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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두리 양식장이 통째로 도로로 올라와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고 그물속에는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고기들이 썩어 심한 악취를 풍기고 있다.
ⓒ 김종호
청정해역으로 손꼽히는 바다에는 스티로폼이 부서져 마치 눈이 내린 들판처럼 하얗게 변해 있다.

3일 여수시 화정면 계도리 월하 마을. 태풍 루사가 할퀴고 간 가두리 양식장엔 부러진 목재, 이리저리 찢겨나간 그물, 스티로폼, 그리고 어민들의 한숨만 가득 차 있다. 처참하게 변해버린 어민들의 삶의 현장. 그 속에는 희망이 사라진 좌절의 삶이 배어 있다.

어민들은 태풍으로 양식장이 전부 파손되면서 찢어진 그물 사이로 사라진 물고기를 한 마리라도 찾기 위해 직접 바닷물에 몸을 내던지고 있다.

"하늘을 탓해 무엇하겠소. 있는 힘을 다해 한 마리라도 살려야죠. 양식장은 완전히 전파되고 고기들은 모두 다 찢어진 그물을 통해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수가 없다"며 설명을 하는 이 마을 이장 김수보(56)씨. 그는 "15년 동안 양식사업을 해왔지만 이렇게 완전히 양식장이 전부 파손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 태풍 루사로 인해 피폐화된 가두리 양식장
ⓒ 김종호
마을 주민들은 "지난달 30일 오전 12시경 태풍 루사는 집채만한 높이의 파도를 산처럼 몰고와 마을 양식장을 삼켜버렸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날 주민들은 루사의 강한 힘 앞에서 "발을 동동구르며 산 위로 올라가 가슴을 치면서 자신들의 생활터전인 양식장이 처참하게 파괴되는 것을 목격했다"며 울먹였다.

이 마을은 41가구 150여명이 살고 있다. 그러나 태풍으로 인해 370조의 양식장이 대부분 전파돼 수십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피해는 이 마을뿐만 아니었다. 인근 개도리 화산마을도 처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마을 역시 태풍 루사가 할퀴고 간 자리엔 양식장은 간 데 없고 하얀 스티로폼만이 바다를 하얗게 뒤덮고 있었다. 그나마 전파된 가두리 양식장 그물에 걸려 퍼덕거리는 고기들을 조금이라도 살리기 위한 어민들의 사투는 계속됐다.

▲ 처첨하게 부서져 버린 가두리 양식장
ⓒ 김종호
가두리 양식장 시설물들이 50미터 떨어진 마을 도로에까지 밀려와 흉물스럽게 방치돼 그날의 악몽을 짐작케 하고 있다. 도로 위의 그물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해 썩은 물고기들이 풍기는 심한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고 있다.

문영선(44·이장)씨는 "정부 권장 사업으로 가두리 양식을 했는데 중국산 수입 때문에 가격의 폭락도 참고 견뎌왔으나 이제는 그나마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렸다"라며 하소연했다.

450가구가 거주하고 있는 화산마을은 이번 태풍으로 인해 500조나 되는 가두리 양식장 대부분이 유실됐다.

파손되거나 찾을 수 있는 주민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 마을 대부분의 주민들은 눈을 뜨고 나니 가두리 양식장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소중히 키웠던 고기들과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양식장이 한 순간에 다른 곳으로 떠밀려 나가 찾을 수가 없어 하얀 바닷물만 바라보고 있다.

▲ 어민들이 부서진 양식장을 복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 김종호
마을 선착장도 유실돼 현재 복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여객선이 닿지 않아 주민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주민들은 "정부 권장사업을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며 "피해 보상비보다 먼저 앞서야 할 것이 가두리 보호를 위한 로프나 어망 등 실질적인 지원이 앞서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생계터전의 잔해를 치우는 어민들은 타들어가는 가슴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해바다는 찢겨나온 잔해들로 하얗게 뒤덮여 있다. 폭풍우가 언제 왔는지 갈매기들은 어부의 머리 위를 유유히 날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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