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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겠다는 말과 동시에 느릿한 동작으로 뻥튀기를 떠먹는 포즈를 취한다. 여전히 눈은 반쯤 감은 채이다.
사진을 찍겠다는 말과 동시에 느릿한 동작으로 뻥튀기를 떠먹는 포즈를 취한다. 여전히 눈은 반쯤 감은 채이다. ⓒ 임김오주
신일섭씨가 만화가가 되겠다고 마음먹게 된 과정은 여느 만화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만화책에 푹 빠져 지내다 만화를 직접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 것.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혼자 만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니 다른 만화가에 비해 좀 이르긴 이르지 싶다. 데뷔도 빨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평소 존경하던 만화가인 이희재 선생님의 문하생으로 들어갔고, 그에게서 세상 보는 법을 배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주간만화’에 데뷔했을 때 환경이나 노동문제를 주제로 삼았었는데, 기존 상업만화 시장 속에서는 그런 주제 선택조차 자유롭게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덜컥 돈도 안되고 알아주는 사람도 별로 없는 험난한 길을 택했냐는 핀잔에“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는데 어떡합니까. 인디(독립)만화를 찾을 수밖에 없지요”라며 느릿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아무나 소화하기 힘든 형광 주황색의 점퍼를 걸친 채 이외수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어둡고 우울한 소설이 좋았다고 말하는 그는, 의외로 ‘고전적’인 장인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작가가‘밥’으로 먹고사느냐, ‘작품으로 먹고사느냐’에서 고민 참 많이 했었어요. 근데, 만화 그리다 보니 제 만화 자체가 상업성이 없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고, 돈하고 결부시키는데 결벽증이 있기도 해서 작가는 배가 고파도 작품을 우선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지요.”

돈보다 배고픔을 택할 만큼, 그가 만화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일상이요. 제가 처음 만화 그릴 때만 해도 만화에는 모든 게 다 극적이어야 했어요. 만화도 결국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인데 육십 평생을 기승전결로 나눌 필요 있나요.”

다소 허탈한 듯 해도, 자신을 크지도 작지도 않게 표현하는 그에게, 왠지 어울리는 대답이다.

취미만화의 시대

상업만화 일변도의 유통구조에 당당히 반기를 들었던 ‘화제작’계간 COMIX
상업만화 일변도의 유통구조에 당당히 반기를 들었던 ‘화제작’계간 COMIX ⓒ 임김오주
평생 언더 만화를 그리겠다는 의지가 있어도 마음 먹은데로 되지 않는게 현실인 것일까. 최소한의‘재생산’마저 되지 않을 정도로 언더 만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한국 만화시장 상황과‘검열’은 한걸음 한걸음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래도 작품 하나가 곧‘우리식 언더 만화’의 역사가 되고 있다는 마음으로 힘을 잃지 않으려 한다.

언더 만화 그리기가 좀 더 수월해 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취미 만화가의 시대로 가야죠. 심심풀이로 그린다는 차원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에 생존해야 하니까 직장 가지고 남는 시간 쪼개서 만화를 그린다는 거에요. 일상적인 만화그리기, 일상적인 예술활동이 보편화되길 바래요.”

자신이 편집장을 맡고 있으면서도 'COMIX'가 잘 팔리든 팔리지 않든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윤을 목적으로 펴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언더 만화를 공유하고 싶어서이기 때문이다. 웹진을 통해 무료로 접근할 수 있게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독자가 곧 작가

그는 언더 만화의 어려운 상황을 이야기하면서도, 앞으로의 만화시장은 언더 만화화 될 수밖에 없다는 역설적인 이야기를 한다.

“종이 매체의 숙명 때문이죠. 지금 세대들은 TV도 잘 안 보는데 종이로 보는 건 더하잖아요. 예전에는 거대한 히트작이 있어서 수백만 부씩 팔리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매니아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봐요.”

종이매체의 시장이 축소되어 가도 언더 만화가 자리잡을 수 있는 희망은 있다.

“COMIX는 독자나 작가의 구분이 뚜렷하지가 않아요. 언더만화는 테크닉 보다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더 중점을 두거든요. 낙서도 자기가 어떤 생각을 담느냐에 따라 작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니 독자들은 ‘나도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소비자가 곧바로 생산자가 되는 겁니다.”

형식에 메이지 않는 다양한 개성, 그 풍요로움. 언더 만화의 장점이다. 만화작가 지망생에게 한마디 충고. ‘넌 그림이 왜 그래?’,‘뭐 이런 내용이 다 있어?’라는 말에 휘둘리지 말라고 한다. 자신이 표현한 그대로를 받아들여 주는 사람이 있을까를 미리 걱정하기보다는,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는 데 노력하시길. 만화는 경계없이‘다양한 삶’을 담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대학생신문 169호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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