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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김오주
모 대학 화장실에서 은밀히 분출된 욕구, '난 잭키 팬이다’매직으로 굵게 칠해져 있는 이 낙서는, 자신이‘빠순이’임을 드러내는‘커밍아웃’이다.

소위 ‘오빠부대’로 불리는 ‘빠순이’는 극성스럽고, 물불 안 가리고, 맹목적이라는 늬앙스를 품고 있기에‘지성인’이라는 대학생이 이러한 고백을 한다는 것은 이제는 무거운 짐을 벗어 놓겠다는 선언처럼 보이기도 하고,‘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며 비밀을 폭로하는 심정과도 닮아있다.

낙서에 대한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대체적으로‘정신 차려라’라는 훈계적 어조나 ‘대학생이 이래서야’라며 통탄하는 어조로 일관하는 등 주로 비하적 반응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대중문화, 그것도 아이돌 그룹‘따위’를 좋아하는 주제에, 찍소리 못할 줄 알았던 대학생 빠순이들의 대응은 사뭇 진지하다. 아니, 오히려 이러한 논쟁을 기다렸다는 듯이 화장실 벽이라는 것도 개의치 않고 정성 들여 답변을 잇는다.

대학생 빠순이의 이중성

ⓒ 임김오주
강모씨는 96학번으로‘빠순이’생활을 하기엔 이미 먹을 만큼 먹은 나이이다. 그러나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이나 대학 때나 가수 G 그룹에 대한 애정은 변함없는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 기획사 홈페이지에 가서 G 그룹의 스케줄을 체크하고, 방송국 리허설을 챙겨 다니기도 하며 집 앞에 가서 사인을 받아 올 정도로 열심인 강씨. 이렇게‘빠순이’로서 빠지지 않을 내력을 자랑하는 그이지만, 자신을 유치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진 않다고 말한다.

“솔직히 많이 유치하죠. 근데, 누굴 좋아하는데 유치하지 않게 할 수 있는 건가요? 소위 좀 고급스러운 음악을 좋아하는 감정이나 아이돌 댄스그룹을 좋아하는 감정이나 본질적으론 같다고 생각해요. 나이요? 그런거 생각했으면 빠순이 되지도 않았죠.”

유치함에도 미덕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콘서트 장에서 “오빠-오빠-”를 외치며 소리지르는 모습으로보나 좀 더 앞자리를 맡으려고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으로 보나‘현장’에서 보여지는 대학생들의‘유치함’은 중·고등 학생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건만,‘대학생’임을 드러내야 할 때에는 사실은 큰 관심 없었다는 듯이 심드렁한 태도를 보인다고 한다. 오히려 소모적일 정도로‘추종’가수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강모씨 말에 의하면, “10대들은 같은 유치함이라도 거리낌없이 발산하지만, 대학생들은 무언가 고급스런 대중문화를 즐긴다는 허위의식으로 감정을 감추려 드는데, 오히려 그게 더 유치해 보인다”고.

그래도 나는 빠순이다

하지만 굳이 숨기려 드는 대학생 빠순이들을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다. ‘빠순이’임을 공개하게 되면 십중팔구‘니가 그러고도 대학생이냐’, ‘한심하다’는 식의 냉소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팬 개인의 감정이나 공감하는 바에 대한 아무런 이해 없는 무조건적인 비하는 받아들일 수 없다. 이제는 대학문화만의 고유함을 주장하며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빠순이’, 혹은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묻는다. 도대체 ‘대학문화’가 있기는 하는 것이냐고.

대학 1학년 때부터 가수 S 그룹에 대한‘빠순이’생활을 해오던 성균관대 박모씨는 “대학 문화를 규정짓기 전에 우리의 대학을 한번 뒤돌아보고, 대학 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있기나 하냐"며 비난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처럼 대학은 또다시 직장으로 나아가는 통과의례로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면서 대학 자체가 의미를 잃은 상황 속에서 특수한 문화를 고민해야할 필요성을 느낄 수 없는 상황적 이유도 있음을 이야기했다.

대학의 의미 외에도 현 대학생들의 ‘세대적’ 특징이 대학과 대중문화와의 갭을 좁힌 이유이기도 하다. 80년대 적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중·고등학교 때까지 이렇다할 문화생활을 누리지 못하다 대학에 진학한 세대가 대학 구성원이 되었었지만, 현재는 93년‘서태지 붐’ 이후부터 대중문화를 어려서부터 흡수하며 자란 세대들이 대학 구성원이다. 어렸을때부터 자연스럽게 접해 왔던 대중문화를 의식적으로 배척하려는 것은 ‘대학문화’를 정의 내리는 것보다 어려운 것일지 모를 일인 것이다.

대중문화가 대학에 접목 될 때 특성에 맞게 재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기존 대중문화를 소비 할 뿐이라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고 S 그룹의 학교 소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씨는 지적한다. 대중문화 수용의 능동적 주체가 아니라 여전히 수동적으로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에 강모씨는 “대중문화를 어떻게 재창조하고 무엇을 생산해 내느냐에는 아직 어려운 점이 많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대학생이 대중문화를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냐는 주체성에 대한 자각이다”라고 덧붙인다.

덧붙이는 글 | 대학생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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