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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할머니는 파란 창틀, 작은 창문 안에 머물러 계신다. 마을 최고령 할머니의 장례 의식을 촬영하러 저 멀리 테헤란에서 온 취재팀. 그 팀의 베흐저드에게 할머니는 찍어야 할 '대상'일 뿐이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살아 숨쉬는 너무도 분명한 '존재'이다.

말씀도 못하고, 음식을 잡숫지도 못하고,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시는 할머니. 할머니가 돌아가셔야 베흐저드의 일은 시작되는 것. 그러나 곧 돌아가실 줄 알았던 할머니는 하루하루 무사히 넘기시고, 베흐저드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간다.

할머니가 죽을 드시면, 그 죽을 끓여드린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마을 사람들. 열심히 죽을 쑤어 가져다 드리며 서로 인사를 나눈다. '소원을 이루세요'라고.

서로 만나서 말하면 되는 마을, 그래서 전화도 필요없는 마을 '시어 다레'는 바싹 말라 있다. 황량한 언덕 사이의 흙길은 베흐저드의 지프가 지나가면 뽀얗게 먼지를 피워올리고, 하얀 벽의 집들도 물기라곤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찌나 넉넉하고 여유있는지 급한 일이라곤 없다.

우유를 얻으러 이웃을 찾아 왔다가 잘못 들어온 낯선 사람에게 아무 말없이 그냥 우유를 주려 하고, 베흐저드를 안내하는 소년 파흐저드 역시 자기의 방식대로 행동하고 말한다. 시험보러 학교에 가야하고, 일하러 밭에 가야 할 뿐이다. 불필요한 망설임도 장황한 설명도 없다.

'할머니는 도대체 언제 죽는 거냐'는 상사의 전화가 잊을 만하면 걸려오고, 그때마다 베흐저드는 휴대폰을 들고 소리가 잘 들리는 언덕 꼭대기로 달려간다. 걸려온 휴대폰이 끊어질세라 애를 태우며 언덕 위로 차를 모는 베흐저드. 그 강박증이 눈물겹다. 휴대폰에 매달려 사는 우리들 경박한 모습도 저처럼 눈물겨울까.

할머니의 병세가 오히려 좋아지는 듯해 신경이 날카로워진 베흐저드. 어린 파흐저드에게 화를 내고는 나중에 사과하러 학교로 찾아간다. 화해의 악수를 하자고 말하지만 미처 손을 내밀기도 전에 울려대는 휴대폰. 베흐저드는 또 다시 전화를 받으러 달려간다. 자기가 악수를 청하고도 손조차 내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또 무엇일까.

우물을 파던 동네 사람이 돌더미에 묻히는 사고가 나자 베흐저드는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자기의 차 대신 마을 의사의 오토바이 뒷자리를 얻어 타게 된다. 이삭을 매달고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이리 저리 흐르는 황금빛 들판 사이로 달리는 두 사람. 눈 앞에 넓게 펼쳐지는 그 그림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자연은 우리에게 존재 그 자체로 큰 위로를 준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을 뿐이다.

어느 새벽, 마을을 조용히 떠나는 베흐저드. 낮은 울음소리가 파란 창문 안에서 들려온다. 가만히 차를 몰아 마을을 빠져 나온 베흐저드는 물가에 차를 세우고 차의 앞 유리에 물을 끼얹는다. 뿌옇던 창이 닦여져 말갛다. 풀을 뜯는 염소 옆으로 개울물은 쉬지 않고 흘러간다.

바람에 이리 저리 몸을 눕히는 황금빛 들판. 정말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가. 우리들 인생은 또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베흐저드를 바꾸어 놓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바람이었을까, 아름다운 자연이었을까, 한없이 순하고 넉넉한 사람들의 품이었을까.

한 번도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나이 먹어 약해진 한 인생의 마지막이 지닌 자연스러움과 엄숙함이 더해진 것은 아니었을까. 끝내 세상을 떠나시는 것으로 베흐저드에게 답을 주신 할머니 말이다.

물로 닦인 베흐저드의 차창이 갑자기 선명해진 것처럼, 그 무엇이 있어 우리 눈을 밝게 닦아줄까. 눈부심으로 다가와 끝없는 아름다움으로 펼쳐진 바로 그 자연이 아닐까. 숨을 거두지 않아 베흐저드를 애태우던 할머니도 결국 그 자연 속으로 들어가셨다. 언젠가 우리도 갈 그 곳으로.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 The Wind Will Carry Us /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 출연 베흐저드 도우러니, 파흐저드 소흐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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