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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가면서 뿌리는 빗줄기를 뚫고 한걸음 한걸음 걷고 있다.
태풍이 지나가면서 뿌리는 빗줄기를 뚫고 한걸음 한걸음 걷고 있다. ⓒ 전희식
골짜기에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폭우는 한으로 맺힌 2600여 농민군 원혼들의 몸부림 같았다. 단 8시간만에 그 많은 농민군들이 무더기로 살육을 당하고 지금까지 위령탑이나 추모비 하나 없이 100년 세월을 노지에 집단매장되어 있었으니 한 순간인들 눈을 제대로 붙인 적이 있었겠는가 싶었다.

외국군대의 무기에 희생되는 건 예나 지금이나...

1만 명이니 8만 명이니 하는 동학군이 겨우 몇 백 명의 일본군 기관단총 앞에서 1년여에 걸친 농민전쟁의 마지막 전투를 장식하고 후대들에게 기울어가는 나라의 운명을 내맡긴 채 숨을 거두어간 당시가 떠오르면서 오한이 일었다.

원불교 보은교당 교무님께서 새하얀 법복을 다 적셔가면서 109년만에 처음으로 이 골짜기에 목탁소리가 울리고 있다면서 농민군 신위들께 용서를 빌었다. 가지고 갔던 3년된 디지털 카메라는 이 골짜기에서 살아나오는 것이 송구스러웠던지 빗물에 잠겨들면서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동학농민군들의 숨통이 끊기면서 우리는 왜놈들의 종살이를 시작했다. 우리 쌀이 죽어버리고나서도 국제 쌀값은 여전히 쌀 것인가? 무한정으로 우리 식탁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엠에스워드가 한글이 퍼렇게 살아있을 때야 공짜로도 뿌려지고 단돈 만원에 살포되지만 한글이 사라지는 순간에는 돌변할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화백회의와 호혜시장

화백회의는 가장 인간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이라고 여겨졌다. 우리쌀지키기 중간평가와 걷기운동의 방식에 대한 화백회의가 열렸는데 내 느낌이 그랬다는 것이다. 지금의 서구민주주의는 절차적 민주주의로서는 완벽하지만 서구적 패권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다수결로 채택되지 않은 숱한 의안들은 다 사장되어 버린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10%건 20%건 1위 득표자가 국회의원이 되고 다른 쪽에 던져진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표는 다 사표가 된다.

할머니 농민의 이마에서도 WTO 가 박혀있다. 109년 전 이땅의 농민과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할머니 농민의 이마에서도 WTO 가 박혀있다. 109년 전 이땅의 농민과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 전희식
화백회의는 그렇지 않다.
우선 첨예한 의견대립이 발생하지 않는다. 1위가 다 먹어치우지도 않는다. 항상 재논의의 여지가 열려 있다. 서로가 상대의 좋은 의견에 의지하여 자기의 의견을 발전시켜나가는 대목이 참 감동적이었다. 복잡해보이는 절차가 생소한 제도라는 것과 맞물려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채택해볼 만한 제도라고 생각되었다.

화백회의와 더불어 호혜시장이라는 일종의 지역화폐를 20년간 연구 해 오신 '좌계선생'의 노력이 대단해 보였다.

지역화폐의 활성화에 사이버머니를 결합하고 싶었다

미래화폐라고도 부르고 지역화폐라고도 부르는 새로운 유통수단의 등장은 사실 화폐시장에서 발생하는 이른바 '발행자 수익'을 공동체 성원들에게 되돌릴 수 있는 획기적인 제도라고 생각한다. 유기농산물 중심의 도시 소비자 생협을 위시하여 요즘 우후죽순처럼 확산되고 있는 각종 생활협동운동은 스스로 '인간의 얼굴을 한 화폐'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의료생협, 교육생협, 육아생협, 주거생협, 우리옷생협 등등에서 단일한 지역화폐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대단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호혜시장의 특징은 마르크스가 지적한 '죽은 노동'인 상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장과 다르다. 여기서 화폐도 하나의 상품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기 바란다. 호혜시장은 화폐로 계량할 때 그 의미가 죽어버리는 사람의 공덕이라든가 정성 등을 주요한 가치로 여기는 제도이다.

동학굿이 열리는 속리 초등학교. 가운데 제단을 중심으로 여러 격문과 만장이 나부끼고 있다.
동학굿이 열리는 속리 초등학교. 가운데 제단을 중심으로 여러 격문과 만장이 나부끼고 있다. ⓒ 전희식
이가 빠지고 땟국이 줄줄 흐르는 실상사 도법스님의 다기 한 세트가 40만원 정도에 거래되어 보은군 내 농가빚에 시달리는 농민에게 전해지는 식이었다. 한 문화운동가가 평생 사용하던 낡은 장구가 새 것보다 몇 배 비싸게 거래되었다. 역시 농민의 희망의 불씨로 건네졌다.

