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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이회창 대세론'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현재의 대선 구도를 볼 때, 어떤 경천동지할 막판 변수가 없는 한 이회창 후보가 차기 대통령이 되는 것은 필지의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현 정권에 대한 '국민적' 염증, 다른 후보들의 상대적 약세 등 많은 원인분석들이 구구하게 뒤따른다. 듣기에 그럴듯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대세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말 속에서는 음모적 여론 조작의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11월 13일자 '동서남북'에 실린 강천석 논설실장의 글, '단일화가 묘책인가...'를 보면, 이 '대세론'이 풍기는 못된 구린내가 무엇인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할 말은 하는 신문'의 논설실장 글답게 "이제 솔직해져야 할 때가 왔다. 본 대로 느낀 대로 말해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와 함께 시작하는 이 글은, 여러 여론조사 통계치를 빌려 설사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이회창 후보의 필승은 막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왜 그런가? 그것은 이회창 후보의 카리스마도 매력도 아니고 오직 '현 정권에 의해 상처받은 국민의 마음'이 현 정권을 계승하거나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판단하는 세력에 대해 점수를 주지 않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납득할만한 글처럼 보인다. 부패정권에 대한 염증과 분노가 새 정권의 등장에 대한 요구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새 정권이 이회창 후보가 이끄는 한나라당 정권이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부패 때문에 현정권에 등을 돌리는 국민이 부패에 관해서라면 현정권보다 앞서서 보여줄 것은 다 보여준 데다가 그나마 현정권보다 민주제도의 정착이나 평화통일의 추진이라는 점에서도 훨씬 못 미치는 한나라당의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정권의 실정에 대한 염증=한나라당 이회창후보 지지=이회창 대세론'이라는 이 글의 등식은 '좋았던 시절'로 한시 바삐 돌아가고 싶은 논설자와 그가 속한 신문의 주관적 기대와 희망으로 버무려진 가짜 등식에 불과하다. 현정권의 부패에 대해 염증을 갖는 국민은 절대다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은 30퍼센트를 겨우 넘을 뿐이다.

그 30%의 '국민들'은 이회창 이전부터 이회창의 다른 이름인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를 지지했던 바로 그 사람들일 뿐이다. 그리고 그 30% 안에 조선일보와 그 논객들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들 스스로가 무척 섭섭해 할 것이다.

현정권에 대한 국민적 실망에 대한 반사적 이익을 고스란히 이회창 진영에 헌납하려는 이런 식의 '대세론'은 명백히 혹세무민이다.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김대중정권에 대한 실망을 수구보수냉전정권에 대한 지지로 연결시키지 않는다. 지역화합과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통일이라는 가치는 이제 움직일 수 없는 국민적 합의이다. 다만 그 합의를 헌신적으로 실천할만한 새로운 리더와 그 리더를 뒷받침하는 건강한 정치집단을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대세론'은 이러한 국민적 합의와 여망을 다시금 패배주의와 자기모멸의 진흙탕으로 끌어들이는 수구세력, 특히 조선일보와 같은 수구언론의 악질적인 반시대적 여론조작일 뿐이다.

▲ 김명인 (문학평론가)
ⓒ 희망네트워크
지금 정신이 제대로 박힌 언론이 할 일은 국민들로 하여금 이번 선거를 기해 김대중 정권의 공과를 명확하게 판단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살릴 것은 살려서 민주주의의 정착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또 하나의 디딤돌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식물상태에 빠진 현정권이 이를 위한 여건을 만들지 못하고 있고, 국내 최대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신문이 저처럼 '대세론'의 미망에 달떠서 혹세무민의 외길을 가고 있는 이 때, 각성한 언론들의 곧은 신념과 정직하고 공정한 보도가 진정한 '국민적 대세'의 소재가 어디인지 밝혀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2002년 대선을 앞둔 시기, 신문의 편파·불공정·왜곡보도에 대한 감시운동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대표세대인 3,40대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희망네트워크'(www.hopenet.or.kr)의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는 매주 화, 목, 토 격일간격의 모니터링 칼럼을 이어가고 있다.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에는 김명인씨를 비롯해 김택수 변호사, 이용성 한서대 교수, 김창수 민족회의 정책실장,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 권오성 목사,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 권오성 목사, 소설가 정도상씨,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김근식 교수, 권오성 수도교회 목사, 대학생 오승훈씨,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지낸 방인철씨 등 각계 전문가가 함께 하고 있다.

독자로서 필진에 참여하고자하는 분들은 희망네트워크 홈페이지(www.hopenet.or.kr)「독자참여」란이나 dreamje@freechal.com을 이용.-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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