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린 미국 자본주의에 빠져 죽어가고 있다"
[농성현장 스케치]스티로폼 바닥에 담요덮은 '노숙'농성 첫째날

▲ 스티로폼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담요를 덮은 채 잠든 신부들.
ⓒ권박효원 기자
3일 새벽 1시.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은 조용했다. 두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한 미군의 회개를 요구하면서 7일간의 단식농성에 들어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 15여명의 신부들은 광장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그 위에서 담요나 종이박스를 덮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문규현 신부가 농성에 돌입하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번 기회에 노숙자를 이해해야지"라고 했는데 정말이지, 노숙자가 따로 없었다.

신부들은 비교적 '포근한 날씨'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다. 물컵이 놓여진 탁자에는 벌써 새하얗게 성에가 끼어 있었다. 바깥 기온은 영하.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은 도로라는 광화문 앞 도로에 차가 지나갈 때마다 찬바람이 쌩-하게 불면서 노숙 신부들의 뺨을 할퀴고 갔다. 신부들은 '노숙'을 대비해 겹겹이 껴입었지만 천막없는 농성은 아무래도 쉽지 않아 보였다.

마침 깨어있던 전종훈 신부와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깎은 머리는 두터운 털모자 속에 감춰져있었다. "괜찮으세요"라고 말을 걸었더니 전 신부는 "우리는 80년대부터 거의 해마다 단식했으니까... 힘드시죠, 배고프시죠, 이런 질문은 우리 신부들에게는 해당이 안 돼"라고 대답했다.

전 신부는 "오늘 시민들이 많이 왔지만 아직 무관심에서 관심으로 조금 방향을 튼 정도"라며 "한꺼번에 달라지리라 보지 않는다. 우리들은 그저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은지 물었다.

"밥만 먹으면 살 수 있나? 숨만 쉰다고 살 수 있나? 사는 게 다 사는 게 아니야. 우리 사회는 미국적 자본주의에 빠져서 죽어가고 있어. 미국이 짓밟아도 나만 살면 된다고 생각하지. 군사독재 때문에 그래. 딴 생각 못하도록 너 먹고사는 것만 생각하도록 길들여져 왔어. 내 옆 사람이 죽어도 불의를 저질러도 가만있도록..."

부끄러움에 할 말이 없어진 기자가 "사진 찍고 가겠다"고 하자 전 신부는 껄걸 웃으며 "<오마이뉴스>에 독자 의견 쓸 수 있지? 독자들에게 물어봐. 어떤 생각이 드는지"라고 말했다. / 권박효원 기자


<2신:2일 밤 10시30분>

시민과 신부, '반미촛불'로 하나되다
광화문네거리에서 열린마당까지 촛불 이어져


단식농성에 나선 신부들.
단식농성에 나선 신부들. ⓒ 오마이뉴스 권박효원
촛불을 든 시민들이 단식을 결의한 신부들과 만났다. 시민들은 촛불을 든 채 광화문 네거리에서 미대사관 옆 시민열린마당까지 이동했다. 여러 차례 계속된 경찰의 제지도 이들의 발걸음을 막지 못했다.

매일 오후 6시 광화문 교보문고 빌딩 종로 쪽 출구 앞에서 열리는 여중생 범대위 선전전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 50여명은 즉석에서 촛불을 들고 집회를 가졌다. 이 중에는 "지난 주말 출장 때문에 촛불시위에 불참한 것이 아쉬웠다"는 회사원도 있었고 "책을 사러 나왔다가 참여했다"는 고등학생도 있었다.

이들은 집회를 마친 뒤 "신부들을 격려하러 가자"며 한 줄로 엄숙하게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으로 향했으나, 곧 경찰이 나서서 제지했다. 경찰과 시민들은 미 대사관으로부터 100m 떨어진 광화문 네거리 '고종 즉위 사십년 칭경 기념비전' 옆에서 약 40분 정도 대치했다.

집회 사회를 보던 이승헌 민주노동당 통일자주국장은 "우리가 미 대사관 앞을 지난다고 무슨 일이 생기겠냐. 우리가 지금 폭력시위를 하는 것이냐"고 항의했지만 경찰의 병력은 늘어났다. 집회를 보고 뒤늦게 참여하는 시민들이 늘어나면서 시위대도 10명 정도 증가했다.

