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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는 '정(鄭) 부인', 지는 '경기도 힐러리'?
정몽준 의원 부인 김영명씨·이인제 의원 부인 김은숙씨


요즘 정가의 관심은 온통 정몽준 의원(무소속)의 행보에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노무현-이회창-정몽준 3자대결시 정 의원이 노무현 후보를 오차범위에서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정풍이 상륙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처럼 정 의원이 월드컵 직후 대선주자로 급부상하면서 그의 부인에 대한 관심도 고조될 전망이다. 김영명씨는 이미 정 의원과 함께 월드컵 유치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알고 보면 월드컵 공동개최의 숨은 공로자인 셈이다.

김영명씨, 외교가 출신으로 정몽준의 '외교인맥 쌓기' 도움

▲ 정몽준 의원의 부인인 김영명씨.
정 의원의 부인 김씨는 외교가 출신. 그는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2남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부친의 외교관 활동 때문에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미국와 일본 등 외국에 나가 살았다. 정 의원에 따르면 "17년을 외국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에 능통하다는 점은 그의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김씨가 정 의원을 만난 것은 78년 여름. 정 의원의 형수가 '중매인'으로 나섰다. 당시 정 의원은 MIT 경영대학원생(석사과정)이었고, 그는 웨슬리대학 정치학도였다. 여름방학 때 잠시 귀국해서 처음 만났다가 1년간의 열애 끝에 정동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외교관의 딸이나 재벌가의 며느리답지 않게 '소박하고 편안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한 월간지는 그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김영명씨는 미인인 데다 사교성도 좋다. 170cm가 넘은 훤칠한 키에 정감 가는 외모는 만나는 사람에게 호감을 준다. 외교관이었던 친정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사교성도 뛰어나다. 세련된 매너, 시원시원한 말투가 상대를 편안하게 한다. 그녀는 88년 서울 올림픽 유치운동 때는 시아버지인 정주영 명예회장을 따라다니기도 했고, 시아버지가 92년 대통령후보로 나서자 병중에 있는 시어머니를 대신해 공식 파트너의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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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정 의원이 '외교인맥'을 쌓은 데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해왔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그는 월드컵 유치활동을 통해 국제 축구계 인사들의 부인들과 돈독한 친분을 쌓았다. 특히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해 모임에서 남편보다 오히려 인기가 더 높았고 부인들로부터 '미스스마일 월드컵'이라는 애칭도 얻었다"고 한다. 정 의원이 한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얘기다.

"아내는 외국에서 17년을 살고 한국에서 23년을 살았다. 그래서는 나는 아내를 '코리안-아메리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내는 국제축구연맹 집행위원들 부부와 함께 식사를 할 때 화제를 이끌며 어색한 순간이 없게 잘 대처했어요. 무작정 표를 달라고 조르는 것보다 훨씬 부드러운 방법이었다."

김씨의 '외교내조'가 월드컵 개최뿐만 아니라 'MJ(정몽준 의원의 영문이니셜)외교'에 상당한 도움이 됐다는 얘기다. 그런데 정 의원은 언젠가 김씨의 근황을 묻는 질문에 "아내는 공인으로서의 생활을 의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며 "남들이 그르다고 생각하더라도 누가 와서 애들 사진 찍는 걸 싫어한다"고 말한 적이 있어 '적극적 대외활동파'는 아님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그는 현재 정 의원과의 사이에서 2남2녀를 두고 있는데 막내는 정 의원이 40대 중반에 낳은 늦동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테니스를 즐겨 친다고 한다.

김은숙씨, '경기도 힐러리'에서 '한국의 힐러리'로 비상할까?

▲ 이인제 의원의 부인인 김은숙씨.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이인제 의원의 부인인 김은숙(54)씨 또한 올초까지만 해도 유력한 퍼스트레이디 후보였다. 하지만 이 의원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풍'에 밀려 중도 사퇴하는 바람에 '경기도 힐러리'에서 '한국의 힐러리'로 신분상승할 수 있는 기회가 일단 막혔다.

하지만 이 의원의 행보 하나하나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고 언론에서는 아직도 그를 잠정적이긴 하지만 대선주자군으로 분류해놓고 있다. 김씨 또한 예비 퍼스트 레이디 중에서 한인옥씨 다음으로 인지도가 높다.

김씨는 1949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대전여고와 공주교대, 동국대 교육대학원(미술교육)을 졸업했고 3년간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 의원과는 중학교 때 학생회장단 모임에서 처음 만나 그가 군대가기 10일 전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진작부터 이인제 의원의 선거참모이자 운동원으로 활약해왔다. 특히 이 의원이 경기도지사로 재직할 때 활발한 대외활동으로 '경기도의 힐러리'로 통했다. 도청 간부 부인들을 대동하고 행사장에 다닌다는 등의 구설수에 오르면서 "여자가 너무 설친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심지어 97년 대선 당시 신한국당 탈당과 2002년 민주당 경선 중도포기 등도 부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97년 대선 당시 이 의원측은 "서울대, 이화여대 출신 등이 주도하는 특권층 부인 중심의 여성 사교계에서 공주교대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를 지낸 '시골뜨기' 김씨의 부상을 질시한 나머지 오해를 부풀렸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소문들이 나돌았는데 김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해명한 바 있다.

