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강제윤
이른 아침부터 뒤 안 아궁이에 군불을 땝니다.
서둘러 찾아온 추위가 두려워 나도 예정보다 일찍 메주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지난 밤 물에 불려 놨던 콩을 솥에 넣고 삶습니다.

예전에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나 어머니는 종일 불을 때 생 콩을 그대로 삶아서 메주를 빚었습니다.
나는 일을 수월히 하고 싶어 콩을 물에 불려 두었다 삶습니다.

거품이 넘치지 않도록 저어가며 두어 시간 남짓 불을 때자 누렇던 콩이 잘 익은 된장처럼 흙색으로 변해 가며 알맞게 익습니다.

생 콩을 바로 삶아 만든 메주와 불렸다 만든 메주의 맛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옛사람들이 굳이 수고를 들여가며 그렇게 했을 때는 다 이유가 있었겠지요.
하지만 게으른 나는 편한 길을 택합니다.

무르게 잘 삶아진 콩을 건져내 바구니에 담아 물을 뺍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콩들이 저절로 손길을 잡아끕니다.
하나 둘씩 집어 먹다보니 점심은 따로 먹을 필요도 없이 배가 부릅니다.

입에서 된장 냄새가 날 즈음 바구니의 콩들을 절구통에 넣고 찧기 시작합니다.
쿵, 쿵, 서툰 절구질에 절구통 밖으로 더러 콩들이 튀어 나가기도 하지만 콩은 쉽게 잘 빻아집니다.

일전에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누룩을 빻으며 몇 번씩 절구질을 할 때도 느꼈지만 이 절구통은 키가 낮아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이 절구통뿐만이 아니겠지요.
대부분의 절구통이 남자들이 사용하기에는 키가 너무 낮습니다.
돌 절구통 하나에도 인간의 역사와 시대의 모순이 담겨져 있습니다.

매일 쓰는 생활 도구인 절구통의 키가 낮은 것은 절구통을 만드는 과정에 애당초 집안 일은 남자들이 해서는 안 된다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개입했기 때문일 테지요.

남정네들이야 여인네들이 불평이라도 할라치면 키가 너무 낮아 절구질을 할 수 없다는 핑계로 피해 갈 수도 있었겠지만 여인네들은 어떠했겠습니까.
도저히 피할 도리가 없는 절구질에 나이보다 일찍 허리가 휘어 버렸겠지요.

얼마 되지 않는 콩을 빻는대도 구부려 일하다 보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 옵니다.
잘 빻아진 콩을 고무 대야로 옮겨 담고 손으로 주물러 메주를 만들어 갑니다.
네모나게 만든다고 만들어 보지만 무른 것이라 대자리 위로 옮기는 과정에서 모양이 제대로 유지되지가 않습니다.

만들어 놓고 보니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습니다.
같은 콩으로 같은 사람이 만들었으나 모양도 제 각각, 크기도 제 각각입니다.
사람 또한 그러하거니,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메주 같다고 하는 것은 틀린 비유지요.
사람은 모두가 메주와 같다고 해야겠지요.

ⓒ 강제윤
종일 부지런 떨었던 메주 만들기가 끝났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더 중요합니다.

볏짚으로 묶어 햇볕에 잘 말렸다가 군불 때는 흙방에서 잘 띄워야겠지요.
잘못 뜨면 썩어 버리니 아무리 메주를 그럴 듯 하게 만들어도 띄우기에 실패하면 모두가 허사가 되고 말지요.

어떻든 그것은 이후의 일이고 오늘 나는 메주 몇 덩이 만들어 놓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장독에는 금년 봄에 담은 된장과 간장도 잘 익어 가고 있고, 이제 다시 메주까지 만들어 놨으니 또 몇 년 반찬 걱정 없이 살게 됐습니다.

다른 찬이 없어도 들판에 지천으로 널린 풀들 뜯어다 된장국을 끓이고, 쌈을 싸먹으면 돈이 없더라도 먹거리 걱정은 안하고 살 수 있지요.

스스로 콩을 기르고, 메주를 만들고, 장을 담가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나는 행복에 겨워 춤이라도 추고 싶습니다.
욕망을 덜어가며 살아야 하는 시골 살이란 그 자체로 얼마나 큰 축복이며 은총입니까.

메주 한 덩이의 행복.
삶이란 신비로운 것이어서 메주 한 덩이 속에도 이렇듯 옹골찬 행복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 나는 메주 한 덩이 속에서 진리를 보았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