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른 쪽 의 고무 바킹을 구하려면 수도 부품 세트를 바킹값보다 60배를 주고 사야한다
오른 쪽 의 고무 바킹을 구하려면 수도 부품 세트를 바킹값보다 60배를 주고 사야한다 ⓒ 황종원
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화장실 세면대 밑 하수도로 흘러 내렸다. 그 한 방울을 모으려고 대야를 놓았다. 깜박 잊고 있다가 돌아보니 물이 가득하다.

물위에 퐁퐁 물이 내려앉는 소리가 신경 쓰인다. 밤새 그 노릇이었다. 아파트가 20여 년 되었으니 이런 일은 한 두 번은 아니었다. 걱정을 할 일은 아니었다. 보수 집에 가서 세면기용 고무 바킹 하나만 구하면 내가 쉽게 할 수 있다. 한때 보수 집주인과 낯이 익었을 때
"돈은 무슨 돈. 그냥 가져가세요"하던 시절도 있었다.

아침 10시 반이면 집 앞 바로 있는 큰 상가의 문이 열린다. 1000원짜리 한 장과 500원짜리 동전 한 개와 100원짜리 5개, 2000원을 챙겨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나는 부듯한 느낌이었다. 너무 많은가.

요즘은 집안의 가벼운 설비를 고치는 가게는 이름조차 '무슨 인테리어'라고 바꾸었다. 보수에서 영업 활동의 범위가 넓어 진 것이다.

인테리어 집에 가서 "고무 바킹 하나 사러 왔어요" 하기는 자신감이 서지를 않았다. 이런 집에서는 수도가랑을 바꾸러 왔다 하고 말해야 반가워할 것 같다.

여느 때 형광등 하나라도 사러 들르던 가게였다. 때로는 트렁크의 작은 자물쇠를 구해볼까 기웃대던 가게이기도 했다. 늘 그렇듯 주인이 없다. 인테리어 일이 많은가 보다. 오래된 아파트라 고치는 집이 많아서 주인은 자리에 잘 없다. 이웃 상인이 내게 말한다.

" 아직 안 나왔어요. "

우리 동네는 아파트촌이다. 우성 아파트니 신동아 아파트니 하는 단지마다 작은 상가들이 또 있다. 우성 상가를 갔다. 15일까지 휴가라는 쪽지가 보수 가게 허름한 문짝에 매달려 있다. 좋은 세상이다. 새벽부터 밤까지 설이나 추석 명절 빼고는 늘 문을 열던 가게들이 이제 놀 일을 다 찾아서 논다. 신동아 상가에 간다. 작은 보수 집에는 아줌마가 가게를 지키고 있다.

" 요즘은 그건 것이 안 나와요. "

이때쯤 나는 조조해지기 시작하였다. 머리통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였다. 가게 집의 말투로 보아서는 망가진 고무 바킹을 교체하려면 수도 가랑을 통째로 갈아야 될 판인 듯한 눈치가 보이고, 그렇게 단순한 일도 보수 가게 사람이 와서 기술을 부리는 척 하며 인건비를 받는 느낌을 받았다.

한때는 흔했던 물건이 이었다, 그 동안 아파트들은 더 낡아져서 고무 바킹은 집집마다 더 필요할 것이었다. 나는 이제 사태가 간단하지 않다고 느꼈다. 주위 상가는 다 돌았다. 이제 갈 곳은 두 군데였다. 단독 주택 동네 철물점이나 다른 낡은 아파트 단지의 상가나.

그래, 주공 단지로 가보자. 10여분 거리에 주공 아파트가 있다. 단지 내 상가 지하에 보수 집, 아니 인테리어 집이다. 보수 가게에서 보이는 전기 줄, 안테나, 수도 가랑이. 형광등 같은 전등 류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잘못 들어왔나? 가게에는 아줌마가 있다. 내가 물었다.
" 화장실 세면기 아래 물을 여닫는 부분에 들어가는 고무바킹 있습니까?"당연히 있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2∼3년 전만 해도.

" 요즘은 안 나와요. "
" 그럼 수도가 새면 손놓고 있어야겠네요?"
" 바킹만은 안 나오고 이런 게 나와요."
가게 집 아줌마는 내게 주택의 수도 선에서 가랑이로 연결되는 연결 부분을 보여준다.

" 바킹 하나 만을 바꾸면 되는데 이것을 통째로 바꿔야 한다고요?"
"요새는 그래요. "
" 얼마입니까? "
"3천원"

나는 아차 싶었다. 바킹을 구할 수 없으니 이것이라도 챙겨가야 한다. 2000원을 들고 부듯하였던 나는 심한 상실감을 느꼈다. 갑자기 무일푼이 된 기분이었다. 속은 기분이기도 하였다. 공구 하나로 바로 교환되는 바킹을 제품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팔아먹는 상인 근성이 순간적으로 진절머리가 났다. 나는 천원이 없어서 왔던 걸음을 다시 가야 했다.

나중에 나는 돈 천원을 더 들고 3천원을 주고 수도 연결 부분을 샀다. 고무 바킹 하나를 빼서 낡은 것을 바꾸니 뚝뚝 떨어지던 수돗물이 '동작 그만'을 하였다.

50원이면 될 것이 60배를 들여서 바꾸었다. 이런 일이 수없이 지천에 깔린 일이다. 자동차의 경우, 백미러의 유리가 깨지면 백미러를 통째로 갈아야 한다던 지. 형광등이 깜빡 이면서 불이 제대로 안 들어오면 초크 전구를 갈거나 드라이버로 조여주면 될 일을 통째로 바꾸게 한다던 지.

내가 내 손으로 내 집의 수도를 고치려 해도 바가지를 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래서 가게 집 주인도 낯익은 얼굴이니, 정답게 바킹 하나를 그냥 주던 그 시절이 다시 그리워진다. 바킹 하나를 거저 받아 가면 나는 무슨 일이 있으면 다시 그 집 물건을 사러 가곤 했던 그 시절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