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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키스>의 4권 표지
<파라다이스 키스>의 4권 표지 ⓒ 시공코믹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의) 고등학교 생활이라 함은, ‘먼 꿈을 향한 엉덩이의 투쟁’이 아닌가 싶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이 시기에는 내 자신이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미래에 대한 기대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성급히 내리려 하기 때문에 자신이 꿈꾸는 것에 대한 머리의 조바심으로 몸이 닳아있으면서도, ‘대학’이라는 더 중요한 목표로 하여금 책상머리에 앉게 하는 인내심을, 이 세상은 나로 하여금 요구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할 잡스러움이 너무도 많은 나머지 자칫 허무주의에 잠겨버릴 수도 있는 이 시기에 주변인들은 책상머리에 앉아 엉덩이를 꼭 붙이고 헛소리 말고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라고 충고한다.

이러한, 이미 앞서서 청소년기를 보냈을 분들의 충고는 곧장 귀에서 거부 반응을 일으킬 따름일지라도, 옳은 말씀임에 반박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필자는 잠자코 들으려 노력하며, 그렇기에 책상머리에서의 '먼 꿈을 향한 엉덩이의 투쟁’은 오늘도 계속된다.

이렇듯 아무 생각이 없음이 결코 아닐 이 시기에 혹은 욕구 불만(?)의 시기에 필자의 눈에 비친, 아이들 스타들, 십대에 이 사회가 바라는 잣대로 이른바 ‘성공’이라는 것을 인정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렇게 내 자신이 한심스러울 수도 없으며, 그네들에 비해 직접적인, 혹은 자신이 바라는 결과물을 바로 얻을 수 없는 이 기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듯 10대에 꿈을 이루었다는 몇 안돼는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부러움을 불러일으켜 가슴아프게 하지만, 사실 그것은 평범하다할 자신의 일상을 질책함과 더불어 자신이 이루고픈 꿈에 대한 긴장감을 다시 불러일으켜 줌으로써, 자신이 이 기간과 그네들과 같을 수 없기에 그네들의 ‘성공’을 희구하고 열광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일련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준다.

일본의 만화 작가인 야자와 아이의 만화 <파라다이스 키스>는, 이렇듯 불특정 다수의 꿈 많은 고등학생들에게(만화에는 주연령층이 없겠지만 강하게 어필하는 층은 고등학생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화려하고도 다소 환상적인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파라다이스 키스>

<파라다이스 키스> 유카리
<파라다이스 키스> 유카리 ⓒ 시공코믹스
엄마의 질책으로 힘겹게 명문 고등학교에 일단 들어가기는 했지만, 학교가 학교인지라 성적은 계속 하향 곡선을 그리는 유카리는 이러한 자신의 한심하다 할 모습 속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한편 자신의 생활에서 느끼는 일련의 염증이 깊어 감을 인지한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어른 티를 물씬 풍기고, 자신만의 멋으로 치장한 '멋진 남자' 조지와 귀엽고 깜찍하기 그지없는 미와코, 그녀의 남자친구인 락을 좋아하는 듯한 아라시, 원래는 남자이지만 성 정체성을 확고히 굳힌 나머지 여장을 하고 다니는 이자벨라가 나타난다.

그들은 유카리에게 자신들이 준비하는 의상의 모델이 되어줄 것을 부탁한다.(그네들은 의상 제작에 관한 것을 가르치는 일종의 예술 고등학교격인 야자와 학교를 다닌다.) 그중 조지는 어릴 적부터 의상을 제작하는 것에 천재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학교를 졸업하면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가질 것을 꿈꾼다.(사실 만화의 제목 ‘파라다이스 키스’는 조지가 미래에 갖고파 하는 자신만의 브랜드 이름이다.) 그리고 아라시, 미와코, 이자벨라는 이러한 조지의 든든한 작업 파트너인 셈.

여하튼 조지를 보고 처음부터 일련의 끌림을 감지한 유카리는 조지와 점차적으로 연인 사이가 되어 밀고 당기는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유카리는 스스로 느끼기에 아무 의미 없을, 자신의 대학만을 바라보는 고교생활을 그만두려 하고 그러는 사이에 자신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는 엄마와 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

만화 <파라다이스 키스>의 세계는, 생각하기에 현실 세계와 철저히 나누어져 버린, 지극히 비현실적인 세계다.(사실 만화의 묘미는 이 비현실성이긴 하지만 말이다.)

가령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만을 보아도, 하나같이 얼굴의 반이 눈으로 채워진, 미소녀에 미소년이며, 몸매 또한 남자캐릭터 여자 캐릭터 할 것 없이 길고 가늘다.

여기까지는 사실 만화의 특수성이기에 인정한다 해도 남자 주인공격인 조지는 그네 가정의 특수성으로 인해서 고등학생인 주제에 집을 나와서, 자신만의 보금자리, 아틀리에를 가지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미성년자에게 발급도 안돼는 운전면허를 따 세기의 명차를 끌고 다닌다. 거기까지도 인정한다고 쳐도 이 조지라는 캐릭터는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거의 세계 일류 디자이너급으로 해 간다.

