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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말기 보조금 규제가 본격화된 2000년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통신업체들이 부과받은 과징금은 무려 409억9000만원에 달하지만 여전히 보조금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단말기 보조금 규제가 본격화된 2000년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통신업체들이 부과받은 과징금은 무려 409억9000만원에 달하지만 여전히 보조금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 오마이뉴스 공희정

"규제한다고 사라질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가 단말기 보조금을 강력히 금지하고 있지만 정작 보조금 지급이 현재 이동전화 시장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된 분석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결국 모두 망합니다."

통신위원회(이하 통신위)가 지난 28일 단말기 보조금을 지급한 통신업체들에 대해 영업정지란 초유의 조치를 내리던 날,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풀이를 하듯 이렇게 내뱉었다.

단말기 보조금을 둘러싼 논란은 그간 끊임없이 제기됐다. 규제가 본격화된 2000년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단말기 보조금으로 인해 통신업체들이 부과 받은 과징금은 무려 407억9천만원에 달하지만 여전히 보조금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세계 최초' 휴대폰 보조금 금지법안 통과

말도 많고 탈도 많던 휴대폰 보조금 금지 법안이 '세계 최초로' 마련됐다. 내년부터 전기통신사업자들이 자사의 가입자들에게 휴대폰 보조금을 지급하다 적발될 경우 최고 50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위원장 김형오)는 4일 이 같은 내용의 휴대폰 보조금 금지조항을 신설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따라서 그 동안 약관에 의해 규제되던 보조금 금지정책이 근거법을 갖게 됐다는 점에서 불법보조금 단속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 안은 당초 정보통신부가 휴대폰 보조금 지급행위에 대한 벌칙 조항으로 마련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비해 대폭 완화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과기정위 법률심사 소위는 또 당초 '대리점의 휴대폰 보조금 지급행위에 대해 해당 대리점과 계약을 체결한 통신사업자에 대해서도 형사처벌 등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다'는 정통부 개정안 내용도 크게 완화해 '휴대폰 보조금 지급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을 때'라는 단서를 달아 통신사업자의 책임을 면제해주도록 명시했다.

또 대리점의 휴대폰 보조금 지급행위에 대해 해당 사업자를 형사 처벌하는 것 역시 과잉규제라는 비판이 있어 이를 다소 완화하는 방향으로 수정됐다고 정통부는 덧붙였다.

정통부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를 통과하면 내년 초부터 휴대폰 보조금 금지조항을 3년간 한시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 공희정 기자
정부와 통신업계가 단말기 보조금을 놓고 '끝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단말기 보조금 지급이란 제조업체의 출고가격 보다 단말기를 싸게 파는 행위를 말한다. 기업들이 신규가입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데 왜 정부가 이를 막는 것일까. 또 기업들은 엄청난 액수의 과징금을 물면서까지 보조금을 지급하는 이유는 뭘까.

업계 전문가들은 그 근본적인 원인이 우리 나라의 독특한 시장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미국, 영국, 일본 등 통신선진국의 경우 이동전화 시장 초기에 복수업체가 사업을 시작했지만 우리나라는 한 업체가 독점적으로 사업을 해오다 뒤늦게 후발업체가 뛰어든 구조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고객 유치보다 경쟁 업체의 가입자를 빼오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거다.

현재 이동전화가입자 숫자는 3200만명으로 이미 포화 상태다. 게다가 사실상 공룡으로 커버린 1위 업체 SK텔레콤이 시장점유율 53%, 시장 전체 매출액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후발업체들인 KTF와 LG텔레콤의 한계는 명확했다.

후발업체들은 이 같은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요금체계 상품과 각종 부가서비스로 고객들을 유혹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가입자를 경쟁사에서 끌어오거나 신규고객 확보에 가장 쉬운 방법인 보조금 지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통신업계의 경쟁과정에서 도태되기 시작하면 시장으로부터 외면받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인식이 팽배하다"면서 "한 업체가 보조금을 지급하면 과징금을 무릅쓰고라도 보조금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단말기 보조금 지급' 무엇이 문제?

