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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김은정 ⓒ 서석원
<몽환>은 우리나라 현대춤의 새로운 흐름을 엿볼 수 있는 공연이었으며,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에게는 무용수들의 거친 호흡과 튀는 땀방울을 코 앞에서 목격하게 되는, 낯설지만 신선한 '컨템퍼러리(Contemporary; 현대적인 무용을 말함...편집자주)'의 참맛을 느끼게 해 준 드물게 만나는 공연이었다. 다만 몇몇 관객들은 공연을 난해하게 느꼈는지 당혹스런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공연은 지난 8월 9일부터 11일까지 펼쳐졌고, 필자가 공연장을 찾은 11일은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손을 잡고 온 꼬마부터 벽안의 외국인까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공연장 좌석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이날 공연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몽환>과 <2833의 멍> 두 작품. <몽환>은 2001년 신촌 몽환 클럽 오프닝 공연으로 출발, 그 이후 <바람 아래 몽환> <꽃몽환> 등 짧은 사랑 이야기 연작으로 발전해 온 작품이며, <2833의 멍>은 즉흥적인 움직임이라는 댄스팩토리 온앤옵의 색깔이 그대로 투영되어 만들어진 작품이다.

<몽환>이 판소리(서정민) 및 아쟁연주(이화연)와 어우러진 다분히 '한국적'인 색채의 절제미가 돋보인 작품이라면, <2833의 멍>은 금속성이 주를 이루는 음악(알프레드 하스)과 어우러진 파워풀한 에너지가 돋보이는 '전위적'인 색채의 작품이다.

물론, 이처럼 두 작품의 색깔을 단정짓는다는 것 자체에 무리가 있다. 그들의 몸짓에는, 그들의 춤에는 일도양단식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의미들이 숨어 있고, 또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한창호
한창호 ⓒ 서석원
시종일관 돗자리 위에서 펼쳐지는 <몽환>은 사랑을 모티브로 한 여인의 백일몽을 그린 작품이다. 슬픈 애조의 아쟁 소리, 판소리 '사랑가'가 주거니 받거니 흐르는 가운데, 두 무용수는 얽히고 섥히면서 사랑의 고통을 처절한 몸부림으로 보여준다. 마치 태초의 사랑은 아픔으로부터 비롯됐다고 이야기하듯 두 무용수의 꿈꾸는 듯한 표정에는 아픔이 묻어 있고 이야기하듯 주고받는 두 무용수의 몸짓에 팽팽한 긴장감이 서려 있다. <몽환>은 뒤엉킨 운명의 실타래를 푸는 한 판 씻김굿 같은 작품이다.

짐승의 것인지, 사람의 것인지 모를 그로테스크한 소리에 반응하며, 거칠게 꿈틀거리고 아파하면서도 도약을 꿈꾸는 남자의 독백으로부터 시작하는 <2833의 멍>은 제목 그대로 28살 남자와 33살 여자의 '소통'을 그린 작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두 무용수의 표정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으며,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상대를 뿌리치고 상처를 주는 감정의 부딪힘이 격렬한 몸짓으로 파도처럼 몰아치듯 표현된다. 벼랑 끝에서 주체할 수 없는 고통과 몸부림의 흔적인 서로의 멍을 느끼면서, 두 남녀의 언어는 조금씩 서로를 닮아간다. 현대인의 소외와 소통의 불가해함을 강렬한 육체언어로 다룬 작품.

두 작품 모두, 김은정이 안무했다.

댄스팩토리 온앤옵은 김은정과 한창호 두 사람으로 이루어졌으며, 동대문구 휘경동에 '춤공장'을 마련, 그들만의 독특한 색깔을 빚어내고 있는 독립적인 '댄스 컴퍼니'다.

2001년 3월 창단됐으며 춘천국제마임축제, 서울프린지페스티벌(구 독립예술제) 등 젊은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해 왔다. <댄스 위드 미> <몽환> <메시지-0> <가출한 두꺼비> <몽정> 등의 작품이 있고, 올 여름에는 독일 글로벌 댄스 페스티벌 'Pre Art Fair Show'에 참가할 예정이기도 하다.

예쁜 춤에 대한 강박을 떨치고, 컨템퍼러리 정신의 진수를 펼쳐 보이고 있는 댄스팩토리 온앤옵의 팀이름 '온앤옵'은 일렉트릭 사이버 시대의 일상의 상징이며, 음과 양, 안과 밖, 위와 아래, 열림과 닫힘, 육신과 영혼 등의 함께 함을 뜻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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