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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하는 안양보육원생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하는 안양보육원생들 ⓒ 김재경
낙엽이 눈송이처럼 휘날리는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안양시 관내 보육원을 돌아보았다. 보육원(고아원)하면 먹거리가 부족하여 멀건 죽으로 끼니를 때우던 춥고 배고프던 잔상들이 먼저 떠올랐던 내 고정관념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가를 새삼 느껴본다.

우리 사회가 산업화의 영향으로 급속도로 도시화 물결에 따라 핵가족화되며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이 약화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부모와 함께 생활은 못할지라도 보육사를 중심으로 형과 동생들이 어우러져 또 다른 공동체를 이루며 자라고 있었다.

늘 기도하며 사랑으로 품어주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원장님을 중심으로 자원봉사자와 전 직원의 관심 속에 건강하고 즐겁게 생활하고 있었다. "어린이는 우리의 내일이며 소망이기에 나라의 앞날을 짊어질 새 사람으로 존중되어 바르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함"을 강조하는 어린이 헌장을 떠올릴 만큼 훌륭한 사랑이 응집된 공동체처럼 보였다.

해관 보육원

우리나라 보육원의 원조인 안양2동 해관은 경수산업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장애인 종합복지관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1918년 설립자 오긍선 의학박사가 혹한과 기아에 허덕이며 남대문 시장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을 보고 마음이 아파 고아 7명을 자택에서 양육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특히, 생계를 위해 어머니는 품팔이 나가고 아버지는 일제에 항거하는 혁명 투사나 독립운동가의 자녀 구제에 앞장서온 이곳은 경성보육원으로 출발, 1972년 기독 보육원으로 개명했으나, 1998년 오긍선 박사의 호인 해관으로 개칭하게 되었다.

1세~18세까지의 영·유아 보육시설인 해관은, 설립자 가족이 대를 잇지 않고 행정경력이나 사회복지에 덕망 있고 능력 있는 인물을 외부에서 물색하여 임명해오고 있다.

정어진(63세) 원장을 비롯하여 직원들의 보살핌으로 105명의 아이들이 생명의 존엄성과 인간 평등사상을 기본으로 쾌적한 환경 안에서 보호, 교육되고 있다. 정 원장은 "세례교인 이상을 직원으로 채용하는데 처음에는 직업으로 오지만 함께 일하다보면 봉급 받는 것조차 잊게 되고 생존하며 숨쉬는 생활까지도 감사하게 된다"고 한다.

정원장의 안내로 숲 속의 쉼터처럼 아름다운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영아들이 있는 수선화 숙소에 들어서자 천사처럼 맑은 눈을 가진 귀염둥이들이 "엄마! 엄마!"하며 두 팔을 벌려 안겨든다. 방 안에서는 한 여자아이가 고운 눈을 살포시 감고 쌔근쌔근 잠이 들었고, 다른 아이들은 거실 소파에 올라서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거실과 칸막이가 된 주방에는 젖병이 정갈하게 소독되어 있고, 보육사들은 이유식 준비로 분주해 보였다. 엄마는 지체 장애자이고, 아버지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돌 무렵에 이곳에 들어온 14개월 남아는 선천적으로 몸도 가누지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이곳에 입소해서 X-RAY와 MRI 전신촬영 및 병원치료를 받으며 이제는 상태가 많이 양호해졌다. 몇 개월 더 자란 아이들은 이 아이에게 "아가야~"라며 제법 잘 보살펴 주고 있었다.

정 원장은 "아이들을 잘 양육해야 하는데 가정 파탄이나 알코올 중독자 부모 밑에서 비틀어져 자란 아이들이 이곳에 올 경우는 애를 먹는다"며 "보육사에 따라 양육상태나 숙소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금년 양명여고를 졸업하고 중앙대 체육학부에 수석으로 입학한 여대생은 온순한 성품으로 아이들의 모델링이 되고 있다고 하기에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함께 사는 민들레 숙소를 찾았다.

입구에 꽃꽂이부터 각종 대회 상장들과 취미활동 사진들로 아기자기하고, 필요하면 언제고 쓸 수 있도록 정리된 물품과 학습지가 가지런히 비치되어 있었다. 강유희(44세) 보육사는 봉급을 쪼개서 방석을 준비하며, 아이들의 대모로 헌신하기에 민들레방 가족들이 올곧고 학교에서는 우수한 성적의 모범생들로 통한다.

