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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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정순 어머니
ⓒ 박도
오늘 새벽 당신 아드님이 저에게 두건과 상장(喪章)을 주기에 별 주저없이 받아 머리에 쓰고 팔에 둘렀습니다. 저는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학교 수업도 접어둔 채 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내 무덤을 네 발로 꼭꼭 밟아 달라”라고 저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어머님! 이제 편히 눈감으십시오. 그 동안 참으로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해방과 6.25 한국전쟁 …. 그 힘든 세월 속에 전쟁 미망인으로 네 남매를 당신의 손으로, 발로 먹이고 키우고 가르쳤습니다. 저는 당신을 너무나 잘 압니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매서운 날씨 동대문시장바닥 빙판 위에서 당신은 연탄 화덕을 껴안고 떡을 팔았고, 뒷날에는 광장시장에서 무명과 삼베를 팔았습니다. 당신 얼굴은 겨우내 찬바람에 얼어서 동상으로 시퍼랬습니다.

당신은 온몸을 던져 자녀들을 길렀고, 또 가난한 이웃을 돌보았습니다. 당신은 현대판 한석봉 어머니이십니다. 아들딸을 출가시키고서도 시름을 못 놓은 채, 저를 만날 때마다 막내 아드님을, 손자, 손녀를 걱정하셨습니다.

당신의 춘추 일흔다섯, 숙환(宿患)으로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까지 40여 년을 한결같이 동대문시장바닥을 지키셨습니다. 당신의 휴가는 불과 보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병상에서 저승사자를 기다렸던 고작 보름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죽음을 ‘돌아간다’라고 말합니다. 곧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마치 군인이 그 임무를 충실히 끝내고 고향집으로 돌아가듯, 소치는 목동이 소를 몰아 외양간으로 돌아오는 것과 똑 같습니다.

어머님, 당신은 평생 동안 혼자 무거운 짐을 지셨습니다. 이제는 그 짐을 다 풀어놓으시고, 거추장스런 당신 육신도 이 세상에 버리고, 당신의 영혼만 슬픔도 번뇌도 없는 영원한 극락 세계로 가십시오.

이 세상에 남은 저희는 당신과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없는 영결을 슬퍼하지만, 당신은 눈물도 근심도 없는 극락에서 편히 쉬시라 믿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유가족과 친지 여러분! 후일 우리가 저승에서 고인을 만나기 위해 남은 삶을 사람답게 살고 남을 돕고 살도록 고인 앞에 맹세합시다.

홍정순 어머니! 이 세상일은 모두 잊으시고, 부디 왕생극락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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