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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방한 당시 부시 미 대통령
지난 2월 방한 당시 부시 미 대통령
부시정권은 그 내면에 전형적 파시스트 체제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

제국주의 후반기에 도달한 미국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이 결국 모든 자유주의적 외피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자, 노골적인 군사주의 노선으로 선회했고 이로써 부시정권하의 미국은 세계평화를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 오늘날 세계는 전세계의 여론과 의사를 능멸하면서 펼치려는 미국의 침략전쟁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의 역사적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

따라서 독일 쉬레더 사민당 정권 하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헤르타 도우블러 그멜린이 얼마 전 부시를 히틀러와 비교하면서 비난했던 것은 근거가 없는 일회성 욕설이 아닌 것이다. 미국의 부시정권 체제는 미국을 공격한 바 없는 아프가니스탄을 일방적으로 침략하여 자신이 통제하는 정권을 세웠고 그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의 대량 학살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 내 기본권의 제한은 물론이요 독점 금융자본-군수산업-석유자본의 대동맹에 의한 소수 독점 자본계급의 이해를 충실히 대변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의 선과 의를 전제로 한 일방적 애국주의인 쇼비니즘의 물결 위에, 21세기형 십자군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국제주의적 협력과 합의의 틀을 전면적으로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국제법은 미국이 인정할 때만 국제법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미국은 언제나 독자행동이 가능하다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패권적 논리로 다른 나라들의 주권을 짓밟고 있다.

하여, 속셈은 따로 있으면서 근거도 확실하지 않은 대량살상 무기 문제를 구실로 삼아 이라크 침략과 정복을 겨냥해 매일 전쟁을 선동하고, 엄연한 주권국가인 후세인 정부에 대한 비밀공작과 폭력적인 전복까지 획책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누가 과연 인류 평화의 공적(公敵)이 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분명한 야만이며, 국제질서의 합리적 발전을 함부로 파괴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한반도는 바로 이 광포한 제국의 위험하기 짝이 없는 전쟁정책이 뽑아든 칼끝에 위태롭게 서 있다.

김정일 '신의주 파격'의 파장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 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정책만이 유일하게 한반도의 운명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한반도에는 두 가지 기운이 격돌의 조짐을 보이면서 크게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그 엇갈림의 한 복판에는 전쟁과 평화, 야만과 문명, 죽음과 생명, 단절과 교류, 패권과 자주, 적대와 협력이라는 도저히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대칭축이 현실을 날카롭게 가르고 있다. 이 가운데 어떤 기운이 장차 역사적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인가에 따라 우리 겨레의 살림살이는 물론이거니와, 동북아 전체의 장래가 판결 나게 되어 있다.

최근의 정세 변화에서 특별하게 주목되는 것은, 동북아시아의 공동체적 성격을 확정해 가는 노력들이 잇달아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동북아시아 전체의 생활권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그 내적 역량의 규모나 강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포함하고 있다. 내용 면에서 봐도, 실로 전례 없는 전환기적 파장을 불러일으킬만 하다.

경의선, 동해선 연결과 비무장 지대 지뢰제거 등 남과 북의 교류와 협력이 보이고 있는 각종 분단 경계선 돌파는 물론이요, 북한과 러시아, 북한과 일본의 선택은 동북아시아 전체의 활력을 새롭게 소생시켜나가는 작업에 중차대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 틀림없다.

유럽까지 뻗어갈 시베리아 철도와의 연계를 비롯, 동북아시아 내부의 역사적 갈등 해소 등으로 더 이상 동북아시아 내에 상호 교류와 협력을 가로막을 장애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 화교출신의 인물을 자치기능을 감당할 수반인 행정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신의주 특구에 대한 파격적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상과 그 실천의 현실은 한반도의 변화 추세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한반도의 안전보장에 긍정적인 추가 요인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특성은 <생산적, 건설적, 평화적 연관 고리 만들기>이다. 그 동안 각기 분절되어 있는 생활권의 결합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장래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불가결한 존재가 되어 가는 활로를 뚫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당연히 동북아시아 전체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결과로 가게 되어 있다.

이에 반해, 미국의 침략적 전쟁정책의 성격은 이러한 연관 고리 만들기를 훼손하고 과거의 분절상태로 돌이키면서 <파괴적, 소모적, 적대적 지배장치의 군림>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결국, 미국의 움직임은 동북아시아 전체의 역량 성장을 억제하고 분할통치하면서 자신의 패권을 강화하려는 것에 그 목표가 있다고 하겠다.

여기서 우리는 앞의 것은 미래적 대세의 힘을 가진 반면, 뒤의 것은 퇴행적 반동의 기류인 것을 직시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그 선택의 향방은 분명해진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한 길

문제는 퇴행적 반동의 기류를 저지하기에 요구되는 내부의 역량과 의지가 여전히 불충분하다는 점에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의 제국주의적 본질과 정책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대결의 응집력이 확고하지 않다는데서 비롯된다. 이른바 <한-미 공조>라는 말로 포장되어 있는 우리의 대미종속 구조는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질서에서 한반도가 풀려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특히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이회창과 <조선일보>를 필두로 하는 사대주의 세력들이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정책을 적극 추종 내지 이에 투항하면서 내부의 '탈 분단 통일 역량'을 교란,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역사발전의 크나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가령, 지난 9월 23일자 <한반도 전환기에 DJ가 할 일>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한국, 일본, 러시아의 대북 정책을 "김정일 달래기"로 규정하고 미국의 대북 적대압박 정책을 "미국이 가는 길"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상황은 "이른 시일 내에 한-미-일 공동이익의 틀 안에서 조율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내용 전개가 논리적으로도 엉망일 뿐만 아니라, 주장하는 바도 동북아시아 정세의 변화가 지향하고 있는 바를 "김정일 달래기" 운운이라는 정도의 유치한 식견으로 보는데다가 민족적 입장이라고는 전혀 없는 대미 추종으로 일관하고 있다. "북에 대한 한-미간의 조율성과가 지금껏 아무 것도 없다"면서 "김대중 정부의 대미 외교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고 공박한 뒤, 결국 조선일보가 언제나 그렇게 강조하듯이 왜 미국의 입장에 맞추지 않느냐는 식으로 다그친다.