남학생의 숙소에 들린 저녁, 잘 정돈된 방안에서는 책을 읽거나 내일 학습준비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며 밝은 내일이 보이는 듯 했다.

안양보육원

석수동 안양유원지 입구에 위치한 안양(1947년 설립)은 대학캠퍼스처럼 쾌적한 자연과 조화를 잘 이룬 풍광, 산사처럼 곱게 물든 낙엽이 눈보라처럼 휘날리는 정경은 "아~"하고 저절로 탄성을 지를 만큼 운치가 있었다.

1만9천평 대지 위에 가정집 같은 건물에서 2세부터 대학생까지 113명의 원생들이 사지숙(79세) 원장을 중심으로 전직원의 사랑 속에 알콩달콩 사랑을 엮어가는 꿈의 요람이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이 차량에서 내리며 사무실에 들려 "다녀왔습니다" 인사하며 나간다.

자원봉사자들에게 악기지도를 받는 안양보육원생들
자원봉사자들에게 악기지도를 받는 안양보육원생들 ⓒ 김재경
여기에서 생활하게 된 사연도 가지가지다. 엄마는 가출하고 아빠의 구타로 아동학대 센터에 격리되어 있다온 아이는 아직까지도 아빠의 면회조차 두려워하고 있다.

교통사고를 당했던 11세 남자아이는 부모의 방임으로 깁스를 제때 풀지 않아 팔이 굳어져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태로 유치원생인 여동생들(4세, 6세)과 3남매가 함께 들어왔다. 치료비도 만만치 않았지만, 간호사를 비롯한 전 직원이 매일 합심하여 기도하며 유기농 생식까지 먹이는 정성을 보여 이제는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호전되어 가고 있다.

2세는 영아원으로 가야 되지만 언니를 따라 함께 와 있었다. 부모가 문 잠그고 일 나가며 방치되어 꼬질꼬질 때 국물이 흐르던 아이들의 행색이나 몰골은 말이 아니지만 일단 이곳에 오면 잘 먹이기에 피부에 윤기가 생기고 의상은 몰라보게 말끔해진다.

사 원장은 "여기생활에 잘 적응하는 아이를 친권자라는 이유로 술주정뱅이나 장님인 아빠가 찾아갈 때는 그 아이의 불행이 보이지만 거절할 수 없어 안타깝다 못해 애절하다. 그 아비는 생활보호대상자에게 지급되는 생계비를 아이 몫까지 챙기려는 심사이거나 장님아빠의 지팡이요 방패막이로 삼다보면 아이는 사회적인 교육도 받지 못하고 부랑아로 전락하고 만다"며 "차라리 이런 아비는 아이를 위해서는 없는 것이 바람직한데 어떠한 대책도 없음이 너무도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유아들이 생활하는 앵두 집의 엄마 겸 할머니인 하상란(65세)씨는 보육사 중 가장 이곳에서 오래된 산증인으로 12명 천사들의 대모다. 하씨는 소변을 못 가리는 천사들과 함께 숙식하며 새벽 1시쯤이면 깨워서 오줌을 누게 한다.

제일 힘든 것은 아이들이 감기로 고열이 나거나 눈병을 앓을 때로, 정말 애가 탄다. 유아들 세계지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또래집단에서 나이 순서대로 서열이 정해지며 질서를 안다.

저학년 아이들의 숙소인 튤립 집은 하교 후 간식을 먹으며 자유롭게 피아노도 치고 보육사의 지도 아래 공부도 한다. "진경이는 맨날 100점만 맞아요"라는 아이들의 합창소리처럼, 이 숙소에서는 성적이 쑥쑥 올라 전교 1등도 나왔다.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생활하는 연꽃 집 식탁에는 기본 반찬이 상보에 덮여 있고, 보온밥통에는 따끈한 밥과 국이 준비되어 있어 언제든지 먹을 수가 있다. 마침 방에는 안양여상에서 1.2등을 다투었다는 여학생이 수능이 끝난 후 TV을 보고 있었다.

이곳은 쾌적한 시설만큼이나 배우고 싶은 의지만 있으면 도전할 수 있는 꿈의 산실이다. 신나는 풍물 바이올린 피아노 미술 기타 노래지도까지 자원봉사자들의 지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태권도는 유단자가 10여 명에 이른다.

평화 보육원

비산1동 산자락 아래 평화 보육원(1946년 설립)은 조국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가 순국한 유자녀와 무의·무탁아 양육을 목적으로 설립되어 정순희(68세) 원장과 직원들의 보살핌 속에 9개월부터 대학생까지 7개 숙소에 92명이 생활하고 있다.

