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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박물관 이종학 전 관장님
독도박물관 이종학 전 관장님 ⓒ 김윤배
독도박물관 초대관장님을 지내셨던 이종학 선생님(75)께서 지난 23일 수원 아주대학교 부속병원에서 별세하셨다.

우리 영토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평생을 바치셨던 선생님. 조금의 실수도 허락하지 않는 엄정한 분이셨지만, 속내는 옆집 할아버지 마냥 따스한 애정이 넘치셨던 우리 시대의 진정한 선비. 그러한 선생님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

언젠가 독도홈페이지를 만들며 선생님을 이렇게 소개했었다.

"이종학 관장님이 계셔 독도의 장래는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 그런 선생님이셨는데, 평생을 모아온 그 자료들이 아직도 선생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데, 몇 해 전 일본 시마네현에 자료를 들이밀며 이래도 독도가 일본영토냐 하며 시마네현 관리들의 말문을 막히게 했던 선생님의 활약이 아직도 기다려지던 때지만..

또 독도와 일제 강점기의 불법성에 관한 귀중한 자료를 들고 남북분단의 장벽을 넘어 북쪽의 역사학계와 만나 남북이 함께 일제 강점기의 불법성과 독도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의 큰 걸음이 아직도 기다려지는데, 아직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봐야한다며 수집한 자료를 한가득 들고 독도박물관으로 독립기념관으로 향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기다려지는데 말이다.

선생님은 80년대 초부터 독도에 관한 일본측 자료를 모으기 위해 수십 차례에 걸쳐 일본을 왕래하며 일본 곳곳의 도서관을 제집 드나들듯 하면서 수천 여종의 사료적 가치가 귀중한 자료들을 수집하셨다. 이렇게 한국측 자료보다 일본측 자료를 모은 것은 우리나라 자료 열 점보다 일본측 자료 한 점이 일본의 주장을 반박하는데 더 효과적이라는 선생님의 평소 지론 때문이셨다. 선생님을 이러한 일 들을 '이것을 난 일본하고, 소리없는 전쟁을 일본하고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평생 가장 기쁘고 통쾌한 일을 두개 꼽으라면 하나는 1945년 조국 광복이요, 또 하나는 1990년 7월 2일 시마네현 관계자로부터 독도는 물론 대마도까지 한국 땅이라는 항복을 받고 온 일이라고 주저없이 얘기하신다.

선생님은 당시 일본에서 구한 일본측 학자가 쓴 자료들을 시마네현 관계자에게 직접 제시하였다. 그 자료들을 통해 선생님이 독도가 일본령이라는 자료들의 문제점과 일본측 유명한 학자가 기록한 독도가 한국령이라는 확실한 증거들을 제시하자, 시마네현 관계자는 침묵 끝에 '정말 북방 영토는 우리 것이죠?'라는 궁색한 답변만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선생님은 정확한 증거 제시를 통해, 그것도 일본인이 직접 쓴 자료를 통해 독도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후세들이 어떻게 노력해야하는 지를 몸으로 보여주셨다.

울릉도 약수공원에 위치한 독도박물관
울릉도 약수공원에 위치한 독도박물관
선생님은 그렇게 모은 귀중한 자료들을 독도박물관에 기증함으로서 세상에 빛을 발하게 하였다. 울릉도 도동항 선착장이 내려다보이는 약수공원에 울릉군은 삼성문화재단의 협찬을 받아 지난 97년 8월, 국내 유일의 영토박물관인 독도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자료의 기증부터 독도박물관 설립까지 선생님의 손길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초대 독도박물관 관장님을 역임하면서 선생님은 직접 수집하신 자료의 해석은 물론이요, 박물관이 영토수호 의식과 민족 의식 고취의 역사교육장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온 열정을 다하셨다.

선생님은 지난 2000년 5월, '지키지 못하는 독도, 독도박물관 문 닫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독도박물관을 폐관시켜 버리셨다. 다름아닌 독도문제에 대한 정부의 굴욕적 태도와 행정, 입법, 사법부를 총동원하고 있는 일본정부에 비교하여 독도의 심각한 상황에 대해 사실 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선생님의 항의였다. 그렇게 선생님은 우리 정부의 분발을 바라셨던 것이다.

