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2 지리산 성삼재의 쑥부쟁이
2002 지리산 성삼재의 쑥부쟁이 ⓒ 김해화
쑥지나물은 알아도 쑥부쟁이 꽃은 모르는 어머니
"그 꽃이 국화꽃 아니냐?"
그래요, 엄니 이 꽃은 국화꽃이그만요, 들에 피는 국화꽃-
구절초, 쑥부쟁이, 이런 꽃들을 어머니는 모르십니다.
어머니는 쑥지나물만 알고, 쑥지나물에서 이렇게 고운 꽃이 피어난다는 것을 모르십니다.

구절초도 어릴 때는 그냥 쑥지나물과 구분하지 않고 같은 나물로 취급하다가 꽃이 피면 선모초라고 부르며 약초로 썼습니다.
선암사에 갔다가 까시쑥부쟁이 꽃을 만나 사진을 찍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지켜보다가 물었습니다.

"그 꽃이 무슨 꽃인가요."
"예, 까실쑥부쟁이라는 꽃입니다."
"우리나라 꽃입니까?"
"그럼요 우리나라 꽃이지요."
"나는 통 꽃이름을 모르겠어요."
"당연하지요, 우리가 언제 꽃 보고 살 틈이 있었어야지요. 어린 순을 나물로 먹다가 쇠어 못먹게되면 그냥 풀이거니 하고 살다가 어느 날 꽃이 피믄 그꽃 무슨 꽃인지 참 이쁘구나 하면서 지나치고 말았으니 꽃이름을 알 수 있어야지요. 꽃이름 모르는 것이 당연할 수 밖에요. 저도 이름을 아는 꽃보다 이름을 모르는 꽃이 훨씬 많습니다."

꽃이름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름 모르는 꽃에는 당신만의 이름을 붙여 주십시오.
그러면 그 꽃은 당신만의 꽃이 된답니다.
그 가을 지리산을 차로 넘어오다가 성삼재 근처에서 만난 쑥부쟁입니다.
쑥부쟁이도 모양에 따라 여러 가지로 이름이 나뉘는데 그냥 쑥부쟁이라고만 부르고 싶은, 거리가 멀어서 망원렌즈로 찍은 언덕중간의 쑥부쟁이꽃-
그날 나는 그 쑥부쟁이 앞에 누군가의 이름을 붙여 부르고 있습니다.

쑥부쟁이에는 대장쟁이 딸 쑥부쟁이의 슬픈 사랑의 전설이 전해 내려옵니다.

쑥부쟁이
쑥부쟁이 ⓒ 김해화
쑥부쟁이 이야기

옛날 어느 마을에 아주 가난한 대장장이가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11남매나 되는 자녀들이 있었다. 이때문에 그는 매우 열심히 일을 했지만 항상 먹고 살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이 대장장이의 큰딸은 쑥나물을 좋아하는 동생들을 위해 항상 들이나 산을 돌아다니며 쑥나물을 열심히 캐왔다. 이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네 딸' 이라는 뜻의 쑥부쟁이라 불렀다.

그러던 어느날 쑥부쟁이는 산에 올라갔다가 몸에 상처를 입고 쫓기던 노루 한 마리를 숨겨주고 상처까지 치료해 주었다. 노루는 고마워하며 언젠가 은혜를 반드시 갚겠다는 말을 남기고 산속으로 사라졌다.

그날 쑥부쟁이가 산 중턱쯤 내려왔을 때였다. 한 사냥꾼이 멧돼지를 잡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쑥부쟁이가 치료해 준 노루를 쫓던 사냥꾼이었다. 쑥부쟁이가 목숨을 구해 준 사냥꾼은 자신이 서울 박재상의 아들이라고 말한 뒤, 이 다음 가을에 꼭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떠났다.

쑥부쟁이는 그 사냥꾼의 씩씩한 기상에 호감을 갖고 다시 그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다. 가을이 어서 오기만을 기다리며 열심히 일하였다.

드디어 기다리던 가을이 돌아왔다. 쑥부쟁이는 사냥꾼과 만났던 산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올라 갔다. 그러나 사냥꾼은 나타나지 않았다. 쑥부쟁이는 더욱 가슴이 탔다. 애타는 기다림 속에 가을이 몇 번이나 지나갔지만 끝내 사냥꾼은 나타나지 않았다. 쑥부쟁이의 그리움은 갈수록 더 해 갔다.