"내가 전직 대통령 부인인 모 여사보다 더하다, 사찰에 갈 때 선글라스를 끼고 간다, 사우나탕에서 나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노인에게 침을 뱉었다 등 소문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사우나탕에 갈 시간조차 없는 나에게 도대체 이런 말들이 무슨 소리인가. 또 그분이 바깥일을 결정할 때 항상 혼자 결단을 내린다. 저도 가급적 결단의 순간에는 거리를 둔다. 내가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는 때는 그 뒤다. 어떤 사안에 대해 결정하면 나는 그분의 결정을 존중하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범위 안에서 적극적으로 돕는다."

김씨가 퍼스트레이디가 됐을 때 가장 중점을 두고 싶은 분야로 육아와 교육문제를 꼽은 적이 있다. 역시 교사 출신의 안목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점점 늘어나는 일 가진 여성들을 위해 탁아문제에 관한 일을 하고 싶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교육을 맡고 있는 보육교사의 수준 향상을 위해 애쓰고 싶다. 즉 탁아시설과 교사들의 질을 높이는 일을 제도적으로 지원해주고 싶은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육아·탁아문제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그가 올해 청와대 안주인으로 들어가기에는 매우 어려운 처지다. 일단 퍼스트레이디 도전의 꿈은 남편인 이인제 의원이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느냐에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난 7월 4일 '서비스 대통령'을 내걸고 대선출마를 선언한 서상록씨의 부인 하명자(60)씨도 예비 퍼스트레이디군에 합류했다. 하씨는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잠시 일본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재일교포 사업가의 딸로 유복하게 자란 그는 숙명여대(가정학과) 시절 서씨를 만나 장인의 반대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결혼생활을 시작해 사회활동 경력이 거의 없다. 다만 서씨가 7대 총선과 미 하원선거(3회)에 출마했을 때 남편의 선거운동을 도운 적은 있다. 그래도 '정치바람'을 쐰 것이다. 서씨는 "아내는 조용하게 사는 게 꿈이었던 사람"이라며 "나 때문에 그렇지 못해 그 꿈을 이제는 포기했다"고 말했다.



세계의 퍼스트레이디…재클린에서 힐러리까지

▲ 존 F. 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의 부인인 재클린 케네디(가운데). ⓒ 연합뉴스
일반적으로 '퍼스트레이디'하면 사람들은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를 떠올릴 것이다. 그레이스 켈리와 함께 '미국의 영원한 연인'으로 추앙받던 재클린은 사교계의 여왕으로 화려하고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퍼스트레이디다.

그러나 재클린형 퍼스트레이디는 이제 '기억 속에서만'이다. 이젠 대중도, 퍼스트레이디의 남편도, 그리고 자신조차도, 패션을 주도하고 사교계를 주름잡는 20세기형 퍼스트레이디는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이제 퍼스트레이디는 안방을 벗어나 제1의 '킹 메이커'로, 그리고 정치 지도자로 떠오르고 있다.

재클린형에서 힐러리형으로

21세기 세계인에게 변화한 퍼스트레이디의 모습을 가장 강하게 각인시킨 인물은 누구일까. 아마도 힐러리 클린턴이 아닐까 싶다. 클린턴에게 가장 큰 정치적 힘이 됐던 힐러리. 그는 남편을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르게한 능력가다. "한 개 값에 두 개를 가져가라." 1992년 미 대선 당시 클린턴이 국민들에게 내세웠던 구호도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힐러리의 진보적인 정치성향은 클린턴을 뛰어넘기도 했다. 먼저 프로포즈를 한 것도 힐러리. 그는 예일법대 시절 자신의 선배로 알게된 빌 클린턴에게 한 눈에 반해 첫사랑을 버리고 빌을 '선택'한다.

물론 빌의 정치적 장래성까지 내다본 결정이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결혼하고 나서 힐러리는 오랫동안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고 원래 자신의 성을 쓰기도 했다. 이후 예일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명망있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며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정치적·사회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곧 힐러리 자신에 대한 투자이기도 했다. 빌 클린턴의 재임 시절, 클린턴 대통령이 누린 인기의 반은 '힐러리의 몫'이었고 이는 힐러리가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기 위한 훌륭한 발판이 될 것이다.

힐러리는 이제 막 상원의원으로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르윈스키 파동 등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현명하게 넘기게 해준 힐러리에 대한 고마움을 빌은 정치적 내조로서 기꺼이 갚을 준비가 돼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힐러리와 빌은 좋은 부부라기 보다 훌륭한 '팀'이라 일컬어진다.