선생님의 올바른 역사 찾기는 남북이 따로 없었다. 지난 2001년 3월, 북한 인민대학습당에서는 남북의 아주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남북 최초 역사자료 공동전시회. 일본 문부성에서 검정한 교과서가 한일합병이 국제법적으로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서슴없이 서술하는 오늘. 선생님은 이 자리를 통해 일제의 조선 점령의 불법성을 낱낱이 보여주는 천여점의 자료를 보여주셨다. "이 증거를 토대로 해서 북은 우리가 못 받았던 사과도 제대로 받고 배상도 제대로 받아달라. 이것이 하나의 무기가 아니겠느냐 하는 의미에서 자료를 북에 몇 차례 보냈던 이유가 있는 겁니다" 왜 선생님이 그렇게 자료를 애써 모았고, 선생님이 일본과 소리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선생님은 비단 독도문제에만 관심을 가지신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의 실증주의적 정신은 우리 역사 전반을 왕래하셨다. 지금은 화성이라는 제대로 된 이름을 찾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원성이란 이름으로 널리 불려졌던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화성. 정약용 선생이 고안한 거중기를 성 축조에 이용하였고,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대왕의 지극한 효심으로 유명한 이 화성은 정조대왕이 오랫동안 덕이 넘치는 곳이라는 의미의 이름대신 수원성이라는 왜곡된 이름으로 알려져 왔다. 심지어 수원시에서는 '수원성 축성 200주년 해'라는 명칭으로 각종행사를 열기도 했다.

선생님은 화성에 관한 수많은 수집자료를 바탕으로 정부기관에 청원서를 수차례 제출함으로서 결국에는 화성이라는 이름을 되찾게 한 장본인이다. 선생님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사재1억6천만을 털어 '화성성역의궤'라는 화성 건설공사보고서를 전 세계의 주요 도서관과 학술기관에 보내 화성의 역사적 가치를 널리 알렸으며, 이러한 선생님의 노력은 결국 화성이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록으로 빛을 발하였다.

또한 선생님은 고서지학자 서인달씨가 '물건은 임자를 만나야 빛을 발한다'라면서 기증한 이순신 장군의 친필 '한산도가'를 비롯하여 선생님이 직접 수집한 수백점의 자료를 현충사에 기증하시기도 하셨다. 선생님은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이순신 장군이 해전뿐만 아니라 지상전에도 능했으며, 난중일기 번역번의 잘못된 번역 수정, 역사적 사실관계의 수정 등 여러 사실들을 올바로 찾아갔다. 역사적 자료에 관한 선생님의 보통사람을 뛰어넘는 애정과 고서적을 해석할 수 있는 선생님의 전문적 능력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선생님은 또한 최근의 동해 명칭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조차도 불렀던 고유명칭인 '조선해' 대신 '동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우리스스로 혼선과 불이익을 자초하고 있다고 한탄하시며, 동해의 고유명칭인 조선해 찾기에 혼신을 다하셨다. 이러한 노력에는 단순한 주장이 아닌, 일본측 자료를 중심으로 한 정확한 자료제시를 토대로 하였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선생님은 역사 전반을 왕래하면서 정확한 자료제시를 바탕으로 올바른 역사 찾기에 혼신을 다하셨다. 이제 그런 선생님이 우리 곁을 떠나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수원성이 화성이라는 제 이름을 찾고, 박물관에 독도에 관한 귀중한 자료들이 전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뒤안에는 선생님처럼 오직 역사와 진실에 대한 열정 하나로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아주대 병원을 찾아갔다. 가족 몇 분이 선생님의 살아생전 업적과는 너무도 초라하게 선생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하고 있었다. 비록 그 업적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 않을 분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이렇게 보내드려야 하는게 남은 자의 도리인가를 생각하면 참으로 가슴 쓰리다.

밤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오면서 택시 기사 분이 했던 말이 머리에 떠나질 않는다.
"그 분을 뜻을 잘 이어 가야제. 근데 뒤를 이을 사람은 있소?"
어쩌면 이 물음은 선생님을 대신해 우리에게 물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오늘이면 한줌의 재로 우리 곁을 떠나가시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사학자셨던 이종학 선생님. 선생님이 언젠가 말씀하셨던 것 마냥 독도에 선생님의 유해가 많은 사람들의 애도속에 묻혀지기를 내심 바래본다.

비록 선생님은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우리 시대의 진정한 스승을 만나 더할 나위없이 기뻤다는 것으로 애써 위안을 삼고 싶다.

"제가 이렇게 많은 자료를 동분서주하면서 모으는 목적은 국제사법재판소에서의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집된 이 자료를 증거로 하여 세계만방이 독도는 엄연한 한국의 땅임을 스스로 알게 하여, 일본에게 감히 무력에 의한 전쟁의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함입니다."

우리시대의 진정한 스승, 독도의 큰 어른 이종학 선생님.
고이 잠드소서.

덧붙이는 글 | 이종학 선생님 사이버 추모관 http://www.tokd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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