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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우리 성당에는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부터 인근 불교 사찰에서 보내온 '예수성탄 축하' 현수막이 걸렸다.

성당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걸린 '흥주사 신도회' 이름의 "메리 크리스마스/기쁘다 구주 오셨네"라고 쓴 현수막을 보면서 우리 성당 신자들은 올해도 잊지 않고 예수 성탄을 축하해준 불교 신도들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가졌다. 그 현수막을 보고 기분 좋은 느낌을 갖지 않은 신자들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새 성전 건립 사업이 시작되어 현수막을 걸 자리가 없어서 올해는 지난 해와 달리 흥주사 신도들이 보낸 현수막 하나만 걸렸지만, 인근의 여러 사찰들에서 스님들과 신도회장님들이 우리 성당을 다녀갔다고 한다.

성탄성야 미사를 지내며 우리 성당의 김종기 신부님은 영성체 후 공지사항 발표 시간에 그 사실을 공표했다. 태안읍의 공덕사, 흥주사, 백화산의 태을암, 안흥의 태국사에서 주지 스님과 신도회장이 우리 성당을 방문하고 예수성탄 축하 인사와 함께 금일봉을 놓고 갔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성당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공덕사의 신도회장님은 성야 미사에도 참례하고 있다고 했다. 그 사실을 전하며 김종기 신부님은 신자석에 앉아 있는 공덕사의 신도회장님을 잠시 일어나게 하고 신자들에게 소개했다. 모든 신자들이 일제히 큰 박수를 보내주었다.

천주교 성당들은 전통적으로 성탄성야에는 미사 전에 '구유예절'이라는 것을 한다. 성당 안 한 쪽에, 대개는 제대 옆에 마구간을 만들고, 사제가 마구간의 구유 안에 아기 예수님을 모시는 안치식을 한 다음 모든 신자들이 차례로 마구간 앞으로 가서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고 마구간 앞의 헌금함에 자선금을 봉헌한다.

신자들이 마구간 앞의 헌금함에, 즉 아기 예수님께 드린 헌금은 전액이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쓰여지게 된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불교 사찰의 주지 스님들과 신도회장들은 '구유예물'로, 즉 마구간 헌금함에 넣어달라는 뜻으로 금일봉을 놓고 간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천주교 성당에 와서 예수성탄 축하인사를 하면서 불우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자선금을 맡기고 갔으니, 어떻게 보면 일거양득을 한 셈이기도 할 터였다.

그런데 우리 성당의 성탄성야 미사에 참례한 공덕사의 신도회장님은 천주교 신자들의 구유경배 행렬에도 참여해서 마구간 구유 안의 아기 예수님께 경배도 하고 마구간 헌금함에 자선금을 직접 넣었다고 했다.

신부님의 유도에 따라 공덕사의 신도회장님께 나도 힘껏 박수를 보내며 실로 흐뭇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미사 후 성당을 나갈 때 합장을 하고 제대 쪽을 향해 머리를 숙이는 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내가 백화산을 오르고 태을암의 대웅전 앞을 지날 때마다 부처님께 예를 드리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도 퍼뜩 들었다.

불교 신자인 그분과 천주교 신자인 나 사이에는 이미 하나의 공통점이 확보되어 있는 셈이었다. 그것은 서로를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것의 가장 확실한 표현은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이는 것일 터였다.

불교 신자나 천주교 신자나 믿음의 대상에게 기도를 하거나 경배를 할 때 합장을 한다는 것만큼 공통되는 것은 또 없을 것이다. 합장을 한 손끝은 자연스럽게 하늘을 향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하늘을 숭앙하는 인간의 가장 탁월하면서도 보편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합하여진 두 손이 하늘을 향한다는 것은 개인의 '경천(敬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터이다. 두 손이 합하여진 상태는 사람 인(人)자의 의미도 생각하게 하고, 세상의 화목과 화평을 상징하는 모습이기도 할 터이다.

마음을 다해 합장을 잘하는 사람은 진심으로 하늘을 우러르는 사람이고, 진심으로 하늘을 우러르는 사람은 세상의 화합을 추구하며 몸소 실천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합장을 잘하는 마음으로부터 남에 대한, 타종교에 대한 존중도 좀더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교 최대의 명절 중의 하나인 예수성탄 성야에 천주교의 장엄 예절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례를 하고 돌아갈 때 다시 합장 배례하는 불교 신자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분처럼 좀더 합장을 잘 하는 신자가 되어야겠다는, 조금은 생급스럽고도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부님이 공지한 내년 1월 13일 저녁 태안문예회관에서 열린다는 공덕사 주최 불교음악 행사에 나도 꼭 참석해야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덧붙이는 글 | 최근에 발간된 <불교문예> 2002년 겨울호에 단편소설 「망둥이를 아시나요·2」를 발표했다. 불교계 문예지에 소설 작품을 발표한 것은 1988년 <불교문학> 가을호의 단편소설 「용병설」이후 이번이 두 번째이다. 천주교 신자 작가인 내게 소설 청탁을 해 준 <불교문예> 편집진에게 감사하고, 불교계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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