그 동안 쑥부쟁이에게는 두 명의 동생이 더 생겼다. 게다가 어머니는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쑥부쟁이의 근심과 그리움은 나날이 쌓여만 갔다. 어느날 쑥부쟁이는 몸을 곱게 단장하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흐르는 깨끗한 물 한 그릇을 정성스레 떠 놓고 산신령님께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갑자기 몇 년 전에 목숨을 구해 준 노루가 나타났다. 노루는 쑥부쟁이에게 노란 구슬 세 개가 담긴 보라빛 주머니 하나를 건네 주며 말했다.

"이 구슬을 입에 물고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질 것입니다."
말을 마친 노루는 곧 숲속으로 사라졌다. 쑥부쟁이는 우선 구슬 한 개를 입에 물고 소원을 말하였다.

"우리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신기하게도 어머니의 병이 순식간에 완쾌 되었다. 그해 가을 쑥부쟁이는 다시 산에 올라가 사냥꾼을 기다렸다. 그러나 사냥꾼은 역시 오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친 쑥부쟁이는 노루가 준 주머니를 생각하고, 그 속에 있던 구슬 중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소원을 빌었다.
그러자 바로 사냥꾼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 사냥꾼은 이미 결혼을 하여 자식을 둘이나 둔 처지였다. 사냥꾼은 자신의 잘못을 빌며 쑥부쟁이에게 같이 살자고 했다. 그러나 쑥부쟁이는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그에게는 착한 아내와 귀여운 아들이 있으니 그를 다시 돌려 보내야겠다.' 쑥부쟁이는 마지막 하나 남은 구슬을 입에 물고 가슴 아픈 소원을 말하였다.

그후에도 쑥부쟁이는 그 청년을 잊지 못하였다. 세월은 자꾸 흘러갔으나 쑥부쟁이는 결혼을 할 수 없었다. 동생들을 보살피며 항상 산에 올라가 청년을 생각하면서 나물을 캤다.

그러던 어느 날 쑥부쟁이는 산에서 발을 헛디뎌 그만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쑥부쟁이가 죽은 뒤 그 산의 등성이에는 더욱 많은 쑥나물들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동네 사람들은 쑥부쟁이가 죽어서까지 동생들의 주린 배를 걱정하여 많은 나물이 돋아나게 한 것이라 믿었다.

연한 보라빛 꽃잎과 노란 꽃술은 쑥부쟁이가 살아서 지니고 다녔던 주머니 속의 구슬과 같은 색이며 꽃대의 긴 목 같은 부분은 아직도 옛 청년을 사랑하고 기다리는 쑥부쟁이의 기다림의 표시라고 전해진다. 이 때부터 사람들은 이 꽃을 쑥부쟁이 나물이라 불렀다.

쑥부쟁이
쑥부쟁이 ⓒ 김해화


쑥부쟁이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권영초라고도 하는데 습기가 약간 있는 산과 들에서 자랍니다. 높이 30∼100cm이며 뿌리줄기가 옆으로 뻗습니다.

원줄기가 처음 나올 때는 붉은빛이 돌지만 점차 녹색 바탕에 자줏빛을 띠며 뿌리에 달린 잎은 꽃이 필 때 집니다. 줄기에 달린 잎은 어긋나고 바소꼴이며 가장자리에 굵은 톱니가 있습니다. 겉면은 녹색이고 윤이 나며 위쪽으로 갈수록 크기가 작아집니다.

꽃은 7∼10월에 피는데, 설상화(舌狀花)는 자줏빛이지만 통상화(筒狀花)는 노란색이며 두화는 가지 끝에 1개씩 달리고 지름 2.5cm입니다.
총포는 녹색이고 공을 반으로 자른 모양이며, 포조각이 3줄로 늘어섭니다.

열매는 수과로서 달걀 모양이고 털이 나며 10∼11월에 익는데, 관모는 길이 약 0.5mm로서 붉은색입니다. 어린순을 데쳐서 나물로 먹거나 기름에 볶아먹기도 합니다. 한국·일본·중국·시베리아 등지에 널리 분포합니다. / 김해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