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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동두천시에 위치한 유흥업소를 방문한 경찰들이 외국인 윤락업소 종업원들의 인권유린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지난 16일 동두천시에 위치한 유흥업소를 방문한 경찰들이 외국인 윤락업소 종업원들의 인권유린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 임경환
"한 달에 48만원 받고요. 사장님이 윤락행위를 강요하거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습니다. 마마(업주)가 너무 잘 해줘서 다른 친구들에게 소개시켜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는 최근 발간된(8월12일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아시아판에서 "쪽방에 감금된 채 매일 수 십 차례의 스트립쇼와 윤락을 강요받는다. 하루 단 3분의 외출이 허락되지만 1분 늦을 때마다 8달러(약 1만원)의 벌금을 문다”고 밝힌 한 필리핀 여성 종업원(18)의 대답과는 대조적이었다.

지난 16일 경찰청 여성청소년과(과장 김강자) 직원들과 인권지킴이 중앙위원회 회원 50여 명이 경기도 동두천시에 있는 미군전용 유흥업소를 '기습단속'했다.

그러나 단속반이 현장에 도착해서 그 곳에서 일하는 외국인여성 종업원들에게 "인권침해가 없었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들은 하나같이 '바른' 대답을 했다. 말이 기습단속이지 이미 경찰이 '손을 써놓은' 상황이었다.

아메리카의 땅, 동두천의 굴레 / 김용남 기자


기자와 경찰들이 업소에 들어오자 외국인 여성 종업원들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무대 위에 올라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기자와 경찰들이 업소에 들어오자 외국인 여성 종업원들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무대 위에 올라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 임경환
유흥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여성 종업원의 인권유린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기자들과 인권지킴이들은 "아무 문제없다"는 그들의 대답에 어리둥절해 했다. '외국인 여성 종업원들에게 인권 유린의 실태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잔뜩 안고 취재를 나온 기자들은 실망하는 눈치였다.

경찰과 함께 기습적으로 현장을 덮쳐 기지촌 유흥업소의 매매춘 행위를 카메라에 담아갈 생각으로 따라온 공중파 3사 방송기자들은 일찍 자리를 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이미 예정돼 있었다. 경찰은 <타임>지 보도가 나간 이후 기지촌을 수시로 방문해 단속을 실시했고, 16일 다시 방문할 것이라는 것을 업주들에게 미리 알렸기 때문이다.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에서 V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한 업주는 "이번 주에만 벌써 3번째 왔다 가는 것"이라면서 "지난 번에는 '오늘 다시 방문할 것이니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을 하고 갔다"고 말했다.

"필리핀, 러시아 여성들이 성 노예로 팔리고 있다"

지난 12일에 발간된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 아시아판(http://www.time.com/time/asia)은 "필리핀과 러시아 여성들은 남한 미군기지 근처에 있는 누추한 바와 나이트클럽에서 성적 노예로 팔리고 있다"는 내용의 르포 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다음은 기사의 주요 내용이다.

Rosie Donan(19· 필리핀) 사례= Donan은 1999년 말에 클럽 Y에서 일을 시작했다. 손님들과 단순히 술만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곳인 줄 알고 왔으나 한국에 도착한 후에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클럽 Y의 마담은 여권을 가져가면서 여러 가지를 주문했다.

"술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몸도 팔아야 하고, 처음 세 달 동안은 쉬는 날이 없을 것이다. 외출은 마담과 함께 해야 하며, 통화는 하루에 단 3분. 늦게 돌아오면 분당 8달러를 내야한다."

Donan은 매일 밤 무대 위에서 춤을 춰야 했다. 하루에 8번. 마담은 노래가 끝나기 전에 입고 있는 옷을 모두 벗으라고 협박했다. 며칠 뒤에 마담은 Donan에게 콘돔과 휴지를 주면서 미군 사병과 잠자리를 같이 할 것을 요구했다. Donan이 이를 거부하자, 마담은 "니가 이렇게 하면 이 산업은 망한다"며 Donan을 폭행했다. 결국 그는 10분에 60달러, 30분에 160달러에 몸을 팔아야만 했다.

