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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연찮게 보게 된 길거리 표어 하나가 저를 행복하게 하였습니다. 한낱 길거리 표어 하나에 행복씩이나 느끼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1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10여 년 전. 경북 구미를 가다가 발견한 길거리 표어에서 인연이 시작됩니다. 그 후로 저는 틈틈이 길거리 표어에 대한 제 관심을 여러 해당기관에 제안을 하였습니다. 전화로, 메일로, 인터넷 게시판으로.

불신에 기초한 살벌한 경고들

구미 근처 기차 건널목에서 본 표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도 언젠가는 건널목 사고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저는 차를 세우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114가 전국네트워크가 안 되어 있어서 김천 114로 다시 문의하고 나서야 그 지역 철도청 직원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눈치 빠른 분은 벌써 짐작하셨겠지만 제가 말한 요지는 그렇습니다. 안전사고를 예방하고자 하는 취지는 십분 공감이 되지만 그런 식으로 살벌한 협박이 되어서는 효과가 없을 뿐더러 도리어 사태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철도청 직원이 뭐라고 대답 했는지 기억에 없지만 제가 흡족해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한데 의례적인 인사라는 느낌을 더 받았던 듯합니다.

그 후로 저는 고속도로나 국도 등지에서 보게 되는 교통관련 표어를 볼 때마다 어떨 때는 도로공사 어떨 때는 건설교통부, 또 어떤 경우는 지방경찰청에 제안을 하곤 하였습니다. 제가 믿는 바로는 어떤 이미지나 언행은 본인이 의도하건 안하건 자기암시가 되어 무의식 속에 자리잡는다고 봅니다.

격려는 경고보다 강하다

그렇게 볼 때 가장 심각하고도 고전적인 교통표어는 '5분 먼저 갈려다 5년 먼저 간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표어가 다 '너 그러다 죽어'라는 식입니다. '한순간의 과속운행 온 가족의 불행된다'라든가 '아차하는 방심운전 후회해도 소용없다' 등등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제일 절박하고 치명적인 죽음(생명)의 문제를 사소한 실수나 부주의와 바로 연결시켜 계도보다는 공포를 주는 방식이 저는 싫었던 것입니다.

제가 해당기관에 제안했던 내용들은 다양합니다.

'감사합니다. 계속 차선을 지켜주세요'라든가 '그렇습니다. 안전속도로 달리시면 됩니다' 등이었습니다. '천천히 달리시면 더 많이 보입니다. 다른 운전자의 마음까지도'라는 표어도 길긴 해도 제안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무엇보다도 긍정적이면서도 운전자에 대한 믿음을 주는 것이 주를 이룬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운전습관, 당신의 인격입니다'라는 문구도 저는 과도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말이 틀린 말이라고 우길 생각은 없지만 습관 하나를 가지고 그 사람의 인격전체를 거론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지요. '당신의 운전습관, 당신이 만듭니다'라고 하여 그 운전자의 자각과 의지에 성원을 보내는 것으로 제안을 했던 것이 같은 이유입니다.

공감과 포용에서 일궈지는 자각에 대한 믿음

기존의 표어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 속에 스며 있는 군사정권이 남긴 달갑잖은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엄포와 공갈협박, 지시와 명령, 그리고 상대에 대한 단죄.

공원이나 휴양지에 가면 볼 수 있는 '쓰레기 투기행위 벌금 100만원' 하는 표어도 제 신경을 건드려서 저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근데 바로 어제 제가 본 표어들이 그 동안 품어온 제 생각과 너무도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이었냐구요? '전국국도유지건설사업소' 명의의 표어였습니다. 두 가지를 보았는데 하나는 '물 흐르듯 즐겁게 달리세요'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도로는 쓰레기가 싫어요'라는 것이었습니다. 뒤의 것은 전형적인 상담심리학에서 말하는 '나 전달법(I Message)' 표어입니다. '나 전달법'은 가정에서 실험삼아 해봐도 효과 만점이지만 모든 관계에도 두루 해당된다고 봅니다.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지만 누군가에 의해서 이런 표어가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는 사실이 저를 너무도 즐겁게 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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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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