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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LENBAUM²/ SAKAMOTO ‘CASA’
MORELENBAUM²/ SAKAMOTO ‘CASA’ ⓒ 배성록
첼로라는 ‘낮은 위치’의 악기가 지닌 내성적인 특성은 조빔의 곡에 꿈결 같은 화사함을 더했으며, 파울라의 몽환적인 음색은 근래 가장 뛰어난 조빔 해석을 선사한다. 그 많고 많은 조빔 트리뷰트 중에 유독 [Quarteto Jobim Morelenbaum]이 주목받았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렇다면 사카모토는? 조빔 트리뷰트에 일본인 뮤지션 이름이 올라와 있는데도, 이상하게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파토 푸(Pato Fu) 같은 일본인 밴드 때문일까, 아니면 피치카토 파이브의 대활약 때문일까. 그보다는 사카모토가 어떤 음악을 해도 감쪽같이 둔갑하는 뮤지션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일본 뮤지션들이 다 그렇다. 무얼 하든 원주민이 한 것처럼 만들어 놓는다. 게다가 [B.T.T.B]에서 선보인 간결한 코드웍과 클리닝한 터치를 기억한다면, 조빔 헌정에 사카모토가 적합하다는 데 무리없이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아티스트가 모여, 이번에는 조빔을 다소 색다르게 해석한다.

이들은 역시나, 원곡이 지닌 ‘천상의 선율’은 조금도 손을 데지 않는다. 보사노바의 에토스를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대신에 첼로와 보컬, 피아노의 단순명료한 셋업은 조빔을 새롭게 바라볼 계기를 제공한다. “Fotografia”나 “Estrada Branca”를 보라. 간질간질한 기타 배킹이 만들어내던 오묘한 리듬감은 사라지고, 단촐한 피아노 선율이 넓게넓게 공간을 확장하면, 그 위로 초절 선율이 아스라하게 번져 나간다.

끊임없이 낮게 울리며 감성의 무거운 구석을 슬근슬근 자극하는 첼로는 또 어떤가. 이걸 굳이 업자 용어로 축약하면 ‘클래식 소품’이 되겠다. 우리가 단순무식하게 그냥, 보사노바의 교주로만 알고 있던 조빔의 감추어진 면모가 부각되는 것이다. “Tema Para Ana” 같은 경우엔 아예 사카모토 교수의 부전공인 ‘뉴에이지’에 가깝게 들린다.

뉴에이지는 사람 감정을 소금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게 만드는 ‘나태한 음악’이라 여기고 있었건만, 조빔의 곡은 전혀 딴판이다. 사카모토가 자주 써먹는 ‘예쁜 선율 사이에 불길한 화음 섞어넣기’가 보이지 않는 때문인지, 혹은 파울라의 보컬이 워낙에 사람 마음을 핀 포인트로 쿡쿡 지지기 때문인지, 이 해석들은 레이-지-보이(La-Z-Boy) 소파에 앉은 듯 안락하기만 하다.

이런 감상은 첫 곡 “As Praias Desertas”에서 가장 강하게 표출된다. ‘한 여름밤의 꿈’의 한 장면처럼 선율이 물결을 이루고 물결치듯 선율을 이루는 피아노 배킹, 잔뜩 릴랙스한 가운데 절반 정도의 성량으로 부르는 것 같은 보컬, 고동치는 첼로. 이 궁극의 삼중주는 리듬파트가 없지만 강한 감흥을 던지고, 보사노바의 정통적 해석이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보사노바의 본류를 잘 짚어내고 있다. 결국 이 세 남녀는, 조빔 곡의 단순함과 아름다운 선율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Girl From Ipanema”를 요상한 버전으로 만드는, 온갖 현란함과 복잡함이 득세하는 가운데서 독야청청 조빔의 맥을 짚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편성과 선율의 부각, 리듬감의 삭제는 그래서 독창적이며 단연 돋보인다.

이런 특징 때문에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기타-퍼커션 세션 참여 트랙들도 이질적이지 않다. 앨범의 ‘어쿠스틱’과 ‘미니멀’이란 화두만큼은 일관되게 유지한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O Amore Paz”도 “Vivo Sonhabdo”도 기타는 '댕강댕강' 퍼커션이은 '절컹절컹' 거리지만 중심이 되는 것은 모렐렌바움 부부와 사카모토다.

그래서 이 음반은, 이런 질문들에 간단히 ‘일갈’할 수 있게 도와준다. 어떤 질문? 보사노바는 한계가 명백히 드러난 음악인가? 뜨로피까이아 운동과도 무관하고 부르주아적인 음악이기에, 노동자당의 룰라 대통령이 탄생한 현재의 브라질에서는 한물 간 음악인가? 갈수록 영미 음악의 성분 함량이 짙어지는 브라질 음악계에서 조빔의 곡들은 구시대의 유물에 불과한가? 그리고, 선율의 해체가 없는 보사노바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발견’할 거리가 없는 것인가?

[CASA] 음반은 이 모든 질문에 대해, 따뜻하고 인간적인 목소리로 ‘아니다’라 답한다. 이처럼 아름답게 살아 움직이지 않는가. 전혀 또 다른 면모가 끊임없이 재발굴되지 않는가. 조빔의, 보사노바의 재해석은 언제 어디서든 전혀 지루하지도 고루하지도 않다. 조빔이 살아 있었다면, 앞의 질문들에 대해 대답대신 조용히 이 [CASA]를 들려주었을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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