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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에 휩쓸려 순직한 고 김진우 씨의 영정. 그 앞으로 그가 받았던 '임용장'이 놓여있다.
태풍에 휩쓸려 순직한 고 김진우 씨의 영정. 그 앞으로 그가 받았던 '임용장'이 놓여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태풍 루사(Rusa)의 영향으로 재해가 발생할 당시 경북 영천시 대창면사무소에 근무하던 30대의 젊은 공무원이 순직한 것으로 알려져 지역 공무원 사회가 슬픔에 빠져 있다.

특히 순직 공무원이 평소 주위 사람들로부터 평판이 좋은데다, 4대 독자로 병든 어머니를 보살피는 등 '효자'로 알려진 인물이라, 그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욱 크게 다가오고 있다.

지난 31일 오후 2시30분쯤, 대창면사무소 직원 20여명은 점점 더 내륙으로 상륙하고 있던 태풍 루사로 인한 관할 지역의 피해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면사무소를 나섰다.

고 김진우(32. 세무직 8급)씨 역시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관리하고 있던 대창면 진천리와 온천리 일대의 태풍 피해를 점검하기 위해 승용차를 이용해 면사무소를 출발했다.

하지만 면사무소를 출발한 진우씨는 곧 '행방불명자'가 되고 만다. 면사무소 직원들뿐만 아니라 마을주민과 진우씨의 가족들까지 그의 행방을 찾았지만 그의 자취를 찾을 수는 없었다.

태풍피해 점검 위해 길 나섰다, 행방불명... 결국 주검으로

결국 이틀 후인 지난 2일 오후 4시 30분쯤, 살아 돌아오길 기다리던 주위 사람들의 바람을 저버리고 진우씨는 대창면 직천리 불암저수지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대창면사무소 관계자는 "직천리 일대에서 태풍으로 인한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차에서 내려 이곳저곳을 점검하다 발을 헛디뎌 불어난 강물에 휩쓸린 것 같다"고 추정했다.

지난 3일 오후 8시 진우씨의 시신이 안치된 영천 영남대의료원을 찾았다. 병원내 영안실에는 아들의 영정을 앞에 두고 주저앉아 있는 고인의 아버지 김정환(73. 대구시 동구 방촌동)씨가 문상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김씨는 평소 '똑 부러지고, 사명감이 철저했던' 아들 진우씨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얼마나 주도면밀하고 정확한 성격이던지, 일 처리 하나만큼 똑 부러지게 했다고. 내 아들이라서 말이 아니라 그 놈은 사명감 하나 가지고 일했어. 또 자신의 생각에 이건 아니다 싶으면 용납을 안 했어. 불의는 못 참는다 이거야." 여느 아버지처럼 김씨도 '아들자랑'으로 슬픔을 감추려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내 아버지 김씨는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고 김진우 씨.
고 김진우 씨. ⓒ 오마이뉴스 이승욱
"저 놈 하나 보고 살았는데…."

"여기 사람들 많이 찾아온다고. 그래도 이 놈이 주위 사람들한테는 인정을 받고 살았던 모양이지. 하지만 여기 와서 나를 아무리 위로해도 난 위로가 안돼. 내가 저 놈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저 놈이 죽었으니 내가 살 이유가 뭐가 있어…."

아버지 김씨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담배갑에서 담배를 한 대 뽑아들고는 불을 붙였다. 그리고 김씨의 시선은 아들의 영정으로 향해 있었다. '야 이 놈아, 왜 애비 두고 먼저 갔느냐'는 듯 김씨의 한스러움이 연기로 뿜어 나왔다. 애써 태연하던 김씨의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모친 간호 위해 병원에서 출퇴근... 혼수상태로 아들 죽음도 몰라

아버지 김씨가 진우씨의 죽음을 더욱 슬퍼하는 이유는 힘든 일을 하면서도 병든 어머니(65)를 간호하는데 열성이었던 '효자'라는 점이다. 진우씨의 어머니는 몇 해전부터 신장병, 고혈압 등을 앓아오고 있었다. 결국 최근에는 신장 수술까지 받았지만 매일 신장투석을 받아야만 연명할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 출가한 다섯 누나만을 둔 진우씨가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병수발을 들어왔다고 한다.

아버지 김씨는 "자기 어머니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자기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퇴근해서 꼭 병원에 들러 어머니 몸 씻겨 주며 간호하다 출근했다. 그러고도 싫은 내색 한번 안했다"며 극진했던 아들의 효성을 회상했다. 현재 진우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알지도 못한 채 혼수상태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진우씨의 가족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이제는 모두 시집간 5명의 누나들만을 두고 있다. 진우씨는 이 가족의 4대 독자로 가족들의 기대는 남달랐다. 진우씨의 막내누나 유경(35)씨는 "제사상 받을 수 있는 아들 하나는 있어야겠지 하면서 늦게 막내 진우를 얻었는데, 아버지가 그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냐"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진우씨의 죽음은 유족들뿐만 아니라 같은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진우씨와 함께 면사무소에 근무하고 있었던 직원들도 슬픔을 감추지는 못했다.

대창면사무소 한 직원은 "진우 형이 원체 성격이 쾌활하고 밝아 주위 사람들이 참 많이 따르는 편"이었다면서 "마을주민들도 형의 그런 성격 때문에 좋아하고 의지했다"고 말했다. 대창면사무소 권오승 면장도 "진우씨는 평소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인정받는 공무원"이었다면서 "이번 사고로 안타까운 인재를 잃었다는 생각에 너무 슬프다"고 심경을 밝혔다.

"주민들에게도 인정받는 공무원"... 주민들 정들어 전근도 마다

고인이 안치된 영천영남대의료원에는 지역 공무원들 등 문상객들의 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고인이 안치된 영천영남대의료원에는 지역 공무원들 등 문상객들의 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진우씨는 지난 96년 공무원으로 임용이 된 후 5년 2개월 동안 대창면사무소에서만 근무를 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순환보직(5년)을 하는 관례에 따라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갈 수도 있었지만, 진우씨가 "이곳 주민들에게 너무 정이 들었다"며 사양해, 전근을 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주위 동료들은 "그 때 진우씨가 전근을 갔더라면 죽음은 면할 수 있지 않았겠냐"며 애석함을 달래기도 했다.

영천시공무원직장협의회 손주익 회장은 "진우씨는 직장협의회 회원으로도 활동을 하면서 직협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면서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또 손 회장은 이번 진우씨의 사고에 대해서 "일선 공무원들이 수해뿐만 아니라 산불 등 각종 재난처리에 나서면서 별다른 장비도 갖추지 못하고 투입되는 형편이라 항상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면서 각종 재난업무에 나서는 일선 공무원들의 어려움을 하소연하기도 했다.

한편 유족과 공무원들은 4일 오전 8시 30분부터 고인의 영결식을 가졌다. 또 고인이 근무하던 대창면사무소를 들러 간단한 제를 올린 후 시신을 화장해, 대구 인근의 한 납골당에 유해를 안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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