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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산에서 본 구궁. 근대가 시작되기 전 중국 지도자들은 이 구중궁궐을 바탕으로 통치했다. 하지만 궁궐은 예상외로 허약했다.
징산에서 본 구궁. 근대가 시작되기 전 중국 지도자들은 이 구중궁궐을 바탕으로 통치했다. 하지만 궁궐은 예상외로 허약했다. ⓒ 조창완

필자의 앞집에는 4식구가 조촐히 살아간다. 이 집안의 가장은 예순 중반이다. 그는 3년 전 퇴직을 했다. 고위직에 있어서 특별한 문제없이 돈도 충분히 모았다. 노인의 부인은 예순 초반인데, 아직 직장을 다닌다. 이들 부부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서른이 넘은 딸은 대학을 마쳤고, 좋은 직장에 다닌다. 그녀는 20대 중반에 결혼해 딸을 하나 낳았다. 하지만 성격이 맞지 않아 이혼했다. 그래서 친정에서 부모와 같이 살아간다. 집안에는 대부분 일제 가전제품을 사용한다. 한달에 수백위안 수준의 임금을 받는 일반 라오바이싱(老百姓; 오래된 백가지 성이라는 뜻이지만 일반서민을 말할 때 쓰인다)에 비해서는 휠씬 고급스런 삶을 살아간다.

한 가정에서 살아가지만 이들에게는 너무나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 우선 노부부는 지식분자로서 1966년부터 10년간 중국내에 불어닥친 문화대혁명을 거쳤다. 결혼 전에 문혁을 만난 이들 할아버지는 멀리 깐쑤성의 벽촌으로 하방됐다. 그에게 자본주의나 지식분자와 같은 단어는 치가 떨린다. 개혁개방 이후 벌써 사반세기 가량 시간이 지나 이제는 모두 잊혀질 것 같은데, 그게 쉽지 않다. 하지만 그는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 중년 이후의 삶을 잘 꾸려왔다고 자부한다. 그 결과가 지금의 안정적인 삶을 만들었다.

그가 살아온 삶은 정말 혼란의 연속이었다. 국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태어났지만 그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인 1949년에 공산당에 의해 통일되면서 사회주의 교육을 받고 성장했다. 농촌에 비해서 덜했지만 급우들이 굶어 죽어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던 대약진 운동기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사회주의가 교육의 중심이었지만 유교, 불교, 도교와 같은 사상도 공부할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문화혁명이 터졌다. 그리고 봄에는 황량한 광풍이 불고, 가을에는 별다른 수확도 없는 깐수성에서 청춘을 보냈다.

노인과 손녀. 독생자녀제도 이후 이제 한 손녀를 두고, 여섯 어른이 정성을 쏟아붇는다. 엄마, 아빠, 조부모, 외조부모.
노인과 손녀. 독생자녀제도 이후 이제 한 손녀를 두고, 여섯 어른이 정성을 쏟아붇는다. 엄마, 아빠, 조부모, 외조부모. ⓒ 조창완

하방에서 돌아와 결혼한 후 낳은 그의 딸은 독생자녀 제도가 시행된 이후에 태어난 초기 세대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지만 초기에는 맞벌이여서 많이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초등학교가 들어간 이후에 부부의 가장 큰 관심은 딸의 성장이었다. 다행히 딸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잘 성장해서 좋은 직장을 얻었다. 언론분야에서 일하는 딸은 때에 맞추어서 결혼했지만 자신이 강한 딸은 사위와 의견이 맞지 않아 이혼했다. 이혼이 이제는 보편적인 문제가 된 이상 크게 말리지 않았다. 넉넉한 살림이어서 외손녀의 교육 등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밤늦은 시간에 들어오는 딸이나 무용학교에 다니는 외손녀의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건강하고 무엇을 하고 싶지만 할 것이 없는 자신의 존재 문제다.

샌드위치의 야채처럼 끼어버린 노인 세대

여유롭게 게이트볼을 즐기는 노인들. 이들은 생각보다 복잡한 시대를 살았다. 우리네 노인들도 큰 차이는 없겠지만.
여유롭게 게이트볼을 즐기는 노인들. 이들은 생각보다 복잡한 시대를 살았다. 우리네 노인들도 큰 차이는 없겠지만. ⓒ 조창완

