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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목사님의 답 글을 읽은 후 굳이 답 글을 쓰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저의 생각과 온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많은 부분에서 뜻이 같음을 알 수 있었고, 일치하지 않는 부분마저도 제가 반박할 부분이 아니라, 충분히 참고를 해야 할 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시 컴퓨터 앞에 앉은 것은 저의 글과 목사님의 글에 이어진 수많은 독자의견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의 설교원고에 대한 저의 오독으로 인해 빚어 진 이번 논쟁에 대해 다소의 책임을 느끼고 있는 터라 오해를 해소하고 또 보다 발전적 논의를 위해서 저희의 논쟁을 지켜본 독자들께 제 의견을 조심스레 내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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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많은 분들이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김민석 전 의원의 행위에 대한 비판을 함께 덧붙이는 바람에 목사님이 이회창 후보의 대항마로 정몽준 후보를 지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합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김민석 전 의원의 행위를 목사님 역시 정당화하고 있다고 판단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해하는 한 목사님은 그의 글을 통해 한번도 김민석 전 의원의 행위에 온전히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형이라는 특수한 입장에서 굳이 동생에 대한 의견을 말하자면 그 방법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동생의 선택 역시 냉전수구세력의 재집권을 막기 위한 또 하나의 선택으로 봐 주기를 바랬을 뿐이지요.

또한 글을 통해 단 한번도 정몽준 후보를 단일 후보로 옹립하자고 하지 않았으며, ‘노풍’의 완성을 위해 그가 수구세력이 아닌 이상 그를 활용할 수 있다고 했을 뿐입니다. 노무현 후보 역시 ‘노풍’에 담긴 요구를 철저하게 체화해야 한다며 승리를 위해 '노무현다움'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서 많은 독자들이 김민석 전 의원의 선택과 목사님의 주장을 동일시하여 비난을 퍼부었으며, 마치 정몽준 후보로의 단일화를 통한 이회창 정권의 탄생을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처럼 여기게 된 것입니다.

목사님은 냉전수구세력의 저지를 통한 탈냉전을 주장하고 있는데 반해, 그를 비판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그의 아우의 행위와 정몽준이라는 인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제가 맨 처음 목사님의 글을 오독했을 때와 동일한 오류를 범한 것이며, 목사님으로 하여금 “그날을 위해 우리 이제 흩어지지 맙시다”라는 간절한 호소를 하게끔 만든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목사님 역시 앞글에서 “저의 글에 대한 오독, 정독 문제나 민석이의 행보에 대한 평가를 뛰어넘어 우리의 민족현실에 닥친 더욱 절박한 사안을 어떻게 푸는가에 있”다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목사님의 글에서 김민석 전 의원에 대한 이야기를 건져내고 그 나머지만을 두고 이야기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세 편의 글을 통해 목사님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제대로 보일 것 같습니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저는 많은 부분에서 목사님의 주장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냉전수구세력 재집권, 최대한 저지해야 한다”는 것과 그를 위해 “현실에서 대중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준”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노무현 후보가 적절한 “정치적 선택”이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목사님은 처음부터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부시행정부>, <조선일보>, <한나라당>으로 연결되는 냉전수구세력의 재집권을 막는 것이 우리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최선의 선택이며, 이를 위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모든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목사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냉전수구세력의 집권이 이 나라의 역사를 최소 50년을 되돌려 놓을 것이라는 동일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노풍’역시 “대중들의 개혁열기와 분단극복의 의지가”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통해 폭발한 것이라는 것과, 노무현 후보가 ‘노풍’에 실린 대중의 요구에 걸맞지 않은 모습을 보일 때 “정치적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는 지적 또한 동의합니다.

이제 목사님과 저의 생각 중에 일치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목사님은 이번 선거를 냉전세력과 탈냉전세력간의 싸움으로 바라보지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분명 있습니다. 수구세력과 개혁세력의 싸움 혹은 지역분열세력과 지역통합세력의 싸움으로도 규정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목사님은 냉전, 탈냉전의 전선일 때 정몽준 후보 역시 아직까지는 끌어안을 수 있다고 주장하시는 겁니다.(물론 제 생각은 다릅니다) 지역분열과 지역통합의 전선에서는 정몽준 후보를 노무현 후보와 묶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수구, 개혁의 전선이라면 정몽준 후보는 끌어안을 수 없는 인물이 됩니다. (전 아직 그에게 개혁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일 그 어떠한 근거도 찾지 못했습니다.)

이번 선거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저는 개혁과 수구의 전선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상식과 몰상식으로 판단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전 정몽준 후보를 노무현 후보와 묶을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처럼 목사님의 의견은 시각에 따라 동의할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전선이 형성되더라도 목사님은 “우리”편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됩니다. 전선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고 해서 “우리”편을 향해 총을 겨누는 일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이 글 첫머리에서 비록 의견차이는 있지만 목사님의 입장을 충분히 참고하고 이해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노풍’에 동의하는 이들에게 저 역시 부탁 드리고 싶은 것은 피아구별을 명확히 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비판은 필요하지만, 비난은 아무 짝에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전력을 스스로 손실하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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