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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자, 나동혁 씨
네번째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자, 나동혁 씨 ⓒ 원주 기자
“유호근씨는 오늘 경찰 조사를 받았대요”

선언 한 달. 경찰의 소환장을 받아놓은 그는 빠르면 10월중에 조사를 받으러 갈 생각이라고 한다. 임치윤씨는 구속 영장을 받은 상태. 아직 경찰 조사도 받지 않았고, 오태양씨는 불구속 판정이 내려지기도 했지만, 구속에 대한 부담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요. 구속되면 못할 테니까. 아직까지는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이 서울 중심이거든요. 다른 지역에서의 간담회도 만들고, 그전까지 할 게 많아요.”

만나러 갔던 날도 양심적 병역거부 지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던 그는, 몸이 묶이면 그런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점이 무엇보다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부모님께도 더 잘해드리려고 노력하죠. 집에 있으면 빨래, 밥, 설거지 다 하고. 집에 있을 시간이 많이 없긴 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가, 그것이 주는 현실적 압박감들이 어디, 군 생활 26개월만 못할까. 전혀 다른 기준선에서 비교를 하는 것은 무의미할지 모르겠지만, '병역기피'와는 이다지도 다른 것을.

“뭐, 만나게 되는 사람들도 예전에는 사회당 사람들이나 학생운동을 하던 때의 사람들이었는데, 이제는 주로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 관련자들이 제 주변의 전부죠. 한계는 있겠지만, 신념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 그런 것들을 많이 배우게 된 것 같아요.”

96학번으로 단과대의 학생회장 일을 했고, 휴학을 하고 사회당 학생위원회 활동을 하던 그의 근황이다.

양심의 자유, 완전한 해답은 없다

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이나 불교 신자처럼 종교적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이들에 대해 '그러려니'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인'이 정치적, 사상적 신념에 따라 그런 주장을 하면 '납득이 안 된다'. 이 원천봉쇄의 벽 앞에서, 나동혁씨는 지금 논리적 근거를 다듬기 위해 고민 중이기도 하다.

한편, 지금까지 우리 앞에 나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사연들이 다 다르듯이, 여성의 이름으로, 모병제를 추진하는 흐름으로, 군의문사를 당한 병사들의 가족들의 한으로 이들, 양심적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목소리들도 제각각이다. 이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내는 일 역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짊어지게 된 과제 중 하나다. 나동혁씨는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이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이건 단기간에 증명될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권력이 개인의 신념을 죄악시 할 수 있는가. 양심의 자유 문제는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완전한 해답이 안 나올 겁니다.”

언뜻 듣기에는 거창해서 받아들이기 망설여지는 그의 말, 그러나 반문의 여지를 주지 않는 진지함, 혹은 열정.

결정적 계기 같은 것은 없다

“그 좋은 병역거부를, 왜 이제 와서 하는가.”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선가 그에게 던져진 질문. 당신이 언제부터 평화주의자였다는 거지? 기본부터 부정하는 이 질문에, 그는 “항상 그랬다”며 명쾌하게 대답한다.

“아는 것의 범위가 달랐다고 할까요. 솔직히, 대한민국에서 징병제가 문제라는 생각을 이전에는 미처 하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철거민 투쟁을 함께 하고, 노동자 투쟁을 함께 하고, 그런 것만 알았던 거죠. 여성 문제, 환경 문제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문제라는 것을 알았으니, 실천할 뿐입니다.”

학생운동을 하면서도 새터에서 후배들에게 술을 강권하는 것이 폭력적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고, 이제는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것은, 학생회장 시절 한총련 운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한총련 대의원이라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의 올가미에 매이게 됐을 때, 탈퇴 각서를 쓰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생각은 변화하고, 사고의 폭은 넓어진다. 그것의 긍정성이 이해 받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젊은이의 자연스런 성장과정 속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 또한 한심스런 질문이다.

“다들 그런 것을 묻는데, 결정적 계기 같은 건 없어요. 오태양씨의 선언을 보고 이런 것이 문제구나, 깨우쳤고, 양심적 병역거부 지지 서명운동을 하면서 당연한 저의 과제로 받아들였을 뿐이죠. 예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가운데 저보다 먼저 결심을 했던 친구가 있거든요. 그것이 반성의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어제는 군가협 집회 가서 발언하다 울었어요. 매일, 계기들은 새롭게 생겨나요.”

네 양심을 보여 봐

선언 한달 후, 그는 서명운동과 간담회를 진행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선언 한달 후, 그는 서명운동과 간담회를 진행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 원주 기자
“반응은 두 가진데, 한 쪽은 아예 무시하거나, 한 쪽은 우러러보는 경우죠.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우러러볼 필요는 전혀 없죠. 오태양씨는 술도 안 마실거야, 하는 식으로 도덕주의적, 금욕주의적으로 바라보는데 그냥, 평범한 사람들인 거죠.”

누구보다 의지할 만한 사람들은 다른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다. 같은 과정을 겪었고, 한국 사회에서 가장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을 그들에게 드는 친근감이란. 욕심 많고 당당한 그는 많은 후배들이 이 친근감의 울타리 안에 들어오길 바란다. 강요할 수는 없지만, 이제껏 이 운동에 동의해온 이들이라면…. 하는 바램이 든다는 것이다. 아니,

“집단적 운동에는 익숙하면서 자립적 운동에는 수동적인 점이 안타까워요. 결국 자신의 문제지만, 용기를 냈음 좋겠네요”라고 말하는 투는 단순한 바람만이 아닌 것도 같다.

“왜 지금 양심적 병역거부냐고요? 언제든 터졌어야 할 문제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남아있는 얼마 안 되는 성역 중 하나가 군대인 겁니다.”

그 성역의 문을 여는 길에는 여·남, 거부자·예비역이라는 원치 않는 대립구도 같은 덤불이 드러나고 있다. 단시일 내에 해결될 수 없는 이 문제를 당장 '사건과 사람들'을 대하듯 바라보는 이들에게 그는 '이건 이벤트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양심을 보여줘야 하나. 국가에 의해 내 양심을 재단 받지는 않겠다고 마음먹은 건데, 어떻게 보면 이미 까발려지고, 심사를 거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자꾸 근거를 대야 하고, '내 양심은 이렇다'고 증명을 해야 하니.”

문제는 양심일까. 아니다. 개인의 양심을 말할 수 없는 '이곳'이다. 마찬가지의 '심사'로 양심을 괴롭힌 짓에 대한 사과를 다음 글로 대신하고 싶다.

현실의 구조를 넘어서려는 깊은 소망과 확고한 의지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몸을 끊임없이 이 비인간적인 구조의 희생자 자리에 둠으로써만 배양될 수 있다. 운동의 이상은 운동의 일상과 일치하기 마련인 것이다.
서준식, 옥중서한, 야간비행, 2002 서문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대학생신문' 168호(10월 15일자)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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