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8월 16일 제조된 문제의 농심 '안성탕면'
8월 16일 제조된 문제의 농심 '안성탕면' ⓒ 오마이뉴스 공희정

한국인들에게 라면은 이미 쌀밥에 버금가는 주식으로 인식된 지 오래다. 라면이 국민적 사랑을 받아온 음식인 만큼 제조업체들은 소비자들의 불만과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귀기울이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러나 국내 라면시장의 7할을 점유하고 있는 한 대형 라면업체의 소비자불만에 대한 대응자세는 일반적인 상식과는 한참 거리가 있어 보인다.

며칠 전 <오마이뉴스>에 제보 하나가 접수됐다. 지방에 거주하는 그 제보자는 자신이 즐겨먹는 라면에서 심한 악취가 나 제조사에 연락했더니 적절한 조치는커녕 도리어 이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현장취재와 함께 해당 라면제조업체 관계자의 해명, 관련 신고 사례, 동업계 관계자의 증언 등을 다각도로 취재해 그 실상을 알아보았다.<편집자 주>


지난 11월 11일 <오마이뉴스>에 전북 익산에서 자영업을 하는 L모씨(37세)로부터 전화 제보가 들어왔다. 그가 제보한 내용은 대충 이렇다.

지난 10월말 경 그는 전북 익산 소재 한 대형 할인점에서 (주)농심이 제조한 '안성탕면'(8월 16일 제조) 1박스와 '신라면' 1박스를 각각 샀는데, 안성탕면(생라면 상태)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더라는 것.

끓이면 괜찮겠지 하고 그 가운데 몇 개를 '신라면'과 섞어 끓였는데, 이상한 냄새는 더욱 심해졌다. 문제는 이 라면을 먹은 식구들이 모두 '설사'를 했다는 것. 그러나 그 때까지만 해도 L씨는 라면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안성탕면', "냄새 문제로 행정지도 받기도"

▲ 농심 안성공장

농심은 지난 11월 초 안성시청으로부터 8월달에 제조된 '안성탕면'에서 냄새가 난다는 민원 때문에 '행정지도'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민원은 노원구에서 사는 한 주민이 처음 제기를 해, '농심' 본사가 있는 동작구로 민원이 이첩됐다가 다시 안성탕면 제조공장이 있는 안성시청으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노원구청은 지난 10월말경, '안성탕면'(8월 19일자 제조)에서 냄새가 난다는 민원을 접수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 조사 의뢰한 결과 '성상(모양, 냄새)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안성시청 위생과의 한 관계자는 "농심측에 해명을 들어본 결과 유통,보관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농심측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여 재발 금지를 요청하는 수준에서 '지도'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 공희정 기자
며칠 후 여섯 살 짜리 딸아이가 라면을 먹고싶다고 해서 마침 '신라면'은 다 떨어져 '안성탕면'을 끓였는데, 지독한 냄새 때문에 도저히 먹일 수가 없었다. 그제 서야 라면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그는 라면 겉봉에 표기된 '농심소비자상담팀(서울지역 080-023-5181, 수신자부담)으로 전화를 걸어 문의를 했다.

그는 농심측의 상담원으로부터 대뜸 "몇월달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고 "8월달 것"이라고 답하자, 상담원은 별다른 대꾸 없이 "주소가 어디냐, 바꿔주겠다"며 순순히 응했다는 것.

신고내용을 제대로 듣지도 않은 채 상담원이 너무 쉽게 제품의 '하자'를 인정하는 것을 이상하다고 느낀 L씨는 다시 농심 익산지점 관계자에게 문의했더니 그 관계자는 "제조과정에 문제가 있어 (조용히) 제품을 수거하고 있다"고 털어놓더라는 것이다.

익산지점 관계자의 말처럼 제조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악취라면'이 만들어 졌다면, 제조사가 공개적인 리콜을 통해 전 물량을 수거해야 하는 것이 '상도의'라고 판단한 L씨는 그 다음날 농심 본사 영업부에 항의를 하기 위해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본사 영업부 측의 답변은 익산지점 관계자와는 전혀 상반된 것이었다. 본사 관계자는 "(악취라면은)더러 있는 일이고, 제조과정에는 문제가 없으며 단순히 유통과정의 문제일 뿐"이라고 답한 것. 하루만에 모든 내용이 뒤집어 진 것이다.

이에 격분한 L씨는 언론을 통해서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오마이뉴스>에 제보하게 됐다.

'악취라면'을 찾아서

지난 14일 <오마이뉴스>는 제보자를 만나기 위해 전북 익산으로 향했다. 제보자 L씨는 문제의 '악취라면' 다섯 봉지를 물증으로 보관하고 있었다. 기자가 제보자와 함께 봉지를 뜯어 확인해본 결과 문제의 라면에서는 화공약품 제조공장에서나 나는 그런 '이상한 냄새'가 났다. 게다가 문제의 라면을 끓였더니 악취는 더 심해졌다.

그러나 이어 찾아간 전북 익산의 농심 지점장의 해명은 간단했다.