지난 90년대 초반 이동전화 서비스가 처음 시작됐을 때 보조금에 대한 규제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97년 PCS 3사가 시장에 뛰어들면서 보조금 지급은 일상화됐고, 99년 하반기부터 휴대폰은 거의 '공짜'나 다름없었다.

이때부터 잦은 단말기 교체에 따른 자원 낭비, 미성년자의 무분별한 가입, 단말기 핵심부품 수입 증가로 인한 무역수지 부담 등이 문제로 지적되면서 보조금의 폐해가 집중적으로 부각됐다.

또 98년부터 2000년 5월말까지 이동통신 5사가 지급한 보조금 총액이 7조5천억원에 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영부실 문제와 후발 사업자 보호문제도 부각됐다. 결국 정통부는 2000년 5월 통신사업자의 약관에 보조금 지급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시켜 본격적인 규제를 시작했다.

통신위의 한 관계자는 "단말기 보조금 지급행위가 단기적으로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이익을 보호하는 측면도 있으나, 결국 모든 부담이 가입자에게 전가돼 소비자 이익을 해치며 지배적 사업자의 독과점구조를 심화시킨다"면서 "장기적으로는 단말기 제조업체들도 대외경쟁력을 저하시키는 문제점을 발생시켰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서는 통신업계도 어느 정도 인정을 하고 있다. 실제로 단말기 보조금 금지 이후 통신사업자들은 가입자에 대한 서비스에 집중했으며 제조업체들도 해외시장을 더욱 개척해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신업계는 보조금 지급을 규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반박한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극심한 경쟁구조, 새로운 단말기에 대한 소비자의 높은 선호도 등 우리의 통신서비스 시장환경에 따른 문제를 모두 보조금 지급 때문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업계, "통신위 결정 원칙 없고 불공평"

그 동안 통신업체들은 이번 영업정지 조치를 받기 전 단말기 보조금 지급 행위에 대해 수 차례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SK텔레콤은 5회 동안 171억원, KTF은 9회에 141억5000만원, LG텔레콤은 7회 71억3000만원 등의 과징금을 내야했다. 계열사인 KTF의 016을 대행 판매하는 KT도 3회에 걸쳐 22억1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통신위는 그 이후 보조금 지급행위 재발시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하겠다는 방침을 사전에 통보했지만 통신업체들의 보조금 지급은 끊이지 않았다. 결국 종래와 같은 시정 조치로는 단말기 보조금 지급 행위를 근절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한 통신위는 강수를 두기로 결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통신위가 SK텔레콤, KTF, LG텔레콤에 대해 각각 30일, 20일, 20일의 신규가입자 모집 금지 조치를 취한 것에 대해 SK텔레콤과 LG텔레콤 등은 "원칙이 없고 불공평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SK텔레콤은 현재 내부적으로 통신위의 제재조치에 대해 법적인 문제점을 검토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의 한 관계자는 "누가 먼저, 누가 많이 또 자주 보조금을 줬는지 등을 면밀하게 따져 기준에 맞춰 합당하게 처벌을 내려야지 단순히 매출액 기준으로 처벌 수위를 정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단지 지배적 사업자라고 영업정지 기간을 길게 하면 후발 사업자들이 이를 악용해 단말기 보조금 지급 전쟁을 시작할 것이 뻔하다"면서 "결국 이와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 될 때 SK텔레콤은 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LG텔레콤의 관계자는 "매출규모가 SK텔레콤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위업체와 비슷한 수준의 제재를 받았다"면서 "이런 식으로 영업정지 조치가 이어진다면 자금력과 유통망이 열세인 LG텔레콤은 설자리가 없게 된다"고 말했다.

통신위 심의과의 박철순 과장은 "이번 조사는 전국의 모든 대리점을 상대로 실시한 것이 아니라 샘플링을 통한 조사였다"면서 "적발건수는 참고사항일 뿐이지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현 통신시장에 문제가 발생했다면 당연히 지배적 사업자가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라면서 "통신위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시장의 안정화이며, 보조금 지급 문제는 피 말리는 경쟁을 통해 후발업체들을 도태시키는 결과를 낳게되고, 시장 독점화 구조는 소비자들의 권리를 앗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 <오마이뉴스> 27호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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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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