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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주요촬영장인 둔황 고성
'영웅'의 주요촬영장인 둔황 고성 ⓒ 신랑왕
2002년 연말 중국 영화계에 가장 주목을 받은 작품은 장이모 감독의 <영웅>이다. 이 영화는 대부분 ‘둔황’의 옆에 위치한 고성과 쓰촨의 지우자이고우(九寨溝)에서 촬영됐다. 중국 정부도 적지 않게 투자한 이 영화를 세계시장에 보내면서 중국 정부는 자못 영화보다 더 큰 꿈을 꾸고 싶어한다.

바로 중국의 서부를 세계에 보여주고 싶어한다는 것. 캘리포니아나 애리조나처럼 황금은 많지 않지만 서부의 넓은 대지에는 무궁한 자원이 있다. 그리고 고대 실크로드로 불리는 통로의 연결고리가 되는 곳이다. 중국은 이곳에서 150년전 미국이 펼쳤던 기묘한 작전을 펼치고 싶어한다.

하지만 동부에서조차 중국 투자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계 유수의 외국기업들도 서부로 가는 데까지는 아직까지 적지 않은 간극이 필요하다. 하물며 동부에 쌓아놓은 성마저 위협받는 우리 기업들에게 서부는 여전히 먼 거리에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일찌감치 서부에 진출해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는 기업들도 있다. 이들은 8세기 당나라의 장군이 되어 1만의 병사를 이끌고 파미르고원을 넘어 타슈켄트의 왕을 압송한 고선지 장군의 기개를 본받으려 한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은 서부에서 가능성이 있는가. 또 중국 정부는 왜 서부로, 서부로를 외치고, 그 가능성이 얼마인지를 점검해본다.

정부 주도하에 급속히 인프라 구축

둔황 밍사산. 서부는 우선 이런 황량함이 먼저 느껴지는 곳이다
둔황 밍사산. 서부는 우선 이런 황량함이 먼저 느껴지는 곳이다 ⓒ 조창완
중국에서 서부는 흔히 샨시(陝西), 간쑤(甘肅), 닝샤(寧夏), 신장(新疆), 쓰촨(四川), 충칭(重慶), 윈난(雲南), 꾸이저우(貴州), 시장(西藏) 등 10개 지역을 말한다. 이 지역을 한마디로 말하면 지금까지 중국경제발전에서 소외받은 지역으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낙후한 지역의 대명사다.

물론 쓰촨처럼 자체적으로 개발을 추진해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한 도시도 있지만 이 지역은 중국 전체 면적의 56%(인구는 24%)를 차지하면서도 GDP는 15%밖에 되지 않을 만큼 열악한 지역이다. 그도 그럴 것이 79년부터 98년까지를 봤을 때 인프라 투자비율이 동부가 60% 였던 반면 서부는 20%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부가 이렇게 뒤쳐질 수밖에 없는 것은 있는 역량을 남부에서부터 집중시키기 시작해 동부연안을 거쳐 북쪽으로 향하게 했던 마오쩌둥의 선부론(先富論)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국토의 균형적인 개발과 동부의 발전에 밑거름이 될 자원의 공급을 위해서 서부개발은 이미 예정된 과정이었고, 21세기 들어서 그 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1998년부터 서부개발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해 2000년 3월 전인대에서는 ‘서부대개발’을 최대의 화두로 만드는 한편 총리 주룽지를 책임자로 한 서부개발 영도소조를 만들었다. 이 소조는 정책기획, 환경, 경제사회발전 등 3개 부문으로 구성해 최고의 행정가들이 배치되어 있다.

개발계획 및 정책수립, 주요기구수립, 홍보, 기초건설 가속화하는 초기 단계(2000-2005년)와 개발능력 제고, 투자규모 확대하는 개발 단계(2006-2015년) 및 도시화, 시장화, 국제화의 수준을 높이는 전면발전(2015-2050년) 등으로 꾸며져 있다.

