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회주의 폴란드의 상징 문화과학궁전과 사회주의식 동상들
사회주의 폴란드의 상징 문화과학궁전과 사회주의식 동상들 ⓒ 서진석
한마디로 말해서 폴란드 사람들은 사회주의 시절을 더 좋아하고 있다. 그렇게 말하고 마침표 찍고 이 기사를 마쳐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폴란드에서 선거가 한 차례 지난 후 사회주의당이 압승을 거두었다거나, 사회주의 시절로의 귀화를 모토로 내세운 정당이 들어섰다거나 하는 말이 아니다.

리투아니아와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과 구 소련공화국이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로 방향을 바꾼 후 불과 몇 년 안 되어 사회주의정당이 다시 들어서 서방세계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현재 폴란드의 대통령이 과거 사회주의 정당 출신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현 국무총리 레셱 밀레르(Leszek Miller)도 좌익계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정치적인 것들과는 조금 상황이 다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선거가 한 차례 지난 후 한 정당이 압승을 거두었다고 하더라도, 전 국민이 그 당을 지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 것은 뻔하다. 여당이 바로 전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정당이라는 법은 없으므로, 대다수 국민들의 미움을 독차지하는 여당은 이 세상 어디라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섰다는 것이 모든 국민들의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있다는 말과는 다른 것이다.

폴란드 인민공화국이 몰락한 후 13년 후, 폴란드 국립여론조사연구소(OBOP)는 '폴란드 통일노동당(PZPR) 시절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라는 주제로, 국민들에게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번 조사의 결과는 '그 시절이 더 좋다'가 40%, '더 안 좋다'가 35%로 나타나 폴란드인들이 사회주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 것이다.

지난 주 폴란드의 신문과 방송이 이 결과를 논하면서 상당히 시끄러웠다. 이런 조사가 시행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사회주의 정당의 추억이 바닥을 친 것은 민주좌파연합(SLD)와 폴란드인민당(PSL)이 연합정부를 구성했던 1996년으로, 여론조사 대상자 중 60%의 의견이 '더 안 좋다'라는 것이었다.

문화과학궁전 입구에 있는 분수대
문화과학궁전 입구에 있는 분수대 ⓒ 서진석
이번 조사의 질문항목 중 하나인, '만약 과거 사회주의 시절과 현재의 폴란드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르겠냐'는 질문에는 42%가 '현재의 폴란드'를 선택한다고 말했지만, '과거 사회주의 시절'을 택한 사람들은 39%로 치수에서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이 생각하는 사회주의 시절의 동유럽은 물건이 없어서 줄을 길게 늘어서 있는 상점들과, 은빛으로 도금된 레닌동상과 썰렁한 거리, 그리고 자유가 제한된 통제된 생활 등을 떠올리기가 쉽다. 하지만 그 사회주의 시절을 몸소 경험한, 나이가 좀 지긋한 폴란드 사람들은 우리와는 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일단 그 시절엔 안전했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원만했고(특별한 이익관계가 지금보다 덜하기 때문에), 그러므로 지금보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 더 적었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주의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거나, 개방화된 사회에서 성장한 젊은 세대들은 과거의 사회주의 시절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동유럽이 자유시장경제를 택한 이후, 모든 것이 나아지고 사람들이 행복해졌느냐고 물어보면, 그 대답은 '아니올시다'인 경우가 당연히 많다. 현재 20%를 넘어서고 있는 실업률과, 폴란드 전반에 몰아닥친 구조조정의 여파로 새로운 시장경제에 대응하지 못한 회사들은 문을 닫는 것이 일수이다.

막강한 자본력으로 무장한 서방의 기업들이 폴란드의 시장을 야금야금 먹어들어가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며, 그만한 경쟁력을 가지지 못한 폴란드업체들은 하나같이 그들의 기세에 기를 펴지 못하며 살고 있다.

사회주의 시절엔 사람들이 전부 다 직업을 가질 수 있었고, 지금처럼 길거리에서 구걸로 연명하는 사람들은 전혀 볼 수 없었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그 여론조사의 결과를 이해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 한번 여론조사에서 나온 것과 비슷한 질문을 한 아주머니에게 던져본 적이 있는데 그 대답이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그게 민주주의건 공산주의건 사람들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난 어떤 거라도 환영이야."

그러나 폴란드의 사회라는 것이 한 사건을 단순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놔둘 정도로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폴란드인들이 그리 동경해 마지 않는 유럽연합으로 가는 길은 요즘 그리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폴란드가 예상대로 2004년에 유럽연합에 가입한다고 하더라고, 서방국가를 자유스럽게 여행하는 것이 당분간 불가능할 것이라고, 브뤼셀은 얼마 전 공식입장을 표명하여 폴란드의 희망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폴란드 사람들은 유럽연합의 가입국을 왕래할 경우 특별히 여권이 없이도 폴란드의 신분증만 가지고 자유롭게 국경을 넘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하곤 했지만, 유럽연합 내무부의 발표에 의하면 '가입 후 당분간은' 독일국경에서 여권검사를 거친 후 국경을 넘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 이야기는 폴란드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더라도 국경에서 세관검사를 기다리는 기나긴 줄은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1995년에 유럽연합에 가입한 스웨덴, 핀란드, 오스트리아의 국민들도 여권검사 없이 국경을 오가는데 상당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것을 따져보면, 폴란드의 경우도 당연히 예외가 아니다. 폴란드가 유럽연합의 회원국이 된 후에 그들에게 노동시장을 개방하느냐도 아직 큰 미지수로 남아 있다.

독일을 지나 폴란드로 들어오자마자 그 경제 수준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것이 바로 도로이다. 속도를 제대로 낼 수 없게 만들 정도로 금이 가고 쪼개진 폴란드의 도로를 보면, 몇 년이 아니라 몇 십년이 지나도 유럽연합 가입국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독일과 프랑스 같은 매끈한 고속도로가 왜 아직도 폴란드에 없느냐고 폴란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 대답은 한결같다.

"그 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처럼 공산주의를 50년이나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시절이 현재 서유럽과 얼마나 격차를 벌려놓았는가 폴란드인들 자신도 절실히 느끼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폴란드는, 다시 그 사회주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에도 실려 있는 글입니다. 

기사내용 중 통계자료는 폴란드 내 일간지를 인용한 것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