중국 노인들은 아침, 아니 새벽이라고 부를 만한 시간에 집을 나선다. 나이든 남자들은 공원이나 주택가의 공터에서 태극권을 하거나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나이든 여자들은 태극선(太極扇)이나 태극검(太極劍) 등을 배운다. 또 중년을 갓 넘긴 이들은 공원의 넓은 공터에서 사교춤을 강습받거나 연습한다. 하지만 이런 습관은 궁핍했던 지난 날의 유산이기도 하다. 한 방에서 한 가족이 생활해야 했던 이전 세대들은 아침에 일찍 자리를 피해줘야 그나마 없는 시간을 쪼개어 결혼한 자식들이 성생활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엄청난 기아자가 속출했던 대약진 운동 시절이나 자본에 대한 공포나 지식 등에 대한 공포를 심어준 문화대혁명을 겪은 이들은 지금 60세 전후다. 이들도 ‘경제동물’이라는 속칭을 가지고 있는 중국인들의 본능을 잃었을 리 만무하지만 이 세대들에게 새로운 체제나 자본주의는 그 자체에 공포의 색채를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다시 기억에도 없는 전통을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화대혁명에 홍위병으로 참여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고, 그 시절에 태어나 교육의 기회를 놓쳐버린 50대 들을 붙잡고 있는 것은 마오쩌둥도 30%의 과오를 인정했던(사실 누구나가 70%의 과오로 보고 있다) 문화대혁명의 기억밖에 없다. 솔즈베리가 ‘새로운 황제’들에서 기술했듯이 홍위병들은 “학생들은 혁명을 하느라고 각지를 돌아다녔고, 학교는 대부분 폐쇄됐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자본가나 교수, 의사, 문인 등 지식 인텔리겐차를 자신들의 손으로 비판의 단상에 세운 기억이 또렷하다. 그들은 마오쩌둥에게 반역을 시도하다가 몽골에서 비행기 사고로 추락한 린비아오(林彪; 임표)와 더불어 유교를 비판한 기억이 또렷하다. 이들에게 사상적 고향을 물어보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이는 30~40대 장년층에게도 큰 차이가 없다. 이들은 학교나 소년궁에 가서 막시즘 등 사회주의 사상을 배웠고, 대학에서부터는 중국이 부국으로 가는 길에 어떤 역할이라도 해야한다는 사명을 배운 이들이다. 각종 창업과 꾸준한 활동력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정치는 복종의 대상이고, 철학은 막시즘이고, 행동은 자본주의였다.

물론 그의 손녀세대는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당대에 살아가고 있는 이상 물어볼 것도 없다. 무용전문학교에 다니는 손녀의 학비는 한 학기에 수만 위안으로 일반 백성 한 가구의 수입을 초과한다. 물론 시설이나 모든 면에서 그만한 값을 하니 그런 부담을 진다. 더욱이 손녀는 그 집안에 있는 유일한 미래다.

현대 중국인들의 사상이 되어버린 돈

톈진의 대표적인 불교사원인 대비선원에서 기도하는 방문객. 이들에게는 불교나 도교나 유교나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톈진의 대표적인 불교사원인 대비선원에서 기도하는 방문객. 이들에게는 불교나 도교나 유교나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 조창완

할아버지의 어머니는 불교를 믿었다고 하지만 그의 가정에는 지금 종교가 없다. 그가 살아온 시대는 종교를 갖지 못하게 만들었다. 대신에 당대의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됐다. 돈이 있다면 생활은 물론이고 마음의 안정도 찾을 수 있다.

결국 이들이 신봉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돈이 됐다. 또 중국 정부가 국가부강을 위해 의도적으로 추진한 소비 장려정책의 긍정성을 가장 잘 체득하고 있는 이들이기도 하다. 여느 도시도 마찬가지지만 톈진이 지난 1년간 변한 것은 그전 20년보다 휠씬 많았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가장 큰 예가 도로다. 불과 1년 전만해도 1~2차선에 지나지 않았던 도로가 한두달만에 변화를 거듭해 지금은 대부분 8차선으로 바뀌었다. 그럼 교통사정은 나아졌을까. 조금은 나아졌지만 이도 머잖아 과거의 속도와 비슷할 거라는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다름 아니라 차가 그 만큼 폭주하기 때문이다. 차를 사는데 중요한 것은 가지고 있는 돈의 다소일 뿐이지 교통사정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중국에서 소비는 최대의 미덕이다. 도시는 물론이고 5일장이 열리는 깊숙한 촌마을의 시장에도 “소비가 궁극적으로 농촌의 경제를 살리는데 유리하다”는 붉은 플래카드들이 곳곳에 걸려있다.

중국에 주 5일 근무제가 제자리를 잡은 것은 60년대부터 실시된 오랜 경험도 있지만, 5일 근무제가 궁극적으로 소비를 창출해 여행, 요식업, 숙박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산업의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한 예가 일주일에서 보름까지 장기적인 휴가를 주는 방식이다. 노동절(5월 1일), 국경절(10월 1일), 춘지에(춘절 春節 음력 1월 1일) 등 세 시즌에 주어지는 이 휴가에는 비용이 평소의 5배까지 뛰는 등 홍역을 앓는다.

이들은 이런 시간을 통해 소비를 늘리고, 산업전체의 활기를 돌게 하는 정책을 써왔다. 결국 거대한 소비가 다양한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지난 20년 동안 거듭된 성장에는 이 소비 진작책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중국에서 소비는 가장 큰 미덕이다. 필자는 가끔 환경보호를 위해 자동차를 기피한다는 말을 하는데, 아직까지 일반인들이 이 말을 이해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중국인들은 돈이 있으면 당연히 차를 산다. 돈이 많아서 더 큰 차를 사면 좋다. 30~40대들은 이런 문화가 몸에 젖어 있고, 이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가장 큰 이유도 쓸만한 돈을 벌기 위해서다.