무서운 인프라 구축

충칭 지에팡파. 얼마전까지만 해도 충칭은 가난한 도시 가운데 하나였지만 몇년사이 엄청난 개발붐을 타고 있다
충칭 지에팡파. 얼마전까지만 해도 충칭은 가난한 도시 가운데 하나였지만 몇년사이 엄청난 개발붐을 타고 있다 ⓒ 조창완
이미 서부개발은 전반적인 단계에 접어들었다. 닝샤, 칭하이, 깐수 등 기존에 도로망이 미비하거나 작았던 지역에는 대대적인 비용을 투자해 도로망을 확충하고 있다. 매달 지도가 달라질 만큼 고속도로건설은 탄력을 받고 있으며, 발전의 중심축인 시안(西安)과 충칭(重慶)의 발전은 눈부실 정도다.

특히 산샤댐의 건설로 인해 물류의 중심축이 된 충칭은 도시의 규모를 북쪽으로 넓혀가는 한편 도시의 대부분이 언덕으로 되어 있어 개발이 어려운 도시환경임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다르게 고층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99년 처음 겨울 처음 충칭에 들렀을 때 도시는 빈곤의 상징처럼 느껴졌지만, 2001년 겨울에 들렀을 때는 이미 여느 대도시 못지 않은 도시로 성장했고, 2002년 여름에 방문했을 때는 도시의 중심인 지에팡로나 쌰핑빠는 상하이나 베이징에 못지 않은 빌딩군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빌딩의 다수가 투자의 충분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프라 구축이다. 코트라의 보고에 따르면 2001년 말까지 자동차 통행이 가능한 도로는 총연장 69.9만 km(고속도로 약 4천500 km)로 건설 속도가 18.5%인 동부나, 32.2%인 중부에 비해 휠씬 높은 50.9%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물류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선박운행의 경우 15년간 31억 달러를 투자한 청두-루저우(瀘州)-구이양(貴陽)-난닝(南寧)-베이하이(北海) 등 창지앙의 중류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해상로가 연결됐고, 충칭에서 구이양으로 이어지는고속도로의 건설도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었다. 또 산샤댐의 건설로 창지앙 이동 선박의 규모가 1만톤 급에 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철도의 경우 2001-2005년 5년간 서부 철도 건설에 1천270억 위안(한화 약 19조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철도 건설 중점지역은 칭하이 시닝과 시장 라쌰 간 공사들로 현재 진행 또는 추진 중이며, 수이닝(邃寧)-충칭(重慶), 융저우(永州)-위린(玉林), 판야(汎亞) 지역의 신규 건설을 계획 중이다. 또 서부대개발 10대 프로젝트의 하나로 시안에서 안후이 허페이(合肥)구간의 1천27km에 이르는 철도가 건설되고 있다.

전력의 경우 화력과 풍부한 수력자원을 활용해 안정화하는데 큰 무리가 없는 상황이다. 특히 서부의 풍부한 천연가스를 동부로 이동하는 서기동수(西氣東輸)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규모를 갖고 있는 사업이다.

외자기업 등 흡수하기 위한 당근정책

시안 소프트웨어 개발원을 방문한 장쩌민
시안 소프트웨어 개발원을 방문한 장쩌민 ⓒ 연구원홈
중국 정부는 서부대개발의 성패가 동부 때와 마찬가지로 외자기업 유치에 있다고 직감하고 있다. 다만 동부의 자국기업을 개발의 균형이라는 점에서 최대한 흡수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동부개발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당근을 준비하고 있다. 2001년 12월에는 서부대개발 관련 '포괄적 우대조치'를 발표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정부가 권장하는 산업분야에 투자할 경우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일률적으로 15%의 소득세율을 적용할 방침인 것으로 밝혔다. 소득세율 15%는 다른 지역의 외국인 투자자 세율보다 10% 포인트 이상 낮은 것이며 중국 국내기업의 33%에 비하면 파격적인 조치다. 일부 소수민족 지구의 경우 만약 성(省)정부의 승인을 받으면 이보다 더 낮은 소득세율을 적용할 수 있게 하기도 했다. 우대조치에는 세금뿐 아니라 금융, 무역, 토지사용, 자원개발 및 이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 개혁개발 종합시험지역, 민족경제 진흥지역, 국제상무지역, 여행지역, 가공무역지역, 경제합작시범지역, 보세지역 등을 설립해 조직적으로 외자기업을 유치한다. 또 무역관리제도 개혁으로 수출입 권한을 대폭 확대하는 한편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한다. 또 서부지역에 투자한 외상기업에게 연해지역에서 서부지역까지 운송비 등 재비용을 보상하는 조치도 마련중이다.