이곳 보은취회에서 통용되었던 '보은화폐'를 두고 좌계 선생은 나에게 사이버머니와의 결합을 연구해달라고 했다. 불환폐인 지폐의 위조를 막기 위해 드는 비용을 사이버머니와의 결합으로 해결하자는 취지였다.

아름다운 사람들 - 살아있는 부처

나는 개인적으로 이번이 세 번째로 걷기대열에 합류한 셈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들 묵묵히 그냥 걷고 있을 뿐이다. 하늘빛님은 여전히 새벽에 사람들이 일어나면 조용히 새날의 기운을 잘 받아들이도록 몸을 마디마디 풀어준다. 다리 털기, 발목 돌리기, 허리 꼬기, 머리 손가락으로 두드리기, 장 마사지, 척추 펴기 등등. 서림스님은 간단한 명상을 지도하신다.

수정씨는 예나 지금이나 꼭두새벽에 일어나 신 김치에 풋고추로 아침 식탁을 준비한다. 정경식 걷기위원장은 항상 조용히 독서를 하거나 잠을 잔다. 먼 길 걷는 사람은 눈길 하나도 아껴 내공을 쌓아야 하리라.

내 눈에는 이들만 보이는 게 아니었다.
비에 흠뻑 젖어 당도한 속리 초등학교에서 열린 호혜시장에 허름한 보따리를 든 해월 선생이 보였다. 흐트러진 상투를 미처 만지지 못한 전봉준도 작은 체구와 단단히 다져진 몸매로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한다. 눈빛 형형한 김개남도 호주머니를 연다. 가장 용맹했던 천민부대인 김개남 부대.

김개남 장군은 긴 칼을 거머쥐고는 어느새 사람들이 잔을 올리고 있는 제단으로 나가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는 충주 기천문 도장에서 온 검무사가 된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깃발이 오르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를 부른다. 검은 도복의 검무사는 최제우가 한풀이로 추었다는 기천무라는 칼춤을 춘다. 바람을 가르며 왜군의 총탄처럼 내리꽂히는 빗줄기를 잘라낸다.

그날의 영령들의 서러움이 세찬 빗줄기와 칼춤을 통해 나에게 다가온다. 제단의 대나무 깃발은 휘청거리면서도 탄력있게 다시 일어선다.
갑오년의 죽창을 든 접주들이 백두에서 한라까지 달려갈 사발통문에 이름 석자를 적어 넣는다. 임오년(2002년) 동학군의 칼춤이 시작되자 장안으로 태풍이 날아들고, 그 거센 바람결에 휘말린 사발통문이 천지사방으로 새처럼 날아가 남과 북 모든 접들의 기포를 재촉한다.

[사람이 하늘이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을 하늘(한울)님으로 떠 받드는 세상. 한결같은 염원으로 지금도 계속된다.
[사람이 하늘이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을 하늘(한울)님으로 떠 받드는 세상. 한결같은 염원으로 지금도 계속된다. ⓒ 전희식
내가 술잔을 올릴 차례다. 물에 번진 복사빛깔 동동주 위로 빗줄기가 쏟아진다. 잔을 들고 마음 속으로 그날의 영령들에게 맹세를 한다.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처럼. 아들 새들이가 다친 팔을 받쳐 들고 함께 절을 한다.

27년만의 해후 - 거리로 나선 어느 고교생

두 번째날 밤에 이 고등학생을 만난 것은 하나의 희망이었다. 8월 6일 내가 두 번째 걷기 합류 때 얼핏 본 기억이 나는 앳된 남학생. 그는 엄밀히 말하면 학생이 아니었다. 올 7월에 고등학교 1년을 자퇴하였으니까. 아버지가 고등학교 교사이고 어머니가 약사라고 했다. 부모의 동의하에 자퇴와 우리쌀 걷기를 선택했다고 한다. 당시의 애기접주들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혼자 상상해 본다.

이 아이는 오전의 화백회의 때도 청년의 수수함과 지적 날카로움이 돋보이던 친구였다. 근 한 시간을 그 학생과 정담을 나누면서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뛰쳐나왔던 내 모습과 겹쳤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애정이 샘솟았다. 27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한 학생이 여기 있었다. 학교를 나와 홀로 자기 길을 걸어가는 어린 청년의 모습. 걷기가 끝난 후의 생활계획이 잘 짜여져 있는 그 아이가 뜻대로 훌륭한 소설가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 학생은 공부와 친구를 학교보다 길거리에서 훨씬 풍부하게 만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물었다. 이럴 수 있는 거냐고.
나는 그 학생의 손을 꼭 잡으며 그렇다고 말해 주었다. 걷기운동이 끝나기 전에 내가 다시 이 대열에 합류한다면 분명 제일 먼저 이 친구, 정준이를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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