▲ 왼쪽부터 핀란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타르야 할로넨,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의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의 부인인 셰리 블레어. ⓒ 연합뉴스
영국의 진보여성정책을 이끈다, 셰리 블레어

힐러리만큼 진보적인 성향의 퍼스트레이디로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의 부인 셰리 블레어를 꼽을 수 있다. 셰리는 토니가 총리에 당선되기 전에도 영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셰리는 1996년 '영국변호사협회가 뽑은 올해의 변호사'에 선정될 정도로 능력있는 변호사다.

토니보다도 좌파적인 그의 정치적 성향은 때론 남편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했다. 지난 2000년 육아 휴가의 법적 해석을 두고 노동조합총협의회(TUC)에서 "부모에게 새로운 권리를 주는 유럽연합(EU)의 규정이 영국에서는 제대로 실시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

이후 TUC가 이 문제에 대해 토니가 이끄는 노동당 정부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혀 남편과 정치적으로 대립하게 됐다. 그러나 이후 결국 토니는 남성들이 육아를 위해 휴직을 할 경우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정부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안에 동의했다. 셰리의 정치적 진보성이 영국의 여성노동관련 정책에 긍정적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아내로서가 아닌 진정한 여성지도자로, 핀란드 할로넨 대통령

아내의 입장으로서가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 '퍼스트레이디', 여성 지도자도 있다. 이제까지 등장한 여성 정치지도자 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인물은 단연 핀란드의 타리야 할로넨 대통령이다. 그는 헬싱키의 노동자 거주지역에서 태어나 총리비서직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진보정당인 사민당 출신으로 시의원, 국회의원 등을 거치고 각부의 장관을 역임한 뒤 외무부장관 재임 중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가 밟아온 정치적 행보를 보면 남성과 다를 바 없는 전형적인 자력형이다. 선거공약의 골자는 '인권 및 소수집단의 권리옹호'와 '복지국가유지'. 국회의원 재직 시절 사회복지와 남녀평등에 관련된 정부요직을 거친 경험을 염두에 두면 소수자의 인권과 여성의 권리를 주장해온 할로넨이 핀란드 여권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내조형 퍼스트레이디 … 휠체어를 탄 대만의 '우수전'

▲ 대만의 퍼스트레이디 우수전. ⓒ 연합뉴스
힐러리 클린턴이나 셰리 블레어와는 달리 묵묵히 남편의 뒤에서 뒷바라지해온 내조형 킹 메이커 퍼스트레이디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대만의 우수전과 미국의 로라 부시.

우수전은 50여 년에 걸친 국민당의 장기 집권을 종식시킨 천수이볜 대만 총통의 아내다. 박빙의 선거전에서 국민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심어준 건 바로 휠체어를 탄 우수전의 모습이었다. 그는 1985년 천수이볜이 현장 선거에 나섰을 때 남편을 대신해 정치적 테러에 희생돼 머리를 제외한 온몸의 감각을 잃어버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비극적인 사고를 당했지만 그 고난을 극복하고 마침내 퍼스트레이디의 자리에까지 올라 세계인의 관심을 받았다. 부자집 고명딸로 태어나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난한 천수이볜과 결혼해 민주화 운동 시절의 어려움을 같이 극복해낸 우수전의 이야기는 총통선거에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는 곧 표심이 돼 남편의 당선에 큰 몫을 했다.

미국의 새로운 퍼스트레이디 로라 부시도 힐러리 클린턴과는 다른 '내조형'이다. 정치적 야망에는 관심이 없고 현모양처의 이미지가 다분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이미지는 한편으론 정치적 전략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남편을 떠받드는 듯한 로라의 모습이 부시를 '강한 대통령'으로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로라 부시를 두고 미국 언론이 "그녀야말로 부시가 갖춘 최대의 비밀병기"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퍼스트레이디 '공석' 또는 '미지'인 경우도

모든 나라에 다 퍼스트레이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고이즈미 총리는 '현재' 아내가 없다. 그는 1978년 자신보다 13살 아래인 모 제약회사 창업자의 손녀와 결혼했다. 그러나 당시 대학생이었던 아내와의 결혼생활은 4년만에 끝났다. 현재는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상태.

고이즈미는 현재로선 재혼에 대해서도 별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혼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결혼하는 에너지가 1이라면 이혼은 그 10배"라며 "그런 고통을 다시는 맛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는 얘기에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퍼스트레이디가 공개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바로 북한이 그렇다. 북한의 퍼스트레이디는 현재 공개석상에서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궁금증을 낳고 있다.

김일성 주석은 생전에 간혹 퍼스트레이디 김성애와 공개석상에 함께 출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버지와는 달리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퍼스트레이디를 '집안에만 매어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과거 영화배우 최은희씨에게 "내 마누라는 집안살림밖에는 할 줄 모른다"고 말했다는 얘기가 전할 뿐이다. /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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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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