서부가 안고 있는 문제

중국이 중남부에 비해 서부의 개발을 늦춘 데는 중국 자체적으로 생각했을 때도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환경 문제다. 청두 지역의 경우 수자원의 오용과 남용 등 전체 생산액의 13% 가량인 1500억위안에 달하는 생태환경 파괴비용은 넘어야할 가장 큰 벽이다.

이미 중국 내부보고서가 지적했지만 엉성한 수자원 관리와 후진적 관개체제는 지금까지 서부의 사막화와 환경악화를 초래했으며 이에 따라 서부 대개발에서는 환경, 생태계, 수자원 이용과 보존에 최우선 순위가 두어져야 할 실정이다.

서부는 창지앙이나 황허의 발원지일 뿐만 아니라 최근에 최대의 환경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황사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잘못하면 서부는 중국인들의 물과 공기를 독으로 만들 수도 있는 땅이기 때문이다. 이런 심각성을 알뿐만 아니라 개발이후 보호를 위해 훨씬 많은 자금이 소모되는 것을 아는 중국 정부는 환경 보호를 서부의 중요한 전제로 삼았다. 때문에 다양한 환경개선 방안을 전제하고 있다.

또 아무리 많은 개선방향이 나온다고 해도 물류비용이나 시간상의 문제는 투자기업들이 서부로 가는 것을 꺼리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다. 산업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소중에 하나인 인력자원이라는 측면에서도 어려움이 많다. 청두, 시안, 충칭에 대학 등에는 많은 대학이 포진해 있지만 동부나 남부에 비해 인재풀이 넓지 않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서부는 소수민족이 넓게 분포해 민족간의 갈등이 적지 않은 곳이다. 커뮤니케이션이 상대적으로 원활하지 못하다는 점도 적지 않은 문제다. 또 빈부격차가 심해 갈등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마케팅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 진출의 가능성과 한계

그러면 우리 기업들은 서부에게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을까. 2000년 이후 장쩌민은 물론이고 주룽지 등 중국 정계의 주요지도자들은 한국기업이나 정계 인사를 만날 때마다 서부대개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99년 11월과 2000년 5월 주중한국대사관의 주도하에 민관 합동 투자, 무역 사절단이 쓰촨 등은 물론이고 깐수, 신장 등지를 방문했다. 하지만 당시 서부를 방문했던 이들의 대부분은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고, 이후에 투자 성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등 결과물은 거의 없었다.

충칭의 경우 이미 항공노선을 취항한 아시아나항공과 포스코 정도가 있는데, 두 기업 모두 장기적인 투자보다는 우선의 소비추세에 맞춘 투자가 대부분이다. 포스코의 경우 중국 서부대개발 사업의 핵심인 서기동수(西氣東輸) 프로젝트 3차 입찰에서 외국업체로는 유일하게 최고급 강관용 열연코일 5만t을 수주하기도 했다.

청두는 대우, 금호나 LG가 이미 교통, 가전업으로 진출했다. 산전이나 타이어, 농신 등도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또 포클레인 등 중장비를 생산하는 대우중공업은 서부대개발로 인한 중장비 특수를 톡톡히 보고 있는 기업이기도 하다.

우리 기업이 서부로 가는 가장 큰 문제는 작게는 언어나 문화 차이에서 기업 형태 등 다양한 한계가 있다. 청두나 충칭 등 쓰촨 지역은 보통화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쓰촨화를 사용하고, 보통화를 사용하는 이들에 대한 반감도 있어서 쓰촨화를 구사하는 인재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하지만 현재 청두에서 공부하는 3백여명의 유학생들조차도 쓰촨화를 따로 공부하는 이가 거의 없다.

또 서부 대개발에 우리가 참여할 부분이 거의 없다는 것도 문제다. 중국 정부는 서부에서 환경을 지키기 위해 자원개발에도 적지 않은 주의를 쏟을 만큼 조심하고 있다. 또 수백 만불 수준의 투자가 아닌 최소 천만불 이상의 투자야만 서부에서 자구력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의 투자력을 갖춘 한국기업도 적을 뿐만 아니라 투자 분야도 불명확하다. 때문에 중국 정부는 불명확한 투자보다는 ‘인프라 구축’이나 ‘과학기술교육’과 같은 기반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또 ‘하이테크 산업’의 진출을 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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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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