결국 시민들을 기다리던 신부들이 직접 광화문 네거리로 이동했다. 신부들과 시민들은 둥글게 서서 집회를 가졌다. 시민들과 신부들은 서로 반가운 눈웃음으로 인사를 나눴다. 삭발한 신부들을 보며 "어, 스님 아니예요?"라며 농담을 던지는 시민도 있었다. 광화문 네거리의 즉석 집회는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때리면 맞으세요. 우리는 갑니다."

이 자리에서 문정현 신부는 '종이 비행기'와 '용감한 과자'를 열창했고, 전종훈 신부는 "작은 힘이나마 모아서 미국을 참회시키기 위해 단식농성을 시작했다"며 시민들에게 철야 단식농성의 취지를 설명했다.

7살 짜리 딸과 함께 거리에 나선 고등학교 교사 김성애(36)씨는 "미선이와 효순이의 사진을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아뒀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이런 일이 그 어떤 사건보다 슬프다"고 말했다.

최근식 광화문네티즌연대 대표는"오는 12월 6일 오후 1시~2시, 밤 12시~1시에 사이버테러 3차 공격이 진행될 예정"이라며 "여중생 범대위 홈페이지(www.antimigun.org) 등에서 공격 툴을 다운로드 받아 실행해달라"고 당부했다.

일부 시민들이 "우리가 불법하는 건지, 경찰이 불법하는 건지 가르쳐 달라"고 말하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덕우 변호사는 "서울시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범죄자가 아닙니다"라고 답변했고, 이에 시민들은 "우리입니다" "맞습니다"라면서 호응하기도 했다.

이덕우 변호사는 이어 "우리는 범죄자가 아닌 우리나라의 주인"이라며 "1명씩 흩어져 시민 열린마당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이 변호사가 "때리면 맞으세요. 우리는 갈 것입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이자 장내 분위기는 사뭇 결연해졌다.

시민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삼삼오오 흩어져 경찰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지하도로 들어가거나 뒷길로 돌아가는 시민도 있었다. 경찰은 교보문고 빌딩과 한국통신 빌딩 앞에서 10m 간격으로 수겹의 스크럼을 짜 시민들을 막아섰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지나가는 것도 죄냐"며 항의했고 결국 촛불을 켠 채로 경찰의 스크럼을 피해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으로 이동했다.

"미 대사관 앞길, 우리땅으로 되돌리자"

집회를 마치며 신부들과 시민들이 한 자리에 모여 다정하게 기념사진을 찍었다.
집회를 마치며 신부들과 시민들이 한 자리에 모여 다정하게 기념사진을 찍었다. ⓒ 오마이뉴스 권박효원
오후 8시경, 흩어졌던 시민들과 신부들이 다시 만났다. 부상자는 없었고 이탈자도 거의 없었다. 이들은 미대사관을 향해 "효순이를 살려내라" "미선이를 살려내라" "조지부시 사과하라" 등의 구호와 함성을 외쳤다.

이승헌 민주노동당 자주통일국장은 "오늘 경험했듯이 미 대사관 앞길은 우리 땅이 아니다. 제대로 행진도 할 수 없다"며 "이제 우리가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문규현 신부는 "무릎을 꿇고 사느니, 주권을 박탈당해 사느니, 생명과 평화를 위해 죽음으로 기도하겠다"며 역설했다.

시민들과 신부들은 사이좋게 기념사진을 찍고 오후 8시 40분경 헤어졌다. 시민들이 돌아간 뒤 신부들은 철야농성을 위해 스티로폼 위에 얇은 매트리스를 깔았다. 천막도 없는 농성이다. 천막은 치지 말라는 경찰측 경고에 "필요없는 싸움은 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스티로폼만 깔고 농성에 돌입한 것이다. 첫날인 2일 밤이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서 이들은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 소파 개정위해 나섰다"
가수 이정현씨, 촛불시위 참여

▲ 가수 이정현씨가 문규현 신부와 함께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 촛불을 들고 섰다.
ⓒ오마이뉴스 권박효원
이 날 촛불시위에는 가수 이정현씨가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이정현씨는 케이블 음악방송 'm.net' 프로그램에 출연한 뒤 8시 15분경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 도착했다.

이씨가 탄 차에는 "효순아, 미선아, 얼마나 아팠니" "청소년이여 일어나라"등의 문구가 적혀져 있었다. 이씨 자신의 아이디어다.

