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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전태일의 꿈' 희망콘서트가 18일 밤 한양대 체육관에서 3시간 동안 펼쳐졌다
3천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전태일의 꿈' 희망콘서트가 18일 밤 한양대 체육관에서 3시간 동안 펼쳐졌다 ⓒ 이민숙
세대와 계층간의 공감대...나 전태일, 당신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오후의 햇살이 은빛으로 춤추던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6가 평화시장 구름다리 앞. 이날 1시부터 열기로 한 집회를 경찰과 시장 경비원들이 막고 나서자 5백여 명의 노동자들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워 경찰과 밀고 밀리는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오후 1시30분. 한 젊은 노동자가 온 몸에 휘발유를 뿌린 뒤 성냥불을 당겼다. 순식간에 온 몸이 타오르는 불길 속에 휩싸인 청년은 근로기준법 책을 가슴에 꼬옥 안은 채 불길이 되어 뛰어오르며 절규하며 외쳤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꼭 돌아오겠다…."

그 뿐이었다. 22세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나갔다. 그리고 32년이 흘렀다.

18일 오후 7시10분 한대 체육관. 빈 자리 하나없이 3천여 명의 청중들이 꽉 들어찬 무대 앞으로 '노동자도 인간이다'라는 깃발이 펄럭이는 가운데 노동자의 노래 '바위처럼'이 3천명의 대합창으로 불려지고 있었다. 전태일기념사업회와 한양대 법대학생회 공동 주최 <열린 세상을 위한 희망콘서트 '전태일의 꿈'>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날 공연의 막이 오르자 청중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환호하고 있다
이날 공연의 막이 오르자 청중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환호하고 있다 ⓒ 석희열
무대에 불이 들어오고 이날 콘서트의 사회을 맡은 최광기씨가 나와 "여러분, 이제야말로 전태일은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우리들 마음속에서 거리에서 전태일은 우리와 다시 만나야 합니다. 전태일이 그토록 이루고자 했던 소중한 꿈을 잊지 맙시다"라고 여는말을 하자 청중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화답했다.

전태일의 꿈을 담은 민중노래 '청계천의 불꽃'(글 김정환 곡 윤민석)이 울려퍼지고 곧바로 해방노래꾼 꽃다지의 공연이 이어지자 3천여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율동을 함께 따라하고 함성을 지르며 마치 지층을 뒤흔들 듯 해방춤을 추고 또 추었다.

민중가요를 랩으로 엮어부른 MC스나이퍼와 전태일이 살아생전 소망했던 소외된 노동이 없는 세상의 꿈을 고스란히 담아 노래한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 강라이와 미누의 공연이 이어지자 공연장은 뜨겁게 달아올랐고 간간히 터져나온 '전태일 박수'와 전태일을 연호하는 함성으로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 강라이와 미누가 전태일의 꿈을 담아 노래하고 있다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 강라이와 미누가 전태일의 꿈을 담아 노래하고 있다 ⓒ 석희열
초등학생부터 시민, 노동자들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나와 전태일의 꿈과 우리들의 꿈을 얘기한 인터뷰 영상과 전태일을 소재로 한 영화가 잔잔한 배경음악(그날이 오면)과 함께 소개되자 참가자들은 모두가 어깨동무를 하며 그날의 칼날같은 절규를 잊지 못하는 듯 숙연해지기도 했다.

백기완 선생이 잠시 전태일의 꿈을 얘기하고 안치환이 '광야에서'를 부른 뒤 민중가수 정태춘이 나와 "전태일을 만나러 이 자리에 왔다"고 하자 또다시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정태춘은 이날 '리철진 동무에게'라는 새로운 노래을 선보였으며 박은옥과 함께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불렀다.

이날 공연장에는 청소년 관객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이날 공연장에는 청소년 관객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 석희열
대중가수 윤도현밴드가 '오 필승 코리아'와 '불놀이야'를 열창하자 수천의 청중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열광했다. 무대 앞으로 몰려나온 청중들이 일제히 '앵콜'을 요청하자 윤도현밴드는 다시 무대 위로 나와 '아리랑'을 부르며 화답했다.

