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요즘 시골에는 호박꽃이 많이 피어 있습니다. 하지만 반딧불이는 아무리 기다려도 볼 수가 없더군요.
요즘 시골에는 호박꽃이 많이 피어 있습니다. 하지만 반딧불이는 아무리 기다려도 볼 수가 없더군요. ⓒ 조경국
"호박 한딩이 가져가서 나물해서 묵어라."
외할머니께서 밭으로 가시더니 둥근 호박을 따서 아내에게 건네주십니다. 시골집에 올 땐 빈손이지만 돌아갈 땐 양손이 무겁습니다. 고추, 가지, 오이, 호박 기타 등등. 부모님과 외할머니께서 뙤약볕에 정성스럽게 키운 것을 보따리 보따리 싸주십니다.

이번 여름휴가의 대부분을 하동에 있는 시골집에서 보냈습니다. 덩치가 산만한 품종을 알 수 없는 우리 집 멍멍이 멍치가 낳은 6마리의 강아지가 온 마당을 헤집고 다녔는데, 그 중 한 마리가 마당에 있는 호박꽃을 건드리다 벌에 쏘였는지 하루종일 깽깽거려 시끄러웠죠.

노란 호박꽃을 보고 있노라니 어렸을 적 만들었던 호박초롱이 생각납니다. 호박초롱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예쁘게 핀 호박꽃에 반딧불이를 집어넣고 꽃잎을 오무려 묶으면 예쁜 호박초롱이 되지요.

반딧불이를 여러 마리 넣으면 더욱 환상적입니다. 반짝반짝 밤새 빛을 냅니다. 노란 꽃잎을 뚫고 새어나오는 불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지금이야 반딧불이를 보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든 일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이맘때쯤 한밤엔 반딧불이를 예사로 볼 수 있었습니다. 꼭 호박초롱이 아니더라도 시커먼 박카스 병에 넣어도 좋고, 이것도 저것도 없으면 100원만 있으면 사먹었던 사또밥(양이 굉장히 많았던 과자)봉지를 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밤만 되면 반딧불이를 잡으러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경지정리로 반듯하게(?) 흐르는 마을 앞 개울. 어도조차 만들어 놓지 않아 물고기들이 아래위로 오갈 수 없습니다.
경지정리로 반듯하게(?) 흐르는 마을 앞 개울. 어도조차 만들어 놓지 않아 물고기들이 아래위로 오갈 수 없습니다. ⓒ 조경국
반딧불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은 중학교 들어갈 무렵 마을 앞 들판에 경지정리 공사가 시작된 후부터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구불구불한 논두렁을 바둑판처럼 만들어 버리고, 들판 한가운데로 구불구불 흐르던 개울도 일직선으로 흐르기 시작하면서 반딧불이의 모습은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땐 경지정리된 마을 들판이 마냥 보기 좋았습니다. 반딧불이가 사라지는 것은 뒷전이고 반듯하게 정리된 들판을 보고 우리 마을도 발전(?)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죠.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냥 그대로 두었다면 지금도 반딧불이를 볼 수 있을텐데 원망스런 마음이 들더군요.

꼭 경지정리 때문에 반딧불이가 사라진 것은 아니겠죠. 농약 때문일 수도 있고 숙주인 다슬기나 달팽이가 보기 힘들어진 것도 원인일 수 있습니다. 여하튼 한 번 사라진 것은 다시 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는데 15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시골에 살았던 분들은 지금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한두 가지쯤 가슴 속에 품고 계실 겁니다. 저도 시골집에서 며칠 지내다 보니 호박초롱뿐 아니라 탱자나무 가시에 무궁화를 뒤집어 끼워 바람개비를 만들었던 기억도 나고, 산죽(이곳에선 설대, 서너대라고도 합니다) 잎을 잘라 개울에서 물레방아를 만들었던 일도 생각이 나는군요.

그런 추억들은 가슴 속에 묻어두기엔 너무나 아깝습니다.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래도 집 앞 논에서 논고동이 잡힌다니 반디불이가 우리 동네로 돌아올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가져봅니다. 내년에는 아이와 함께 호박초롱을 만들어 볼 수 있겠지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