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근 화가 임옥상(52)씨를 두 번 만났다. 두 번 모두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의 짧은 조우였다. 미국과의 월드컵 경기가 있던 6월의 어느 날, 추적추적 비까지 내려와 사람들로 가득 찬 광화문 거리를 힘들게 걷고 있는데 필자의 시선에 그가 들어왔다. 빨간 'Be the Reds' 티셔츠를 입고 있던 그는 '월드컵 거리응원'을 하러 간다며 무척 상기되어 보였다.

몇 달 후 인사동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짙은 남색의 '우리는 강팀이다'라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최근 근황과 미술작품에 대해 묻고 헤어졌는데, '인사동거리미술'을 주최하고 있는 그가 일요일 행사에 나온 것이었다.

▲ 철의 꿈 (고철, 스푼, 나이프)
ⓒ 임옥상미술연구소
그는 '거리'와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와 거리에서 맞닥뜨린 몇 번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거리예술가'다. 그는 그의 작품들을 황량한 미술관에 걸어놓고 할로겐전구 몇 개와 몇 명의 특정 미술인사들에게 시선을 받게 하느니, 바깥장소인 거리에 자신의 작품을 세워놓고 아무에게나 말을 붙이고 시비를 거는 편을 택한다.

개인적인 콜렉션을 마련해 배타적으로 그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서양인, 혹은 서양예술과 달리, 한국의 예술이라는 것은 바깥에 꺼내어 놓고 서로가 즐겁게 둘러보며 이야기하는 포괄적인 정서를 포함한다. 이러한 정신에 입각한다면 임옥상씨는 거리예술가며 민중미술가가 확실하다.

그는 몇 년 전부터 한국의 분단과 갈등, 통일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왔다. 그가 한국전쟁이 터진 해에 태어났다는 강박관념이 그의 미술세계를 한쪽으로 기울도록 억압했는지는 모르지만, 경기도 화성의 미군 사격장인 매향리의 고통을 함께 느낀 후 그의 관심은 오직 매향리로 향했다.

그는 미군이 사용했던 사격장의 사생아들, 즉 낡은 고철과 비행기 파편 등을 이용해 작업을 시작했다. 주재료로 사용된 쇠와 철은 그것의 차가운 금속성에 매향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오브제였고, 그는 매향리라는 작은 영토에서 한반도라는 큰 영토가 동시에 품고 있는 분단의 아픔, 통일에 대한 염원을 쇠와 철로 표현해냈다. 그가 작품 하나 하나에 쏟아부은 것은 그의 투쟁이며 그 투쟁은 한국의 역사이자 정신이라 할 수 있다.

▲ 회의용 탁자 (매향리폭탄잔해물, 알미늄, 강철, 유리)
ⓒ 임옥상미술연구소
그는 9월 25일부터 10월 7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철기시대 이후를 생각한다>라는 13번째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철기시대의 폐해를 지적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려 한다. 그가 전시하는 작품들의 소재인 철은 대부분 매향리에서 자신이 직접 주운 파편들과 스푼, 나이프, 포크 등의 서양식 컷러리(cutlery) 및 서양식 생활집기 등이다.

그는 "군함을 녹여 논밭을 가는 보습을 만들고 DMZ를 뒤덮고 우리나라 해안선 전체에 둘러쳐져 있는 철조망을 걷어 자유의 기념비를 만들자"고 말한다. 그의 이런 주장은 그의 작품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파괴를 의미하는 낡은 고철의 파편들은 하늘로 승화하려는 새, 물 속에서 평안히 헤엄치는 물고기 등으로 승화되어 나타난다. 그는 철이라는 금속이 꼭 차가운 폭력의 무기가 아니라 그 사용용도에 의해 따뜻함을 간직한 생활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또 다른 의미, 혹은 서양식 문명이 가져온 환경파괴의 모순성에 파고든다. 전쟁이라는 살벌함은 철이라는 재료에 한 가지 정체성을 부여해왔지만, 예술가 임옥상이 보는 철은 평화를 상징하는 재료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단순한 작업처럼 보이는 철의 모습에는 고뇌하는 매향리의 이미지가 숨쉬며, 인류가 품어온 삶의 고통스런 이면도 묻어나온다. 죽음의 이미지와 팔딱거리는 생명성이 함께 공존하는 그의 작품에는 철기시대 이후, 즉 전쟁 이후 꿈틀거리는 자연의 강한 생명력이 엿보인다.

▲ 작가 임옥상씨
ⓒ 임옥상미술연구소
그는 '철기시대'가 "힘이 증오를 낳고 증오가 복수를 부르는 '부시천국'의 원시적 철기시대"라고 정의하며 "그 엄정하고 둔중한 금강석처럼 반짝이는 순수한 철의 '철기시대 이후'를 꿈꾼다"며 이번 전시회의 정의를 내린다.

그에게는 80년대를 주름잡았던 민중미술가 출신이라는 꼬리표와 좌파경향의 예술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지만, 분명한 것은 그처럼 예술을 정치적으로 매끄럽게 표현해내는 작가가 드물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입고 있었던 티셔츠의 'Be the Reds', '우리는 강팀이다'라는 메시지는 다른 사람이 입었을 경우와는 달리 더 정치적으로, 호소력있게 다가온다. 그러나 더 매서운 정치적 호소물은 그가 두드리고 용접해 탄생시킨 철의 모습들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