그리고 그네의 친구들인 이자벨라, 미와코, 아라시 역시 부모와의 생활과는 철저히 분리된 채로 자신만의 생활을 즐긴다는 측면에서, 그네들의 생활이 거의 절대 다수의 평범한 분들과는 다르기에 매우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다.

<파라다이스 키스>의 한 장면
<파라다이스 키스>의 한 장면 ⓒ 시공코믹스
이러한 비현실적이다 할 만화의 분위기는 그것이 가진 부유함의 극치, 아름다움의 극치를 달리는 캐릭터들로 하여금 이 작품이 순정만화의 형식에 매우 충실함을 인지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 만화보다는 황당함에서 한 수위라고 평가 할 수 있지만) 일본의 여성 만화 창작 집단인 'CLAMP'의 순정만화 의 캐릭터들 역시, 매우 화려한 생활을 하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지나치게 어른 티를 낸다는 점에서 야자와 아이의 만화 <파라다이스 키스>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순정만화가 가진 비현실적인 속성은 그 황당한 화려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독자들로 하여금 일시적인 황홀경에 들 수는 있게 하지만 그다지 영양가 있는 재미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이러한 재미는 결국에 가서는 그것이 허구라는 것이 명확히 밝혀지기 때문에, 허구성에서 얻는 카타르시스 이외에는 만화를 통해서 취할 수 있는 ‘교훈’이라는 것은 없다.

야자와 아이의 만화 <파라다이스 키스> 역시 순정만화가 지닌 허구성에 입각한 재미가 충만한 작품이라고 볼 수는 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렇듯 겉으로 보여 지는 비현실성과는 대조되는 현실성 또한 지니고 있기에 기존의 순정만화와는 다른 교훈적이고, 보는 이로 하여금 고무적이게 하는 면모를 가지고 있다.

궁극적으로 위에서 비현실성의 요소로 제시한 인물들은 여주인공 캐릭터인 유카리를 제외한 설정인데, 그러한 사실로 보았을 때 주인공 캐릭터 유카리는 다른 캐릭터에 비해 현실과 가장 가까운 면모를 지닌, 그저 꿈 많은 고교생일 따름이다.

비교해 보면 극중에서 유카리는 자신이 미래에 할 일,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않아 끊임없이 자신과 엄마와의 갈등을 유발하지만, 다른 캐릭터들은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자신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 전혀 망설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극중에서 유카리를 제외한 캐릭터들의 역할은 유카리의 불완전한 면모를 결국에 가서는 보완해 준다.(유카리가 혼란스러워 할 때 유카리에게 자신들의 의상 모델이 되어달라고 부탁함으로써, 유카리가 전문 모델이 되기로 결심하게 되므로.)

<파라다이스 키스>의 한 장면
<파라다이스 키스>의 한 장면 ⓒ 시공코믹스
어찌 보면, 유카리 자신은 X, 미지수와 같은 존재다. 그 이유는 독자들이 유카리의 입지를 생각하면서 유카리의 입장에 대입되어 만화에 몰입하게 되는 순간 그네들은 일련의 동감을 강하게 인지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이렇듯 독자들로 하여금 미래의 그네들의 꿈에 대한 분위기를 환기시켜 주기에, 꿈의 성취의 의지를 키우는데 일조 할 수 있다.

이렇듯, 유카리 자신이 다소 허구적일 수도 있는 존재들로 하여금, 일련의 카타르시스를 얻음과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과정은, <파라다이스 키스>를 통해 일련의 카타르시스를 느낌과 동시에 자신의 희구점을 좁히기 위해 분발하게 되는 개개인의 독자들의 모습과 겹쳐져 있다.

사실 순정만화에 대한 극적인 허구성과 다른 한 가지 면모가 공존하는 <파라다이스 키스>의 그림체는 독자로 하여금 꿈을 전해 주기 위함인지, 매우 감각적이고 인상적이다. 궁극적으로 매우 특이한 패션들을 구사하지만 너무나도 멋있기에 탄성을 흘리게 하는 캐릭터들의 의상이라든지, 극적으로 귀여움, 아름다움을 묘사함에 모자람이 없으나, 진한 색감으로 하여금 작가만의 개성을 느끼게 하는 펜 터치를 이를테면 말이다. 이는 사실 작가 야자와 아이의 만화 작가 데뷔 이전 패션잡지에서 일러스트 일을 했던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있는 만화 <파라다이스 키스>는 현재 한국에 4권까지 소개되어 있는 상태이며, 한국에 1998년에 소개된 ‘내 남자 친구 이야기’의 속편 격인 작품.(현재 야자와 아이는 만화 잡지 ‘쿠키’에 <파라다이스 키스>이외에 <나나>라는 작품을 발표하고 있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저자: 야자와 아이
  출판사:시공사
  가격:3500원


파라다이스 키스 Paradise Kiss 디럭스 에디션 1

야자와 아이 지음, 한나리 옮김, 시공사(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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