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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림에 여러 가지 의미들을 함축해 넣어야 하는 만평과 달리 4컷짜리 연재물은 보통 직설적으로 '할 이야기'를 하기 마련이고, 그 가장 좋은 사례라고 할 <중앙일보>의 '왈순아지매'는 아주 선명하게 자신의 색깔을 드러낸다.

그 색깔은 무엇인가? 그것은 제목이 암시하는 특정 지역색에 기반한 보수층이 갖는(다고 여겨지는) 정서를 그대로 반영한다. 대부분의 나이든 보수층이 그러하듯이 이 만화의 작가 정운경 화백은 그러한 자신의 정서를 드러내는데 조금의 거리낌이 없으며, 이는 공적이어야 할 신문지면에 사적 감정을 분출하는 문제를 낳는다.

▲ 왈순아지매 8월6일자 만평
그러한 좋은 사례가 오늘(8월6일)자 만평이다.

이 만평은 민주당의 병풍의혹 제기가 5년 전의 재탕이라 식상하다며 의혹제기를 마땅찮게 보는 보수층(내지는 한나라당 지지자)의 시각을 그대로 반영한다. 여기서 이 문제제기가 과연 식상한 것인가에 대해 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문제는 그가 5년 전도 아닌 불과 열흘전의 만평을 재탕해 먹는 자기모순을 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왈순아지매 7월 26일자 만평
7월 26일자 만평이다. 약간의 내용상 '다름' 보다는 소재나 이야기의 '같음'이 훨씬 두드러짐은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불과 열흘 사이에 자기모순을 범해가면서까지 같은 이야기를 재탕하는 것에서 이른바 기득권층이 이 문제에 대해 느끼는 불안함을 역설적으로 읽을 수 있다.

정운경의 만화는 '50대 이상', '특정지역', '남성'들이 가장 선호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그대로 지면에 옮긴 것에 다름 아니다. 중앙 일간지 만화로는 유일하게 제목에 남자가 아닌 여성의 이름이 들어가는 파격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의 주인공은 왈순 아지매의 남편과 그 직장동료이다.(왈순 아지매는 직장동료보다도 출연빈도가 낮다.)

어쩌다 출연하는 왈순 아지매는 항상 집 담 너머로 동네 아주머니들과 '카더라' 방송을 전파하지 않으면 집안에서 방바닥을 닦고 있는 전형적인 '60년대식' 여성이다. 물론 그의 남편은 거의 예외 없이 방을 닦고 있는 그녀 옆에서 TV를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서 나는 상당 기간동안 왈순 아지매가 아내가 아닌 식모인 줄만 알았다.

▲ 왈순아지매 7월 27일자 만평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어김없이 현 정부와 특정 대선 후보에 대한 비방과 이죽거림이다. 특히 정운경은 햇볕정책에 대해 극단적이라고 할 알레르기를 보인다.

지난 7월 '왈순아지매' 중 위에서 말한 주제를 벗어난 것은 단 두 번에 그쳤다. 그 하나는 한 대선 후보에게 딱지를 끊은 경찰을 칭찬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대선 후보에게 서울시장이 처신을 제대로 못해서 혼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두 만평은 진정 그 칭찬이나 비난이 돌아가야 할 두 대선 후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것은 정운경이 싫어하는 후보를 칭찬하고 싶지도, 선호하는 후보를 비난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말하자면 <중앙일보>의 조갑제라고 할 만하다.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이 그 주장의 과격성에 관해서는 김대중씨나 류근일씨의 추종을 불허하면서도 비난받기보다 무시당하고 조롱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김대중이나 류근일처럼 자신의 생각을 교묘하게 양비론에 감추는 잔재주를 거부하고, 직설로 일관하는 순진함을 보이기 때문이다.

정운경의 '왈순아지매'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른 수구신문들의 만평이 적당히 양비론적 시각을 가장해 가면서 특정 대상을 비난하는 반면, 그의 만화는 너무나 솔직하다. 그래서 그의 만평에는 이런 분석보다는 그저 한 번 픽 웃어주는 것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것이 이른바 한국의 '빅3 신문'에 매일 실리는 만화라는 점에서 그 지면의 사유화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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