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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을 딛고 일어선 발명가 김준섭 사장.
좌절을 딛고 일어선 발명가 김준섭 사장. ⓒ 정종인
최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발명전시회에서 쌀 냉장고로 금상을 받은 굿엠 사장 김준섭(金準燮.37.전북 정읍시 북면)씨.

그는 고향인 부안에서 나는 황토를 이용한 신제품 개발에 매달려온 '신토불이 발명가'다. 金씨가 황토를 섞어 만든 쌀 냉장고는 항온(섭씨 10도)을 유지해 벌레와 곰팡이의 번식을 막고 햅쌀 맛을 잃지 않게 해주는 아이디어 상품이다. 어릴 때부터 기계 다루길 좋아했고 중학교 시절엔 에어백 안전벨트, 무인 농약 살포기 등의 개발을 꿈꾼 그는 1996년 창업했다.

"처음엔 자동차 부품업체를 할 생각에 4년제 행정학과를 나와 전문대 자동차학과까지 다녔어요. 그러나 기존 업체들의 벽을 넘기가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고 황토 쪽으로 방향을 돌렸어요."

부안군은 질 좋은 황토가 많아 고려시대에는 최고급 상감청자를 만드는 도요지가 있었던 곳이다. 金씨는 5천만원으로 '황토원'을 설립하고 황토 침대, 황토 벽돌, 황토 복합수지 등을 잇따라 생산했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인해 빚을 지게 됐다.

"25% 안팎의 이자를 감당하기 힘들어 공무원(보건소 소장)인 아내의 월급통장마저 차압당했어요. 주변에선 '포기하라'고 했지만 신용 불량자로 찍히면 사업을 못한다고 생각해 사채를 얻는 한이 있더라도 신용을 지켰어요."

지난 8일 서울 코엑스 태평양관 앞.
황토의 고장 출신으로 황토 이용 제품 발명에 심혈을 기울여 온 김준섭씨(37)는 비로소 두 눈을 크게 뜨고 하늘을 쳐다볼 수 있었다.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지난 세월의 좌절과 시련. 그 아픈 상처들이 소리 없이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로 씻겨지고 있었다.

그의 명함에 새겨진 직함은 굿 엠 대표. 전북 정읍시 농공단지 한쪽에 자신의 투혼을 응집시켜 세워놓은 회사의 어엿한 주인이다. 하지만 그의 이날 눈물은 한 회사의 대표로서가 아닌 발명인 김준섭으로서 쏟아낸 것이었다.

김씨는 이곳 코엑스에서 열린 2002 서울국제발명전시회에서 '대한민국대표 쌀 냉장고 리치인'을 출품해 금상을 차지했다. 동시에 열린 대한민국특허기술대전에서도 본상을 휩쓸었다. 어린 시절, 라디오를 부숴가며 발명왕 에디슨을 인생 목표로 삼은 뒤 수십년 동안 멍에로 남아 있던 미완의 발명 외길 인생이 활짝 꽃피워지는 순간이었다.

"자살을 결심한 적도 있었죠. 여러 해를 고생해 아이디어 제품을 만들어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 때면 세상이 야속했어요. 끝까지 저를 지켜준 아내와 가족들이 없었다면 발명왕의 꿈은 접었을 겁니다."

전북 정읍시 북면 공단에 위치한 굿엠은 쌀냉장고를 개발, 가전시장에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전북 정읍시 북면 공단에 위치한 굿엠은 쌀냉장고를 개발, 가전시장에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 정종인
대학 졸업 직후인 1990년 초부터 무명의 발명가 인생을 살아온 김씨의 도전 이력은 기록적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열린 각종 발명전시회를 '문턱이 닳도록' 찾아다니던 그였다. 그때마다 박봉의 공무원 생활을 하는 아내의 호주머니를 털어야 했다. 그의 월급통장에 차압이 들어오는 것을 멍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미친 사람처럼 그는 또 전시회장으로 달려갔다. 손바닥만한 부스라도 반드시 세웠다. 온갖 궁리와 시행착오로 만들어낸 발명품들이 전시회에서 당당히 인정받기를 고대하면서. 고집스런 발명 열정이 남긴 것은 숱하게 많은 발명 목록뿐이었다. 각종 자동차 부품과 황토침대, 황토벽돌, 안전 에어백, 부탄가스 자동점화장치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특허출원 및 등록 5건, 실용신안 출원 및 등록 9건, 상표출원 및 등록 5건, 의장출원 및 등록 2건도 확보했다.

당시 그는 황토 분말 가루를 얻기 위해 비닐봉투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골방에 들어가 그라인더로 흙덩어리를 갈곤 했다.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흙과 땀으로 얼굴이 범벅되고 호흡이 가빠졌다. 밖으로 나와 새 공기를 마신 뒤 다시 봉투를 쓰고 들어가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눈물겨운 노력 끝에 金씨는 99년 항아리와 황토를 접목시킨 황토 김치통을 만들어 선보였다.

그러나 돈이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결정적인 고비에서 공든 탑은 와르르 무너지기 일쑤였다. 발명은 인정받으면서도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채무자'라는 비아냥이 늘 주변을 따라다녔다. 생계가 어려워지자 현금을 쥐기 위해 떠돌기도 했다. 악심을 먹고 고시공부도 시작했다. 그래도 발명과는 도저히 떨어져 살 수 없었다.

고향이자 황토로 유명한 전북 부안에서 부도난 공장을 가까스로 인수해 재기를 노렸다. 이곳에서 개발한 황토침대는 굴지의 기업들이 관심을 보였지만 결국 마케팅 실패로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희망의 씨앗은 그곳에서 틔워졌다. 우연히 한 전시회에서 황토침대를 살펴본 유통업자가 ?황토용기? 개발을 권유해 온 것이다. 그것은 마지막 기회였다. 물과 기름으로 비유되는 황토와 플라스틱이 하나로 합쳐지는 혼합유화제는 불가능한 성역으로 인식되던 터였다. 이 소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옹고집장이 발명가인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선풍적 인기몰이 속에 우리나라 김치냉장고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모 회사 김치냉장고 내부용기가 이때부터 김씨가 세운 굿 엠사의 황토용기로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만 60억여원어치를 납품하게 되면서 김씨의 발명 인생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은 당연지사. 황토용기 납품수익 전액을 투자해 결실을 맺은 '쌀 냉장고 리치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올해 발명전시회와 특허기술대전을 석권한 '리치인'은 황토용기를 이용해 쌀의 변질을 막고 햅쌀 그대로의 신선도를 사계절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호평을 얻은 역작이었다.

"인생을 걸고 발명가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어려운 시절 천당과 지옥을 오고간 만큼 어떤 위기가 닥쳐와도 이제는 자신 있습니다. 도전은 계속될 것이고 그 도전이 성공한다면 이웃들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金씨가 그동안 개발한 황토 제품의 특허·실용신안은 21건. 그는 지난해 목걸이용 무선 핸즈프리를 개발해 영국, 독일, 스위스 국제발명전시회에서 잇따라 금상을 받기도 했다. 金씨는 "큰 기업들이 쌀 냉장고를 독점 공급해달라는 제의를 잇따라 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여유가 생기면 발명 대학과 무료 양로시설을 짓고 싶다"고 말했다.

회사 사장이라기보다는 발명가 김준섭으로 영원히 남길 원한다는 그는"어려운 아이들에게 쌀 한가마니씩 전해주러 가는 길"이라며 을씨년스런 진눈깨비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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