문화 관광부의 무지(?) = camptown(기지촌)의 소유주들을 총감독하는 문화관광부는 이같은 사실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말한다. 문화관광부 국민관광과 최병구 서기관은 "그 술집들은 관광객들을 위한 술집이다. 그들이 어떻게 술집을 운영하는 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대답했다. 이에 대해 동두천 상황을 조사하고 있는 RMIT 대학의 한 조사자는 "그들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매춘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이 이 문제에 대해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 임경환 기자
경찰의 공개방문을 이미 알고 있었던 업주들은 만반의 준비를 다 해 놓고 기자들과 인권지킴이 위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외국인 종업원들의 숙소는 깨끗이 정리돼 있었고 창문에 설치돼 있던 쇠창살은 이미 뜯어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지난 번 경찰이 단속 나왔을 때 개밥(?) 한 그릇만 놓여있던 냉장고에는 냉동고기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물론 여종업원들의 생생한 증언도 들을 수 없었다. 여종업원들은 업주들에게 철저하게 교육을 받은 듯 하나같이 똑같은 답변만을 쏟아냈다.

"매매춘 행위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근무시간은 오후 6시부터 밤 12시까지입니다. 계약기간은 6개월이고, 일주일에 한번은 쉽니다. 월급은 프로모션에서 받고 돈은 제가 관리합니다."

심지어 한 필리핀 여성 종업원(23)은 "여기 마마(업주)가 너무 잘해줘서 고국에 돌아가면 다른 친구들에게 이 업소를 소개시켜 주고 싶을 정도"라며 찬사도 아끼지 않았다.

동두천시 유흥업소 사찰을 마친 뒤 가진 브리핑 자리에서 김강자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은 " 여러분은 직접 현장을 보면서 <타임>지나 폭스 TV가 보도한 것처럼 이 지역에서 그렇게 심각한 인권유린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라면서 "외국언론이 일부 악덕 업주가 저지른 잘못을 전체가 다 그런 것처럼 과장해서 보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외국 여성 종업원 숙소 담장 위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외국 여성 종업원 숙소 담장 위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 임경환
김 과장은 이어 "며칠 전에 방문했을 때만 해도 외국 여성들의 숙소 창문에는 쇠창살이 붙어 있었고 냉장고에는 '개밥' 한 그릇 만이 놓여 있을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는데, 경찰들이 단속을 자주 나와서 이만큼 변하게 된 것"이라면서 "가끔씩 기자들과 함께 단속을 나오면 업주들이 상당한 부담을 느껴 환경 개선을 하려는 의지를 보인다"고 덧붙였다.

결국 김 과장이 기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진실'은 외국 언론에 의해 보도된 모습은 실제 모습과는 달리 과장된 측면이 있고, 윤락 여성들의 인권 유린은 경찰의 강력한 단속으로 예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 여성 종업들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출입구
외국인 여성 종업들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출입구 ⓒ 임경환
이날 경찰의 '기습단속' 전과정을 함께 취재했던 모 일간지 기자는 "정작 기지촌 여성의 인권유린 실태가 기사거리가 아니라 기습단속으로 꾸며 다수의 기자를 동행시킨 김강자 과장의 '언론플레이'가 기사거리"라며 김 과장의 태도를 비난했다.

또다른 한 기자 역시 "이런 식으로 포장된 모습을 언론에 공개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라며 "아직도 우리 경찰에 사회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자신의 성과를 부각시키려고 하는 나쁜 버릇이 잔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경찰의 공개 방문에도 불구하고 업주들이 미처 가리지 못한 '어두운 구석'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외국인 여성 종업원 숙소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그들은 좁은 계단 통로를 거쳐 오르내리는 2평 남짓한 방에서 3-4명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각 방에는 전화기는 물론 TV도 찾아볼 수 없었고 침대와 화장대만이 놓여 있었다.

또한 숙소 밖에는 종업원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담장 위에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일부 숙소 건물은 밖에서 출입문을 잠그면 안에서 나갈 수 없는 구조로 돼 있었고, 하나 밖에 없는 출입구마저도 미로같은 건물 내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현장에 동행한 한 인권지킴이 "과거 윤락가에서 발생한 사고를 감안해 볼 경우 자칫 화재라도 발생하면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며 "당국이 좀더 세밀한 조사와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외국여성 종업원 숙소에서는 전기줄이 밖으로 나오는 등의 위험한 장면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외국여성 종업원 숙소에서는 전기줄이 밖으로 나오는 등의 위험한 장면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 임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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