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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대 총선 당시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홍보 포스터
지난 16대 총선 당시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홍보 포스터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먼저 개정안 중에서 대선 후보자 기탁금을 현행 5억원에서 20억원으로 상향 조정한 것은 "현재의 기탁금을 대폭 내리거나 아예 기탁금제를 없애야 한다"는 그 동안 시민단체 및 언론계·학계 등에서 내놓은 의견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이는 중앙선관위가 밝히고 있는 후보자 난립을 억제하기 위한 대안이라기보다는 신생 진보정당의 뿌리를 밑동부터 싹둑 잘라버려 돈많은 부자 후보에게만 대선에 출마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것으로 "우리 정치의 근본적인 개혁과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갈망하는 국민들의 여망을 정면으로 짓밟는 것"이라는 민주노동당과 사회당, 언론노조 등의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또, 국가나 공영방송사가 비용을 부담하는 TV 정책토론회 및 공영방송사 무료 방송연설 대상 정당을 국회 교섭단체구성 정당으로 요건을 강화한 것 또한 중앙선관위가 지난 7월 28일에 내놓았던 선거·정당·정치자금개혁방안과는 거리가 멀다.

중앙선관위 스스로도 그 동안 각계의 의견수렴과정에서 국가 부담으로 하는 TV 대담 및 토론회의 후보 초청 기준을 정당명부식 투표제의 취지를 존중하여 국가보조금을 받는 전국 규모의 선거에서 국민지지도 2% 이상을 획득한 당의 후보자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은 적이 있다.

독립적인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가 정치권의 논란에 휘말려 그 본래의 존재의미를 망각하고 기성정치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거공영제와 직결되는 미디어선거에서 국고 지원 기준은 정당의 존립 근거가 공적으로 인정되는 국민 지지율 2%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일 수밖에 없다. 국민득표율에 의한 신뢰도는 그 어떤 여론조사로도 부정될 수 없는 시민적 믿음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선관위의 후보자 거리연설 제한 규정 또한 기성정당과는 달리 미디어선거에서도 소외되는 민주노동당 등 비교섭 진보정당에게는 이중의 차별을 두는 것이다.

국회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미디어선거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대국민 접촉 수단인 거리연설까지 제한한다면 민주노동당 등의 후보는 무엇으로 선거를 하라는 것인지 중앙선관위는 답을 해야 한다.

중앙선관위의 조영식 홍보관리관은 한 토론회에서 "87년 직선제 이후 우리의 정치 과정에서 청중 동원을 통한 불법정치자금의 유입으로 정치권이 발목이 잡히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여러 대안을 모색한 끝에 돈 안드는 미디어선거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올랐다"고 했다.

그 동안 불법정치자금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쪽은 늘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정치권이었는데 그 폐해의 멍에를 불법정치자금과는 전혀 상관없는 애꿎은 신생정당이나 진보정당에게만 덧씌우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

이것은 그 동안 금권정치와 지역정치로 얼룩진 보수정치권에 신물이 날대로 나 있는 국민정서에도 배치된다. 국민들이 뼈빠지게 일해서 낸 세금이 선거공영제란 이름으로 모조리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선거비용으로 들어간다면 우리 국민들이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행 공직선거 및 부정방지법 82조 2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TV토론에 초청할 후보의 선정기준을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의 후보'에서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로부터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의 후보'로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은 동시에 정당득표제의 헌법적 의미를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선후보 선출과정에서 국민지지도 2%에도 미치지 못했던 군소후보들에게조차 TV토론의 기회를 준 것과는 달리 8%의 지지율을 획득한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TV토론의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은 합리적인 이유없이 단지 비교섭단체 후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또 "신생정당이나 정책정당의 출현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뿐만 아니라 미디어정치 발전에도 역행하는 것"이라는 시민단체의 지적을 새겨볼 만하다.

여야 정치권이 중앙선관위의 견해를 받아들여 자신들만 독점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선거공영제'안을 통과시킨다면 "우리는 이를 선관위와 보수정치권이 '야합'하여 선거 자체를 파괴하고 진보정치를 고사시키기 위해 저지른 '정치적 만행'으로 규정하고, 온 국민과 함께 제16대 대통령선거 거부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는 국민 지지율 8.13%의 민주노동당의 주장에 정치권과 중앙선관위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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