종교 등 사상은 자기로, 자기로

결국 돈과 소비가 과거 전통사상이나, 앞서 중국을 풍비한 사회주의 사상을 대신하는 새로운 사상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중국도 자본주의가 현대인의 정신적 문제를 해결해주기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쉽게 절감하고 있다. 또 모두가 똑같이 잘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빈익빈부익부가 정도를 더해 가는 현실은 다양한 출구를 필요로 한다. 결국 도가적 성격이 짙은 파룬궁의 빠른 확산 등은 물론이고 최근에 확산되는 가문 찾아가기 등 전통 가족주의로의 복귀는 이런 정처 없는 중국인들의 입장을 잘 대변한다.

취푸 공먀오의 대성전. 문화대혁명 때 수난을 받았지만 공자는 중국 사상계에 다시 재등장하고 있다
취푸 공먀오의 대성전. 문화대혁명 때 수난을 받았지만 공자는 중국 사상계에 다시 재등장하고 있다 ⓒ 조창완

중국인들에게 조상에 대한 숭배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문혁의 광기가 꺾이자 이들은 다시 조상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88년 중국을 돌아본 중국사학자 민두기 교수가 소개한 허난성 시양청셴(項城縣) 위앤(袁)씨 집안이나 2002년 10월 뉴스위크가 '중국인의 뿌리찾기 열풍’이라는 제하에 소개한 안후이성 다컹코우(大坑口)의 후(胡)씨 집안의 사례는 청조말엽을 풍미한 위안스카이(원세계)와 차세대 지도자 후진타오(호금도)의 고향이라는 특징이 있을 뿐 중국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민 교수가 소개한 양천셴은 영원히 보존하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철판족보가 대약진 운동때 용광로에 들어간 아이러니한 이야기가 인상적이라면 후씨 집안의 이야기는 타성의 번영을 막기 위해 행했다는 주술이 인상적이다. 결국 이런 이념은 현재 사회주의와 100% 배치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는 중국인들에게 어떤 부분으로 다가올까. 경전의 해석과 교육이 약해진 지금에 종교는 기복을 비는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한 측면이 뚜렷하다. 필자는 중국 종교사원의 상당수를 다녀봤다. 공자에 제사하거나 모시는 공먀오(孔廟) 등 유교사원,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현재 승려가 공식 인정되는 우타이산(五臺山)이나 바이마스(白馬寺) 등 불교사원, 천후궁이나 싼위앤궁과 같은 도교사원 등에서 중국인들이 기원하는 것은 모두가 자신이 돈을 벌 수 있게 해달라는 기원이었다. 그 때문에 기복성이 가장 강한 도교사원은 가장 번성하고 있다.

사상적 공백은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

이런 상황은 중국이 앞으로 맞이해야 할 가장 큰 어려움이 될 수 있다. 마오쩌둥은 이런 문제를 미약하게나마 감지했기 때문에 광기의 역사라지만 ‘문화대혁명’을 추인한 측면도 있다. 그에게는 공산당이 집권하기 전 모습이 생생했을 것이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톈안먼. 지난 반세기 10월1일 중국 지도자들은 이 문위에서 안위를 확인했다.
톈안먼. 지난 반세기 10월1일 중국 지도자들은 이 문위에서 안위를 확인했다. ⓒ 조창완

덩샤오핑 집권 이후 89년 톈안먼(천안문) 사건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정치적 재앙이 없었던 것은 중국인들에게 대약진 운동의 굶은 기억과 문화대혁명의 사상적 재앙, 그리고 톈안먼 사건 이후에는 자유에 대한 불안감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안정이 영원한 안정일 수는 없다. 경제적 위기도 올 수 있고, 정치적 위기도 무시 못한다. 그 위기를 넘길 수 있는 사상적 카드는 무엇일까. 과거 황제가 쓰던 권위의 카드가 사용될 수 없고, 근대 이후 통용되던 군대를 통한 무력의 효용이 떨어지고 나면 중국을 잡을 카드는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중국을 잘보면 거대한 덩어리로 뭉친 하나의 덩어리 같지만 사실 내부를 들여다보면 모든 사물의 원리가 그렇듯 작은 하나의 입자 입자로 꾸며져 있었다. 지금까지 그 아교의 역할을 황제의 권위나 모두가 잘산다는 공산주의가 해왔다. 최근에는 민생고를 해결하고, 잘 살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그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공산주의라는 아교는 황제의 권위라는 아교와 일면 비슷한 모습을 갖고 있다. 그것은 철저한 호구제를 통한 일반인의 이동을 막는 방식 등 억압적인 제도로 유지되어왔다.

문제는 그 권위의 두 경계가 생각보다 빨리 일반인들에게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급속히 성장하는 언론자유나 개방의 확대는 감춰졌던 이면을 보게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것을 막을 수 있는 방식으로 중국은 ‘국가’를 강조한다. 하지만 충성이나 사회주의 둘 중에 하나도 갖고 있지 않은 국가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할지 누가 알까.

때문에 과거의 안정을 가져왔던 문화를 대체할 새로운 문화를 얻지 못한다면 중국 앞에는 생각보다 빠른 위기가 도사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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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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