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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만의 커피집’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커피전문점이다. 체인점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곳이다. 이곳은 이름만큼이나 독특하다. 큰 유리문으로 내부가 훤히 보이는 커피숍의 문을 열면 그윽한 커피향이 몰려온다.

커피 볶는 기계가 8평 정도 되는 실내를 반 쯤 차지하고 있다. 이 기계야말로 이곳의 특징을 한 눈에 보여주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아침마다 신선한 원두를 골라 직접 볶는다. 그러니 커피 볶는 기계가 큰 부피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 주방에서 활짝 웃고 있는 허형만씨
ⓒ 송춘희
실내 공간의 구성 못지않게 인상적인 것은 주인인 허형만(46)씨다. 이웃집 아저씨 같은 허씨가 내미는 명함에는 ‘중촌사람 허형만’이라고 쓰여 있다. 자신이 살던 경남의 중촌마을 이름을 따온 것이다. 그는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20년간 커피회사에서 일했다. 커피를 생산하고 가공, 판매하는 경로를 모두 익혔지만 오랜 직장 생활에서 독립하고 싶은 생각이 깊었다. 마침내 그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 얼마 전 이곳에 커피전문점을 내었다.

“일단 저는 누구보다도 커피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커피전문점을 통해 많은 커피 마니아들을 만나고 싶은 것도 또 다른 이유입니다.”

스스로 커피마니아임을 자칭하는 허씨는 커피에 대한 견해도 남다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동안 가난에서 탈출하는 어려운 시기를 겪다보니 맛과 향보다는 간편성 위주의 인스턴트 커피에 길들여져 왔습니다. 커피 선진국들의 원두커피와 인스턴트 커피의 소비율은 90 대 10 정도인데 우리는 반대로 인스턴트 커피가 90에 이르거든요.”

그는 우리나라가 발전한 만큼 이제는 제대로 된 커피를 마실 줄 알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문화 선진국 국민이라면 자신이 즐기는 것에 대해 전공이나 직업을 떠나서 스스로 알고자 노력하며 그 분야에 있어서는 전문가의 수준에 이르는 지식을 쌓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커피도 마찬가지죠.”

허씨는 자신의 이런 철학을 널리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에 운영하는 커피스쿨은 그런 노력의 한 가지이다. 커피에 대한 올바른 상식을 전달하기 위해 운영되는 커피스쿨은 커피 창업을 원하거나 커피를 제대로 알고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강의. 이제까지 약 3백여명의 제자를 배출했다고 한다.

“커피스쿨을 통하여 제가 아는 커피에 대한 상식과 가공과정 그리고 커피문화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이를 통해 가게에 대한 간접 홍보가 될 수도 있지요.”

그가 커피스쿨을 시작하고 가장 많이 놀란 것은 커피를 즐긴다는 사람들조차 커피에 대한 상식이 너무 없더라는 것. 그가 말하는 제대로 된 커피의 주문법은 다소 까다롭다.

우선 커피의 종류를 정해야 한다. 블렌드커피를 원하는지 카페라떼를 원하는지 카푸치노를 원하는지…. 다음으로는 단맛의 정도를 정해야 한다. 약한 단맛을 원하는지, 보통의 단맛을 원하는지, 강한 단맛을 원하는지…. 우유의 온도와 양도 취향에 따라 정해야 한다.

사람들마다 좋아하는 맛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이 정도 까다로운 절차는 거쳐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허형만의 ‘맛있는 커피 즐기는 법’

1. 커피의 유통기한보다는 제조일자를 확인하라.
2. 제조일로부터 보름 이내로 마실만큼만 구입하라.
3. 커피는 반드시 밀폐된 용기에 보관하라.
4. 커피는 공기를 피하고 차고 어두운 곳에 둔다.
5. 연한 커피를 즐기려면 물을 추가하고 커피에 많은 양의 물을 한꺼번에 붓지 마라.
6. 마시고 남은 커피는 찬물에 급냉한 뒤 냉장보관하여 아이스 커피로 즐겨라.
7. 원두커피는 마실 때마다 즉석에서 갈아서 즐겨라.
8. 커피기구별 사용법을 정확히 알고 즐겨라.
9. 여러가지 커피를 자주 접하여 나름대로의 미각을 개발하라.
10. 커피맛을 아는 사람과 같이 마시면서 맛을 익혀라.
“맛있는 커피를 즐기려면 나름대로의 미각이 뛰어나야 합니다. 커피는 좋은 원두를 골라 잘 볶아야하고 맛있게 추출할 줄 알아야 하거든요.”

허씨는 커피원두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커피를 볶는 것과 내리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섬세하게 관리한다. 또 항상 일정한 농도를 유지하기 위해 그가 내리는 원두커피는 계량 스푼으로 뜨고 물은 정확한 양을 붓는다. 이런 과정을 거친 한 잔의 커피는 깔끔하고도 신선한 맛을 준다.

“정말 맛있는 커피는 처음엔 좋은 쓴맛이 들고 두 번째로 입안에서 좋은 신맛이 나며 다 마시고 나면 좋은 단맛이 납니다. 그래서 좋은 술, 좋은 커피, 좋은 사람은 늘 뒤가 깨끗하지요.”

이 차가운 겨울날 ‘그냥’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이제 커피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단지 따뜻한 온기로 몸만을 데울 것인지, 오각에 스미는 커피에 잠시나마 영혼의 휴식을 취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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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입니다.세상에는 가슴훈훈한 일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힘들고 고통스러울때 등불같은, 때로는 소금같은 기사를 많이 쓰는 것이 제 바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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