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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수 4집 '자유혼
김두수 4집 '자유혼 ⓒ 배성록
나비는 춤을 추듯 하늘하늘 날아 움직인다. '훨훨 하늘을 날아올라' 꽃들 사이를 헤맨다. '눈멀고 귀 먼' 영혼처럼 '그저 흐느껴' 날아다니는 나비. 거기에 속세의 때와 개체의 삶을 옥죄는 구속이 자리할 곳은 없다. 자유로운 작은 존재, 날개의 작은 떨림이 만들어내는 의지와 생명력. 마치 김두수씨의 음악과도 같다.

김두수씨는 10여 년을 강릉에서 은둔하고 있는 뮤지션이다. 병마에 시달린 동시에 서울 생활에서 못 볼 것들을 보아온 김두수씨는 물 흐르듯 돌 구르듯 그렇게 은둔 생활을 택했다. 어쩌면 자신의 노래처럼 '나비'나 '보헤미안'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김두수씨의 음악은 지금껏 보아온 그 어떤 것들보다도 독창적이다. 아니, 한국에서 이런 음반이 나왔다는 것이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리저리 떠도는 방랑자처럼 독특한 선법을 지닌 가창과 멜로디 감각, 속세를 떠난 사람만이 쓸 수 있을(도가 사상에 가깝고 仙적인 분위기가 강한) 노랫말, 격한 슬픔 대신 체념의 정서, 그리고 목가적이면서 묘한 잔상을 남기는 음악의 심상. 이런 것들은 이제껏 기성 가요에서도, 언더그라운드에서도 보지 못했던 요소들이다. 그렇다고 김두수씨가 특별히 이런 점들을 고려해가며 음악을 만든 것 같지도 않다.

시작은 어쿠스틱 기타의 독특한 트레몰로 주법과 신경질적인 피리 연주가 어우러지는 '들꽃'이다. 아련한 기타 사운드 틈으로 배어나는 김두수씨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영혼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아마 공안 정국이라면 마약 혐의로 잡혀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서 유영하는 듯한 목소리이다. 이어지는 '기슭으로 가는 배'와 '나비'까지 들으면 김두수씨 음악의 개괄적인 특성에 대해 뭔가 할 말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우선 온갖 기타 주법이 다양하게 동원된다는 점. 닐 영(Neil Young)이 연상되는 쓰리 핑거 주법부터 해머링, 하모닉스까지 등장하는 김두수씨의 어쿠스틱 기타 활용은 놀랍다. 피크가드를 손끝으로 탁탁 치는 소리조차도 있는 듯 없는 듯한 리듬을 타고 연주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스트러밍과 플러킹을 자유자재로 교차시키는 대목에서는 절로 탄성이 나올 정도다. 그에 더해 피리, 블루스 기타, 첼로 등 다른 악기들을 반드시 한둘은 조화시키기 때문에 지루하다는 생각도 할 틈이 없다.

전주부에서 어쿠스틱 기타와 다른 악기가 배합되고, 이후 보컬이 등장해 염불하듯 도가적 메시지를 내보내고, 기타 주법이 변동을 겪으며 유유히 흘러가듯 노래는 언제 끝났는지 모르게 마무리된다. 이것만 봐서는 김두수씨 음악이 무슨 패턴에 기초한 듯 보이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말 그대로 길 따라 물 따라 흐르는 듯, 음률이나 공식에 의존하지 않는 거의 '최초의' 한국 음반이라는 편이 옳다. 변화무쌍하지만 질서가 있고, 귀기가 서려 있으되 차갑거나 날카롭지는 않다. 이런 부분들은 작심하고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들이 아닐 것이다.

3집 음반의 곡을 재수록한 '보헤미안'은 김두수씨 스스로를 대변하는 듯한 노래다. 쿡쿡 찌르는 듯한 하모니카 선율과 둔중한 기타 스트러밍에 꿈꾸는 듯한 김두수씨의 보컬이 죽 이어지다가 한이 가득 서린 허밍이 등장하는데, 듣는 내내 한껏 고양된 감각이 어느새 비통함으로 변하는 독특한 체험을 맛볼 수 있다. 이런 청자 감각의 묘한 변이는 이 명곡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은 아니다. 'Romantic Horizon'은 흡사 러시아 Svetlana의 민요를 듣는 듯 목가적인 여유로움과 신비주의적 환각이 함께 어우러진 노래이고, 역시 트레몰로 주법이 돋보이는 '방랑부' 역시 슬픔과 체념의 정서가 공존하는 곡이다. 한없이 처연하지만 비관적이지는 않다. 그것은 아마도 김두수씨 본인이 생활 면에서나 음악적으로나 '은둔'을 통해서 대안을 모색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문명과 단절된 생활 속에서 보다 큰 만족을 느끼고, 이렇게 음악을 해 왔다는 것은 분명 한국의 현실을 볼 때 놀라운 일이다. 특히 이 음악들의 일관된 정서적 통일성과 개별 곡들의 크리에이티브는 분명 경이적인 성취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김두수씨가 프로듀서, 사운드 프로듀스 등의 용어를 잘 알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이채롭다.)

물론 김두수씨가 [자유혼]을 통해 제시한 '대안'은 한국 음악계의 현실과 맞물려 생각하면 마음만 아플 뿐이다. 음악계 현실과 동떨어진 곳으로 '은둔'하지 않고서는 독창적인 음악을 펼치는 것은 정녕 꿈에 불과한 일일까. 사회와 세상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은둔자의 사색을 노래하는 쪽을 택하는 방법밖에는 없었을까. 미사리와 소극장으로 숨어 든 한국 포크의 새로운 '대안'이 메인스트림 안에서 비판 정신을 휘두르는 음악이 아닌, 은둔자의 내면적인 노래라는 사실은 무턱대고 감탄만 하기에는 한숨이 함께 나온다. 그래서 김두수씨 [자유혼]은 김두수씨 개인의 음악적 성취로는 기록될 수 있겠지만, 한국 포크 씬에 일종의 무브먼트(Movement)를 이끌어내기에는 아쉬움이 남는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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