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섬진강 하류 전경. 남해 고속도로 섬진강 휴게소 근처에서 바라본 섬진강. 가운데 멀리 보이는 산이 망덕산이고 그 아래가 망덕포구다.
섬진강 하류 전경.남해 고속도로 섬진강 휴게소 근처에서 바라본 섬진강. 가운데 멀리 보이는 산이 망덕산이고 그 아래가 망덕포구다. ⓒ 조경국
섬진강의 마지막 물길이 바다로 휘돌아가는 곳. 망덕포구의 해질 무렵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물 위에 띄워진 전어잡이 배 한 척 없고, 포구 근처에는 더위를 식히기 위해 마실 나온 사람들만 한담을 나누고 있을 뿐이다.

망덕포구의 명물은 전어와 재첩이다.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곳에 서식하는 전어와 재첩은 섬진강과 광양만이 만나는 이곳에서 흔하디 흔하게 잡혔다. 하지만 섬진강 생태계가 파괴돼 지금은 제 철이 아니면 맛보기 힘들다.

전어는 7월에도 수월찮게 잡히는 어종이었으나 지금은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9월초가 되어야 볼 수 있고, 재첩은 씨가 말라 어민들이 종패(어린 재첩)를 사서 뿌려주어야 할 정도가 되었으니 이곳 주민들의 가슴앓이야 오죽하겠는가.

배알도와 광양제철. 우측에 보이는 작은 섬이 배알도이다. 광양제철 건설당시 광양만 준설공사로 인해 섬진강의 하류의 생태계는 해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배알도와 광양제철.우측에 보이는 작은 섬이 배알도이다. 광양제철 건설당시 광양만 준설공사로 인해 섬진강의 하류의 생태계는 해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 조경국
망덕포구에서 배알도 쪽을 바라보니 광양제철이 위용을 뽐내고 있다. 1980년 전두환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후 전 포항제철 회장이었던 박태준씨는 전두환 구데타 세력에 합류해 그가 꿈꾸어 왔던 '제2의 포항제철'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제2제철의 건설 후보지로 아산만이 유력했으나 지질상태가 나빠 광양만으로 급선회하게 된다.

결국 청정해역이었던 이곳에 '제2제철'이 들어서고, 섬진강과 광양만의 환경은 급속한 변화를 겪게 됐다. 박태준씨는 꿈을 이뤘지만 섬진강과 광양만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이곳 주민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힌 셈이다. 지금도 그 상처는 곪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섬진강 재첩이 제일이지"

재첩국집을 경영하고 있는 이선임 씨. 섬진강 하류에서 잡히는 재첩이 해마다 줄어 망덕포구 근처 식당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걱정스러워했다.
재첩국집을 경영하고 있는 이선임 씨.섬진강 하류에서 잡히는 재첩이 해마다 줄어 망덕포구 근처 식당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걱정스러워했다. ⓒ 조경국
"한 십 년 전에는 30키로(kg)에 4만원 정도 했어 요즘은 10만원이 넘지. 그것도 양이 모자랄 땐 해남에서 사와야 한다니까. 그래도 섬진강 재첩이 젤루 좋아"

망덕포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6년 째 청동식당이라는 재첩국집을 하고 있는 이선임(52)씨는 재첩값이 해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고 걱정했다. 예전에는 강으로 나가기만 하면 잡는 일은 예사였는데, 지금은 밀물때면 짠물이 하동철교까지 올라가 망덕포구 인근에서는 재첩이 아니라 바다조개인 백합이 잡힌다며 혀를 끌끌 찼다.

수족관에도 은빛 전어는 없고 삼천포에서 사왔다는 바다장어들만 주인의 눈치를 보며 구석으로 몰려다닌다. 이것저것 시원한 재첩국 한 그릇 밥 말아 뚝딱 비우고 일어서려니 주방에 있던 주인 아저씨가 다가와 이야기 보따리를 푼다.

"예전에는 여기서 부산가는 배도 몇 척도 있었어. 한 40년 되었나. 어렸을 적 나도 타봤는데 하동장날에 맞춰서 부산으로 가곤 했지. 하동장에 모이는 것들은 모두 싣고 다녔거든. 지금은 모두 사라져 버렸지만 그때가 가끔 그립네"
재첩국 백반. 재첩국은 숙취해소에 좋을 뿐 아니라 간 기능을 강화시켜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첩국 백반.재첩국은 숙취해소에 좋을 뿐 아니라 간 기능을 강화시켜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조경국
54년 동안 망덕포구를 떠나 본 일이 없다는 김선화(54)씨의 옛 기억이다. 섬진강에 묻혀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구수하고 감칠맛이 난다.

망덕(望德)인가 망덕(亡德)인가?

망덕포구를 묵묵히 내려보고 있는 망덕산(望德山·197.2m)에 왕후장상의 터가 있다는 소문이 옛부터 자자했다. 명당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는지 망덕산에 묘자리를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았지만 아직도 그곳은 오리무중이란다.

포구 바로 앞에 오목하게 엎드려 있는 배알도(拜謁島)가 망덕산에 대해 신하의 예를 갖추고 있어 망덕산에 명당자리가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명당이란 천운과 지기가 맞아야 하는 법, 예사로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어디 명당이겠는가. 왕후장상이 터라는 것도 모두 사람들의 욕심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포구에 묶여있는 전어잡이 배. 전어는 9월이 되어야 맛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전보다 어획량이 많이 줄었으며, 재첩도 마찬가지다.
포구에 묶여있는 전어잡이 배.전어는 9월이 되어야 맛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전보다 어획량이 많이 줄었으며, 재첩도 마찬가지다. ⓒ 조경국
'망덕(望德)'이라는 지명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니 혹시 '망덕(亡德)'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조선시대만 해도 이곳과 가까운 남해는 절해고도(絶海孤島)의 유배지였고, 귀양가는 이들도 이곳에서 배를 타고 떠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구운몽으로 유명한 서포 김만중도 남해로 유배가서 결국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망덕산이나 배알도니 이름이 생긴 것도 유배가는 이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난 땅이름이 아닐까. 유배지인 남해로 떠나기 전, 한을 품고 한양땅 임금을 바라보는 곳이어서 산이름을 '망덕(望德)'이라 일컫고, 대전에 엎드려 있던 자신의 모습을 되새김하며 섬 이름을 '배알(拜謁)'이라 지었을 수도 있다. 혹은 죄 없는 자신을 유배시킨 임금을 탓하며 이곳을 '망덕(亡德)'이라 부른 이도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짐작만 할 뿐이니 옛사람들의 뜻을 곡해했을까 두렵다. 어떤 일이든 바르게 펴기는 힘들어도 비틀고 뒤집는 일은 '여반장(如反掌)'과 같은 법이니 이곳에 이름을 붙여준 이의 이해를 바랄 밖에 도리가 없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