행사 막바지에 소개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3시간 동안 이어진 이날의 벅찬 감격을 잊지 못하는 듯했다. 이소선 여사는 인사말을 통해 "저는 기다렸습니다. 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 그날을 참고 또 참으며 기다려 왔습니다. 우리 태일이를 기억해주는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태일이는 비로소 여러분 모두의 친구가 되었습니다"라고 감정이 복받치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에 화답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왼쪽에서 세번째) 등이 무대 위에 올라 전태일의 꿈을 담은 노래 '청계천의 불꽃'을 따라 부르고 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왼쪽에서 세번째) 등이 무대 위에 올라 전태일의 꿈을 담은 노래 '청계천의 불꽃'을 따라 부르고 있다 ⓒ 석희열
이날 공연에 참여한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강라이와 미누는 "지난 10년 동안 전태일 열사가 일했던, 아직도 분진이 여전한 청계천 동대문시장에서 봉제일을 하고 있다"며 "여러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동자도 인간이다'라고 외치며 불 속으로 뛰어든 전태일을 잊을 수가 없다. 너무도 존경스럽고 대단한 사람이다"라고 이날 공연에 참여한 배경을 설명했다.

부인과 초등학교 6학년인 딸과 함께 왔다는 직장인 성호준(43)씨는 "몇 년 전 '양심수를 위한 시와 음악의 밤'을 이곳에서 부인과 함께 본 적이 있다"며 "전태일을 만나는 이 자리에 진정한 노동자의 삶을 노래하는 민중노래패들이 정작 함께 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최측에 아쉬움을 표시했다.

한편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 주관한 이날 행사가 꽃다지와 정태춘 등의 출연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노동노래패들을 완전히 배제한 채 다수의 대중가수로만 공연 일정이 채워진 것에 대한 일부의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날 공연을 본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다.

가족과 함께 이날 공연장을 찾은 한 여성이 환하게 웃고 있다
가족과 함께 이날 공연장을 찾은 한 여성이 환하게 웃고 있다 ⓒ 석희열
이날 공연을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왔다는 박꽃나래(면목중 3)양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노동자의 삶을 위해 젊은 날에 자신의 몸을 바쳤다는 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자신의 한 몸을 불사르면서까지 이루고자 했던 그의 숭고한 뜻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로 그 동안 행사준비를 해왔다는 박대원(한양법대 2)씨는 "열사의 정신이 사람들에게서 너무나 쉽게 잊혀져가는 것이 안타까워 기념사업회와 함께 행사를 준비하게 되었다"며 "전태일 열사가 이루고자 했던 꿈을 체화하고 체득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오늘 이 공연을 통해 뼈저리게 느끼고 배웠다"고 공연소감을 피력했다.

이날 정태춘 박은옥은 "전태일을 만나러 이곳에 왔다"고 해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날 정태춘 박은옥은 "전태일을 만나러 이곳에 왔다"고 해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 이민숙
이날 공연을 공동으로 주최한 한양법대 학생회 이용진 회장은 "작년 12월 청계천 6가 평화시장 앞에 쓰레기더미와 함께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는 전태일 동판을 보고 조형물 건립을 각 시민사회단체와 주변 상인들에게 제안했다"고 소개하고 "수많은 노동자를 탄압한 박정희 기념관을 수백억원의 국민 혈세를 퍼부어가며 짓겠다는 마당에 이 땅에 민주노조운동의 깃발을 올렸던 열사의 동상 건립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너무도 당연하고 중요한 일 아니냐"며 전태일 동상 건립을 위한 후원에 적극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통일노래꾼 꽃다지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열창하고 있다
통일노래꾼 꽃다지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열창하고 있다 ⓒ 석희열
MC스나이퍼
MC스나이퍼 ⓒ 석희열
안치환
안치환 ⓒ 이민숙
윤도현 밴드
윤도현 밴드 ⓒ 이민숙

덧붙이는 글 | 전태일기념사업회 http://www.Juntaeil.com  (02)3672-4138~9
한양법대 전태일열사 동상 건립을 위한 준비위원회 http://cafe.daum.net/yulsa
후원금 계좌번호 (조흥은행) 368-04-700790 (예금주 이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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