마침, 보육사들이 알타리 김장을 하는 날이라 김광진(41세) 총무는 안내를 하면서도 3살 여아를 안고 다녔다. 버드나무 집 문을 열자 싸늘한 냉기가 먼저 피부에 닿는다. 적잖은 난방비 땜에 아침저녁으로만 난방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후원자를 초청하여 발표하는 평화보육원생들
후원자를 초청하여 발표하는 평화보육원생들 ⓒ 김재경
여아가 안 들어가겠다고 떼를 쓰자 올망졸망 모여 있던 초등학생들이 귤을 까서 손에 쥐어주고 어루만진다. 여아가 신맛 때문인지 찡그리며 뱉자 김 총무는 자연스럽게 받아서 먹는다. 그리고는 아이의 볼과 얼굴을 비비며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 모른다.

컴퓨터 방에는 컴퓨터를 사용하는 아이들 틈에서 6학년 오빠에게 주겠다며 털실로 목도리를 짜는 5학년 소녀의 모습은 혈육의 끈끈함을 느끼게 한다. 버드나무 집에는 박아름(26세) 보육사와 초등 1학년부터 고3까지 15명이 함께 살고 있다.

아이들은 보육사를 엄마라고 부른다. 아이들에게는 후원자가 한두 분씩 있어 개인 통장으로 입금되면 고학년의 경우 마음에 드는 물건을 스스로 구입하고 영수증을 보육사에게 주면 구입 품목과 가격을 기록한다.

찡찡대는 여아를 데리고 보모가 일하는 식당으로 가는 중에 학교에서 돌아오는 오빠(11세)와 마주 치자 아이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핀다. 남매의 부모는 교도소에서 복역중이고 할머니가 행상을 나가면 오빠가 돌보다가 학교에 가면 방치되어 있었고, 이곳으로 왔을 때 행색은 말이 아니었다.

식당에서 김장을 하던 보육사들이 라면을 먹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라면을 조금씩 입에 넣어주자, 제비처럼 입을 벌리다가 왕 큰 것을 달라기에 주춤했더니 좀더 많이 입에 넣어 달라는 소리였다.

어둑어둑한 저녁, 꿈나무 집 아기 방에 들어서니 이곳은 따뜻했다. 총무를 보자 여아는 능숙하게 달려든다. 모두들 "얘는 총무님 딸이에요"라고 말했다. 내게도 "아빠!"라며 무릎에 앉는 아이는 3살과 4살 자매였다.

후원자들이 소시지를 주자 영아들은 신이 났다. 8개월 여아는 외할머니에 의해 시설로 오게 되었다. 소시지를 잘게 떼어 입에 넣어 주자 오물거리던 아기가 입에 든 것을 뱉으며 소시지를 통째로 입으로 가져가는 욕심을 보고 모두가 놀랐다. 총무에게 매달리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나오는 발길이 무겁기만 하다.

매년 이곳은 각 숙소마다 환경심사를 통해 잘된 집을 표창하고, 부상으로 1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씩 가족예배를 보고 회의하며 일지도 꼼꼼히 쓴다. 상금은 회의를 통해 외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시설아동예능발표회를 하는 평화보육원생들
시설아동예능발표회를 하는 평화보육원생들 ⓒ 김재경
시설아동 기능발표회 때면 세미뮤지컬로 최우수상은 기본이다. 퇴소후 간호사로 일하는 선배의 지도 덕분이다. 부상으로 받은 녹음기는 숙소의 재산이다. 이곳을 거쳐나간 2500여 명 중에는 방송출연으로 낮 익은 대학교수나 사업가 등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있다.

정월 초하루면 퇴소자들의 모임인 평우회에서 100여명이 찾아와 후원도 하지만, IMF 이후는 후원의 손길이 거의 없어 추워지는 겨울에 한기마저 돌게 하고 있다.

내가 본 보육원은 쾌적하고 밝은 환경 속에서 원생들은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자원봉사자나 후원자들을 통해 배움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꿈의 요람이었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 구축을 위해 사랑과 관심이 필요함을 느낀다. 돈이 많다고 이웃을 돕는 것은 아니다. 여유로운 시간만 있다면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 해관 보육원 031-472-8848  후원계좌 서울은행 55108-0260615
안양보육원 031-471-2391   후원계좌 우리은행 074-369229-13-101
평화복지재단 031-449-2596 후원계좌 우리은행 734-089687-1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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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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