인터넷에서 촛불시위 소식을 접하고 달려온 이정현씨는 "정부는 소파를 개정하지 못할 것이다. 소파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뿐"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씨는 "일본에서 미군 성추행 사건이 일어났을 때 클린턴 대통령이 사과했던 것 같은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며 "이번 주 토요일에 만나자"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 주말 촛불시위를 보고 감동을 받아 SBS 무대에 서면서 촛불을 들고 출연하려 했으나 방송사고가 날까봐 취소했다"며 "시간이 나는 대로 집회에 참여할 것"이라는 다짐을 보였다.

"연예인으로서 이런 집회에 참석한다는 게 부담스럽지 않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씨는 "나는 두려운 게 없다. 잘못된 행동이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씨는 "그러나 나는 절대 '반미주의자'가 아니다"라며 "반미 이전에 미국이 원칙을 따져 정직하게 행동하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 권박효원 기자


<1신:2일 오후 8시>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 10여명, 7일 간의 단식농성 돌입


미사가 끝난 뒤에는 문규현 신부, 전종훈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총무 삭발식이 이뤄졌다.
미사가 끝난 뒤에는 문규현 신부, 전종훈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총무 삭발식이 이뤄졌다. ⓒ 임경환
주한미군에 의한 여중생 압사사건에 대해 무죄 평결이 내려진 것에 온 국민이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천주교 신부들이 미군의 회개를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신부 10여명은 2일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살인미군 회개 촉구를 위한 생명 평화 단식 기도회'를 열고 7일 간의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단식 농성에 들어가는 문규현 신부는 "오늘 기도회는 단순한 기도회가 아니라 장갑차에 깔려죽은 여중생의 넋을 기리고, 이 두 여중생이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열리는 것"이라면서 "이번 기도회를 통해서 미국에게 참된 미사와 회개가 무엇인지를 보여줌으로써 미국이 무엇을 잘못 했는지를 깨닫게 해 주겠다"며 기도회의 취지를 밝혔다.

불평등한 SOFA 전면 개정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피켓이 기도회 곳곳에서 눈에 띄였다.
불평등한 SOFA 전면 개정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피켓이 기도회 곳곳에서 눈에 띄였다. ⓒ 임경환
이날 기도회는 단식기도회에 참가하는 사제들 외에 300여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으며, 기도회에 참석한 신부들은 주한미군의 오만함에 대한 분노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규탄 발언에 나선 김영식 안동교구 신부는 끝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연설 도중에 큰 소리로 "Fucking U.S.A", "Yankee Go Home"을 외치기도 했다.

김영식 신부는 "아이들을 죽이고도 무죄 평결을 내리는 미군의 모습을 보면서 SOFA협정 개정을 얘기할 때가 아니라 반미, 주한미군 철수, 철미를 외쳐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자신들의 입으로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하는 미국을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반미와 주한 미군 철수는 외쳐야 한다"고 말했다.

미사가 끝난 뒤에는 문규현 신부, 전종훈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총무 삭발식이 이뤄졌다. 이어 단식에 참가하는 다른 신부들의 머리카락도 하나씩 잘려 나갔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신부 10여명은 2일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살인미군 회개 촉구를 위한 생명 평화 단식 기도회'를 열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신부 10여명은 2일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살인미군 회개 촉구를 위한 생명 평화 단식 기도회'를 열었다. ⓒ 임경환
단식에 동참하기 위해 삭발을 한 김현영 울산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는 "이번 두 여중생 사망사건은 미군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내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이라면서 "이번 단식과 삭발에는 반성한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삭발식을 마친 신부들은 추위를 이겨낼 아무런 대비로 하지 않은 채 맨몸으로 단식을 시작했다. 이들은 단식 기도회를 진행하면서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열린마당에서 미사를 가질 예정이다.

한편 이날 기도회에는 정치인들 가운데 유일하게 이부영 한나라당 의원이 '천주교 신도'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부영 의원은 "국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SOFA개정과 함께 미군 병사를 다시 법정에 세우는 작업이 진행돼야 한다"면서 "미국의 반대로 쉽지는 않을 것이지만 대선에 나온 세 후보가 모두 SOFA 개정을 공약으로 내건 만큼 누가 대통령이 되든 곧 개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