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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하선사가 낙양 혜림사에 있을 때 일이다.
마침 추운 겨울이어서 법당에서 불상을 내려 불을 지폈다.
원주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어찌하여 불상을 태우십니까?" "사리를 얻으려고 하네"
"목 불에 무슨 사리가 있단 말씀입니까." "사리가 없다면 무슨 부처란 말인가."

- 연관 스님 역주, '선문단련설'중에서


(1)유곽을 지나며

평택 역 근처 유곽을 지납니다.
"어이 도사 오빠, 놀다가"
"개량 한복, 잘해 줄게, 이리와"
"스님, 나랑 도 닦고 가"

짧은 머리에, 먹색 개량 한복, 바랑까지 걸머졌으니, 영락없이 개량 한복이고, 스님이고, 도사가 되고 맙니다. 투명한 유리 벽 안의 여인들, 유곽 골목을 걸어서 지나는 행인들은 뜸하고 검고 흰 승용차를 탄 사내들이 자주 유곽을 기웃거립니다.

서로 묵계라도 한 것일까. 직접 나와서 붙들지는 않습니다.
"야, 도사, 스님, 개량 한복, 도닦고 가란 말이야. 왜 그냥 가, 어떤 년이랑 벌써 도 닦고 나오는 거야"
"나는 도 닦는 사람 아냐, 길손이지. 그런데, 보살, 춥지 않아. 찬바람 부는데 그렇게 훌러덩 다 벗고 있으면 감기 들어, 옷 좀 입어, 추운데 어서 들어가서 옷이나 입고 나와"
"안돼요, 그랬다간 삼촌한테 혼나요, 근데 아저씨는 도사여요, 스님이어요"
애 띠고 호기심 많은 얼굴이 천진스럽게 말 붙여옵니다.
"먼길 가는 길손이라니까"

화려한 속 옷 차림의 누이들. 명치끝이 아려오지만,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속수 무책의 거리. 살아 있으나 스스로 숨쉬지 못하는 생명들, 저 유리벽 속의 노예들. 평택의 밤, 나는 춥고 슬픈 나신의 거리를 하염없이 걸어갑니다.

(2)노점

평택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어젯밤에는 평택의 재래 시장 골목에서 푸줏간을 하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길떠나 여러 날을 떠돌다 문득 오래 잊고 있던 그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몇 년 만일까, 늦도록 친구와 술을 마셨지만 취하지 않았습니다.

평택 역 부근 국밥 집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길을 갑니다. 길가에 드문드문 노점들이 서 있거나 앉아 있습니다. 떡볶이를 팔고, 붕어빵을 파는 수레들, 수레조차 없이 웅크려 앉아 연탄 화덕에 밤을 구워 파는 노인들. 짧게 손님이 들고, 길게 한가롭습니다. 거리는 조용하고, 상인들은 평화롭습니다.

얼마 전, 서울에서는 노점상 단속에 항의하다 또 한 상인이 자살했다고 합니다. 저토록 평화롭게, 저토록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을 누가 죽음으로 몬 것일까. 살기 위해 단지 아주 작은 이익을 남기고 많이 고통받는 사람들을.

관청들, 관리들. 관청은 누구의 관청이며, 관리는 누구의 관리입니까.

어째서 그들은 관청 앞까지, 주택가까지 파고들어 사람 몸의 일부분을 떼어 파는 유흥업소들, 퇴폐 이발소들, 스포츠 맛사지 업소들, 유곽들은 단속하려들지 않고, 저렇게 선하고, 욕심 없고, 힘없는 사람들을 쫓아내는 일에만 골몰하는 걸까요.

관청들, 관리들, 그들은 실상 저들을 보호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던가요. 저렇게 가난한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아가도록 도와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던가요.

땅이란 본디 누구의 땅이며 길이란 또 누구를 위한 길입니까. 길에 나와 물건을 팔아야만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사람들. 길에서 물건을 파는 것이 죄가 될 수는 없습니다. 건물을 짓거나, 세 들 돈이 없어서 길거리에 나 앉아 물건을 파는 일은 오히려 동정 받고 보호받아 마땅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저 무자비한 관청과 관리들, 그들은 마치 길거리의 상인들이 굶어 죽어버리거나 거리에서 쫓겨나 도적이 되고 유랑민이라도 되길 바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3)낙랑 이발관

기차역 앞 이발소에 들어섭니다. 이제 다시 머리를 깎고 돌아가 겨울을 나야합니다.

나는 뭍에 나올 기회가 있으면 머리를 아주 짧게 깎고 들어가는 버릇이 있습니다. 두상이 아름답지 않아 삭발까지는 못하고, 최대한 짧은 스포츠 머리로 깎지요. 짧은 머리란 얼마나 생활을 간편하게 해줍니까.

보길도에는 이발소가 하나 뿐이라, 낮에는 여러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아니면 아침 여섯 시쯤 미리 약속을 정해 놓고 찾아가야 머리를 깎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뭍에 나올 기회가 있으면 이발할 때가 되지 않았어도 굳이 깎고 들어갑니다.

나주에서도 깎고, 서울에서도 깎고, 해남에서도 깎고, 오늘은 평택에서 깎습니다. 이발소 안이 휑합니다. 주인 혼자 손님을 기다립니다. 주인은 텔레비전도 켜지 않고 먼 산을 보고 있습니다.

"손님이 없군요" 주인은 웃습니다.
"다들 퇴폐 이발소로 가느라 여긴 손님이 안 오는 모양이지요"
"잘 아시는구려. 보다시피 선하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은 점점 살기가 어려워 져요"

이발소 주인은 이발 가위를 듭니다. 곧은 이발 가위처럼 그의 손은 오래도록 정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가난합니다. 가난한 이발사. 가난한 이발관, 평택 역 앞 낙랑이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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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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