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차 싶었습니다. 그는 이미 배를 타고 떠났을 것입니다. 나는 쫓아가 붙잡지도 못하고 망연히 서 있습니다. 어쩐지 낯이 익더니만.

틀림없이 그였습니다. 얼마나 섭섭했을까. 이 먼 섬까지 부러 찾아온 것을 나는 그를 몰라보고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하루를 내 집에서 묶었는데도 눈치조차 못 챘습니다.

낯이 많이 익구나 생각했지요. 세상에는 비슷한 사람이 참으로 많아 그 또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려니 했지요. 하지만 지금 다시 찬찬히 생각해보니 그가 틀림없습니다. 옛날에는 말랐었는데, 살이 약간 오른 것말고는 단아하고 수줍은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몇 달 전 내 홈페이지 방명록에 반갑지만 쓸쓸한 글 하나가 올라왔었지요. 춘천이란 이름으로 쓴 그 글에는 미안함과 죄스럽다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언제 한번 꼭 찾아가겠다고 했었지요.

누굴까. 말투로 봐서 교도관은 아닐 것이다. 함께 유형을 살던 동지는 더 더욱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누굴까. 왜 죄스럽다고 했을까.

그때 나에게 모질게 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교도관이야 직업이 지키는 사람이라 섭섭하게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심한 정도는 아니었고, 그들도 대부분 따뜻하게 대해 주었는데. 한동안 고민하다 곧 잊고 말았습니다.

그가 돌아간 뒤에야 그 글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그래 그가 틀림없어.

10년 전, 춘천 교도소에서 나는 그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그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라는 이유로 감옥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많은 동료들처럼 그는 총을 드는 대신 감옥을 택했지요. 지금에 와서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그 당시 이 나라에는 사상의 자유뿐만 아니라 종교의 자유도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여호와 증인 신자처럼 그는 그곳에서 '소지'라고 불리던 청소부로 출역했습니다. 그는 공안 사동의 '소지'였습니다.

공안 사동의 우리는 사상의 자유를 위해, 그는 종교의 자유를 위해 국가 권력에 저항했습니다. 하지만 똑같이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감옥에 들어왔어도, 우리는 양심수였고, 그는 일반 형사범 취급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들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에게 늘 미안했습니다. 그와 이야기하면서 당신도 양심수니 당당하게 잘 견뎌낼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한 적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대책 없는 위로였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오래 기억에 남았던 것일까요. 인생은 흰 망아지가 문 틈새로 지나가는 것처럼 짧다고 했습니다.

그도 나도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고 10년의 세월이 순식간에 흘러가 버렸습니다. 그는 풍문으로 들었는지, 잊지 않고 나를 찾아 왔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잠시 묶어 가는 낯이 많이 익은 손님으로만 생각했지요. 어째서 그는 말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나는 또 어째서 그를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것일까요.

그때 춘천에서, 그는 무엇이 그토록 죄스러웠던 것일까요. 실상 죄스러워 해야 할 것은 나였으며 양심수라 불리던 공안 사동의 우리들이었어야했는데 말이지요.

1년쯤 전부터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가 공론화 되어 사회적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벌써 10년도 전에 양심적 병역 거부를 실천했고, 그로 인해 박해받았습니다.

그의 선배들은 그보다 오래 전부터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해왔습니다. 그때는 누구 하나 관심 갖지 않았었지요. 하지만 그 후로도 그들은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묵묵히 저항해왔습니다.

근래에 오태양씨를 비롯한 많은 청년들이 당당하게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실천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를 비롯한 수많은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의 오랜 저항과 희생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1991년 겨울,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거두리. 그 무렵 춘천 교도소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 그들을 나는 아주 오래 잊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다시 교도소에 들어가 추운 겨울을 나고 있겠지요.

여호와의 증인 신자 청년들도 여전히 그곳에 갇혀 기도하고 있겠지요.
사상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갇힌 사람들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이 겨울, 나는 다시 그들을 기억하며, 시간을 거슬러 연대합니다.

거두리에 어둠이 찾아들면
멀리 산아래 마을에 하나 둘
그리움의 등불 켜지고
마침내 거두리의 밤은 깊어
거두리의 한숨과 사랑도 깊어

짧게 1년 길게 10년
골병들어 골골대는 눈감아도 잠 못 드는
징역의 밤은 깊어

절도 사기 폭력 교특 방화 강간 공방
간통 공안 강도 상해 살인 소매치기 마약
하루의 징역이 또 지나간
거두리의 밤은 깊어

미현아 경식아 잘 자거라
떠나간 아내 두고 온 자식 걱정에 근심도 깊어
보고싶은 어머니
못난 자식 불효자 되어 우는 밤
눈물의 밤 회한의 밤은 깊어

저마다의 가슴 속 묻어둔 아픔 묻어둔 그리움
옛 추억에 목 메이는
거두리의 밤은 깊어
출구 없는 시대 출구 없는 어둠
거두리의 밤은 끝끝내 깊어

(졸시, '거두리의 밤', 1991년 겨울, 춘천 교도소에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