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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현장에는 두 여중생의 넋을 기리기 위해 추모 나무가 심어졌다
사고현장에는 두 여중생의 넋을 기리기 위해 추모 나무가 심어졌다 ⓒ 자통협
지난 2일 오후 3시께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 2리.
지난 6월 미군 장갑차에 의해 희생된 고 신효순(14)과 심미선(14)양의 넋이 서려있는 사고현장에 한 그루의 나무가 심어졌다.

부산, 춘천 등 전국각지에서 올라온 대학생과 사회단체 회원 70여명으로 구성된 '미군 장갑차 압사 사건 희생 고 신효순·심미선 양 추모순례단'이 이들 두 여중생의 안타까운 죽음에 명복을 빌기 위해 소나무 종류의 '주목'이라고 불리는 나무를 심었다. 이들은 이어서 그들 자신이 두 여중생에게 보내는 추모의 편지 수십여통을 담은 유리함도 함께 놓여졌다.

추모순례단에 참가하기 위해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윤석민(25)씨는 "여중생 사고와 관련해서 집회에 서너번 참가한 적은 있지만 현장을 와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유족들을 만나고 직접 사고 현장을 걸어보니 사진으로 볼 때보다 훨씬 더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이날 추모행렬단은 지난 6월 13일 효순이와 미선이가 걸었던 길을 되밟았다.
이날 추모행렬단은 지난 6월 13일 효순이와 미선이가 걸었던 길을 되밟았다. ⓒ 자통협
이날 추모순례단의 행렬은 아침 10시 서울서부터 시작됐다. 서울 지하철 1호선 남영역에서 모인 순례단이 두 여중생의 유족들이 살고 있는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마을회관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께.

뜻하지 않은 순례단의 방문에 고 신효순양의 어머니 등 유가족들은 연신 '찾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눈물을 흘렸다. 자식잃은 슬픔이 그들의 얼굴에 여전했다.

고 신효순양 어머니 전명자(41)씨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효순이의 빈자리가 더욱 커져간다"면서 "최근에는 효순이 생각에 밤잠을 설치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고 심미선 양 이모부이면서 사고 최초 목격자인 홍기식씨도 "아침에 밭으로 일하러 나가기 위해서는 (그곳이) 사고현장에 옆에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나쳐야 한다"면서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죽은 아이들이 떠오른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 "그곳(사고현장)을 지나칠 때마다 왜 내가 장갑차에 깔려 죽은 아이들을 목격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면서 "다른 곳으로 이사라도 가, 그날의 아픈 기억을 잊을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고 신효순양 아버지 신현수씨는 아직 자식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고 신효순양 아버지 신현수씨는 아직 자식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 자통협
고 신효순양 아버지 신현수(49)씨는 "자식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아비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면서 "효순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 개정이 꼭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을회관에서 이들 유가족 등을 만난 순례단 일행은 이어 사고 당일 효순이와 미선이가 걸었던 길을 다시 밟아가는 추모순례를 시작했다.

지난 6월 13일 오전 10시께, 두 여학생이 친구생일 파티에 가기 위해 걸었던 56번 지방도로는 언제 그같은 사고가 있었냐는듯이 그대로였다. 사고 이후 사람들이 다니기 위한 갓길 확장의 요구도 두달이 지났지만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 도로를 걸어가기 위해서는 여전히 0.5m도 안 되는 갓길로 걸어야 한다.

순례행렬에 참가한 시민과 사회단체 회원들도 덩치 큰 시외버스가 도로를 지나갈 때면 버스를 피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갓길에서 더 들어간 풀섶 쪽으로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오후 3시께 사고현장에 도착한 이들 순례단원들은 이후 추모 묵념과 헌화, 추모 나무 심기 그리고 '효순이와 미선이게 보내는 추모 편지' 봉정 등의 추모행사를 가졌다.

추모순례단은 오후 5시경 캠프하우즈에 방문해 '형사재판관할권 반환'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추모순례단은 오후 5시경 캠프하우즈에 방문해 '형사재판관할권 반환'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 자통협
사고 현장 답사를 마친 회원들은 경기도 파주시의 미 2사단 캠프하우즈로 이동했다. 미군 장갑차에 의해 희생된 두 여중생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항의를 표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들 순례단이 도착하기 전부터 경찰 병력은 부대 정문을 비롯해 주변을 철통같이 막고 있었다.

이번 추모순례 행사를 기획한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www.jatong.org) 서경원 상임고문은 "이번 행사를 통해 두 여중생의 억울한 죽음이 좀더 널리 알려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면서 "그들의 죽음이 단순한 '그들만의 죽음'에 그치지 않고 반미운동의 시발점이 되는 '역사적인 죽음'으로 승화되도록 함께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참석자들은 오후 5시께 'Revise SOFA(소파 개정), Give up Jurisdiction(형사재판관할권 포기)' 문구가 적힌 수십여장의 종이비행기를 부대 담장 너머로 날려보내기도 했다.

순례단은 'Revise SOFA(소파 개정), Give up Jurisdiction(형사재판관할권 포기)'라는 글자가 적힌 종이비행기를 미군 부대 담장 너머로 날려 보냈다.
순례단은 'Revise SOFA(소파 개정), Give up Jurisdiction(형사재판관할권 포기)'라는 글자가 적힌 종이비행기를 미군 부대 담장 너머로 날려 보냈다. ⓒ 자통협
윤석민(25)씨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소녀를 강간살인한 미군을 법정에 세우기 위해 10만 명의 일본 국민들이 들고일어나 형사재판관련조항을 개정한 사례가 있다"면서 "지난 월드컵 때 국민들이 보였던 힘을 '여중생 사망사건'에도 보인다면 소파개정 뿐만 아니라 부시의 공개사과까지도 받아낼 수 있을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날 추모순례는 장대같이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진행됐다. 이날 비는 마치 억울하게 죽은 두 여중생이 하늘에서 뿌려댄 눈물인 양 예상치 못한 것이었지만 추모행사가 진행되자 비가 갑자기 그쳤다. 순례단의 추모행사가 모두 끝마친 이후에는 두 여중생의 억울한 넋을 달래주기라도 했는지 이상할 만큼 하늘이 맑게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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