제보자 L씨가 보관중인 문제의 '악취라면'들.
제보자 L씨가 보관중인 문제의 '악취라면'들. ⓒ 오마이뉴스 공희정
농심 익산지점의 김기칠 지점장은 "지난여름 장마도 길었고 너무 무더워 보관과 유통과정에서 일부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면서 "100% 무결점이란 것은 있을 수 없으며 8월에 출시된 제품에 리콜신청이 들어 온 것은 단 한 건이라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김 지점장은 이어 "제품에 문제가 있다면 1.5배로 보상하게끔 되어 있어 바꿔주면 되는데 뭐가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면서 "제품에 문제가 있다니 일단 연구소로 보내 조사중이며 일주일 후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농심 본사의 해명도 익산지점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농심 본사 홍보실의 최호민 과장은 "여름에는 온도가 높고 습해 보관에 문제가 있을 경우 제품이 변질되기도 한다"면서 "지난 8월에 출시된 '안성탕면'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며, 지금까지 이 건 이외에 다른 리콜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오마이뉴스> 취재결과 농심 익산 지점장과 본사의 해명은 전혀 사실과 달랐다.

제보자 L씨가 문제의 라면을 구입했던 익산 소재 대형유통할인점의 판매원들은 "최근 지난 8월에 출시된 '안성탕면'에서 이상한 냄새가 많이 난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많았다"면서 "소비자들이 리콜을 요청해 라면을 바꿔갔다"고 말했다.

또 익산 대형유통할인점의 관계자들도 "지난 8월 16일 출시된 '안성탕면'에서 리콜 요청이 여러 번 들어와 확인 후 문제가 있다고 판단돼 전부 수거해 폐기 처분했다"면서 "익산 뿐 아니라 다른 지점에서도 똑같은 문제로 '안성탕면' 일부가 회수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된 '악취라면'은 유통과정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제조 과정에서 생겨난 문제라는 사실이 지난 11일 제보자와 농심 본사의 영업 관계자와의 통화과정에서도 확인됐다.

농심 익산지점의 한 관계자는 "그때 생산된 제품(라면)에 기름이 잘못 들어갔다든지 그런 이유가 있는 것 같다"면서 "아직 까지도 매장에서 판매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수거하고 있으며, 구매한 소비자들 가운데서 리콜요청을 하면 다 교환해 드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같은 날짜에 출시된 제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제조사가 알았다면 광고 등을 통해 사과를 하고 즉각 리콜 하는 것은 상 도리상 당연한 것"이라면서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라면업계의 선두주자 농심이 그랬다면 더욱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안성탕면은 신라면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생산되고 있기는 하지만 하루에 1만2천 박스가 생산된다"면서 "8월 16일 출시된 제품에만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문제의 제품은 수십만 소비자의 입으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지난 8월부터 11월 14일 현재까지 약 3개월반 사이에 라면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신고된 건수는 11건에 이르는데 전부 농심에서 제조한 라면이었으며, 또 그 가운데 7건이 '안성탕면'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농심에서 제조한 라면 가운데 일부 '불량품'이 전국적으로 판매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농심측은 회사 이미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우려한 탓인지 불량품의 전량 수거 폐기처분은 미룬채 이를 쉬쉬하며 신고자에 한해 비밀리에 보상을 해주고 있는 실정이다.

소비자보호원의 한 관계자는 "불량음식물은 어떤 제조상품보다도 먼저 제조업체가 리콜로 대응해 소비자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며 "농심측이 제대로 된 대응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예상밖의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믿을 수 있는 식품' 농심(?)

'신(辛)라면'으로 대표되는 '농심'은 국내 라면시장과 스낵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라면시장점유율이 69.4%. 최근 라면판매가 대형할인점을 통해 확대되는 추세를 보여 브랜드파워를 갖고 있는 농심의 시장점유율은 더욱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부진했던 스낵부문은 올 8월 이후 판매가 늘었다. 태풍피해로 인한 과일 흉작으로 대체상품 공급이 부족해짐에 따라 스낵 판매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상반기 매출 증가율이 6%대에 그쳤던 스낵부문이 3분기부터는 10%대에 육박하고 있다.

한국투자신탁증권은 농심이 가격인상에 따라 원재료비, 물류비 부담 증가를 고려하더라도 영업이익이 연간 2백억원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농심은 국내엔 안양, 안성, 아산, 구미, 부산 등 5개 공장에서 라면, 스낵, 햅쌀밥, 저과즙주스 카프리썬 등을 생산, 판매하고 있으며, 제주도와 협력하여 먹는샘물인 제주삼다수를 판매하고 있다.

한편 지난 98년 설립한 상해 농심은 지난해까지는 적자를 냈으나 유통망확대와 고가제품판매증가 등으로 내년 이후에는 흑자 전환할 것으로 회사측은 전망하고 있다.

설립당시엔 중국산 라면보다 2배 이상 비싼 가격 때문에 고전했으나, 대리점 판매가 늘어나고 중국 내에서도 점차 고급라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 공희정 기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