"김대중 정부가 한-미간의 불신을 해소하려면"이라고 전제하고 있는 이 사설은 그 이른바 불신의 정체가 미국의 일방주의적 패권정책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점을 일체 거론하지 않는다. 김대중 정부의 책임이 거론되어야 하는 국가간 외교적 불신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부당한 간섭과 지배의 문제라는 점을 보지 못하고 있는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대주의적이고 반민족적이며 민족분열적 식견, 노선, 입장에 서 있는 세력들의 집권을 허용하게 된다는 것은 이 시대의 지극한 수치이자 엄중한 역사적 문책이 뒤따를 민족사적 과오가 아닐 수 없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의도'는 절대선

김대중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대중 정부의 무수한 정치적, 경제적 실책에도 불구하고 남북 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일관된 기조를 가지고 평화적 발전과 민족 공동체적 협력체제를 밀어 부치고 있는 것은 높은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른바 햇볕정책의 계승은 그런 의미에서 그 표현의 문제를 논외로 하고라도, 그 본질적 의도와 구상에 있어서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는 민족생존의 절대선(絶對善)이다.

김대중 정부의 대미 종속적 자세는 정권의 대미 인식에서도 기인하고 민족적 역량의 한계에서도 그 뿌리를 두고 있으나, 이렇게 그나마 그 한계를 어떻게든 넘어서려는 노력의 일단이 있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공동의 자산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토록 어려운 과정과 우여곡절을 지나온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변화의 힘을 우리는 내부 역량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단계로 성숙시켜나가지 못하는 비운에 처할 수 있다.

한편, 북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펼치고 있는 다각도의 외교행보는 동북아시아 급변의 정세를 주도하고 있다시피 한다. 이것은 물론 김대중 정부의 노력과 주변정세의 요구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북한의 생존에 대한 절박한 인식과 중국, 동구라파, 러시아의 변화에 대한 깊은 성찰의 결과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자신의 돌파력 있는 결단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우리의 평가가 인색할 이유가 없다.

다시 말해서, 북이 현재 매우 능동적으로 그리고 속도전적 행보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직면한 현실이 결코 놓치면 안되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 과거의 교조적 인식과 명분론에 집착한 경색된 방식에서 벗어나 실용적 계산과 유연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동선을 넓히고 있는 김정일 체제의 변화와 우리의 민족적 요구가 보다 강력하게 결합되는 호기를 상실할 경우, 그 다음 상황의 주도권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정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지지 "영남민심", 역사의식의 올바른 궤도로 돌아와야

이에 우리는 다음의 노력과 선택에 대하여 확고한 의지를 가질 일이다.

첫째, 미국의 전쟁정책에 대한 거부를 명백히 해야 한다.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미국의 침략전쟁에 동조할 수 없으며, 우리의 자산과 역량을 동원 당할 수 없다. 주한 미군의 문제는 이러한 각도에서 끊임없이 논의되고 그 해결의 방향이 속히 결정되어야 한다. 전쟁정책의 일차적 수행의 책임을 가진 군대를 우리 땅에 그대로 두고 이뤄지는 평화는 불안정하다.

둘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제2차 정상회담에 속히 임해야 한다. 잘못하면 반동적 사대주의 세력의 집권이 이루어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민족적 성취의 진전이 보다 신속하게 전개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러한 평화적, 건설적 기류가 현실의 기정사실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셋째,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이회창과 <조선일보>의 동맹체제로 대변되는 사대주의적이고 반민족적인 대미 종속주의 세력의 집권을 막는 것이 현재의 상황에서 최대의 "정치적 의(義)"이다. 이것이 기준이 되는 개혁적, 진보적, 민족주의적 역량의 대(大)정치적 결집이 있지 않고서는 한반도의 미래는 혼란과 좌절, 그리고 자칫 전쟁의 늪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번 대선은 그러한 역사적 기로에 선, 그야말로 중차대한 민족적 결단의 현장이다. 한나라당을 대체로 지지하고 있는 이른바 "영남민심"은 그런 의미에서 민족사적 역사의식으로 돌아와 상황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김대중 정권이 밉고 비난의 소지가 무수하다해도, 그러한 생각의 결론이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체제에 순응하는 식민정치의 종속 파시스트 세력에 불과한 자들에 대한 지지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것은 앞서 이미 밝혔듯이 우리 모두의 생활영역 확장과 발전에 대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해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전쟁과 평화, 야만과 문명, 죽음과 생명, 어떤 기류를 정작의 대세로 만들 것인가? 그것의 절반 이상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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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기자는 경희대 교수를 역임, 현재 조선학, 생태문명, 정치윤리, 세계문명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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