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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체벌에 대한 나의 입장을 밝히자면, 체벌반대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부정하고자 함이 아니라, 다른 어떤 곳도 아닌 학교 현장이라면 더욱 어렵지만 이상을 추구해가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교사가 학부모의 폭력에 노출되었다는 점 또한 염려한다. 교사와 학부모는 학생의 발달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서로 협력하는 관계여야 하지, 이처럼 폭력이 난무하는 관계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전제 아래, 최원호 기자의 교육칼럼 "체벌은 '구속'의 불씨인가"하는 이 칼럼을 읽으면서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이 문제는 철저히 칼럼 자체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자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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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무리 칼럼이지만, 사건의 경위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학생과 학부모의 행동, 그것도 부정적으로만 해석한 그들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보니, 교사의 행동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교사가 자는 아이에게 어떤 이유로 자는지 물어보았는지 했는지, 사전경고가 있었는지, 잠을 잔 행위가 교무실로까지 아이를 부를 만한 일이었는지, 아이와 학부모는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최소한 알려고나 했는지 글을 통해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둘째, 최원호 기자는 교사의 학생체벌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하다.

"엉덩이를 막대기로 서 너대 가량"라는 말 속에 이미 체벌은 별 것 아니라는 감정이 들어가 있다. "부정적 효과"를 가져오기는 하지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하루에도 수 차례씩" 행하는 것을 체벌이라고 인정하니, 이 사건의 체벌이 과연 정당했는지를 물어볼 의지도, 지각도 없는 것이다.

뺨을 맞았다는 이 간단치 않은 일(뺨을 맞는 일은 매를 맞는 것보다도 인격적 모독이라는 깊은 상처를 남긴다. 나 역시도 그러하고, 우연히 오늘 이야기를 나누게 된 사범대생도 그런 얘기를 했다)도 "(학생이) 책상과 의자를 어지럽히는 과격한 행동을 보였고, 그 때문에 교무실에서 뺨까지 얻어맞은 학생"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즉 학생의 행동이 "과격하면" 교무실에 불러가 (아마 교무실에 있는 모든 교사들이 다 보는 앞에서이리라!) 뺨을 때리는 것쯤은 괜찮다는 생각이다.

세째, 학생과 학부모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감정적이다.

아이를 묘사하는 글 어디에도 아이의 입장에 서보려는 의지는 없는 것 같다. 교육이 교사만의 것이 아니라 학생과 함께 하는 행위라면, 교사를 중심에 두는 것만큼이나 학생의 심리나 처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을 터이다. 하지만 기자의 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이는 "수업태도가 불량하고" "과격하고" "그대로 집에 가버리고" "아버지를 구속시키는 불씨"가 되는 따위의 오로지 "비행청소년", "자기통제박약자"로 존재할 뿐이다.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서도 "교권을 짓밟고 교육 붕괴를 가속화시키는 저해요인으로,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일" "자기통제력을 상실"한 자, "부모로서 바람직한 역할을 기대하기 곤란한 자"로 설명한다.

넷째,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는 협력관계여야 하지, 전적으로 위탁관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부모가 교사를 폭행하는 행위는 도저히 있어서도 용인되어서도 안 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최원호 기자의 학부모관은 확실히 나와는 다르다. 그는 "아이를 학교에 맡긴 이상 학교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학교측에 책임을 위탁하는 학부모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적고 있는데, 이는 학부모와 교사를 공동협력자로 보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학부모는 학교와 교사의 행동에 대해 묻고 상담하고 건의하고 항의할 권리가 있다. 아이를 맡겼다고 모든 일을 위탁할 수는 없다. 학교라는 공간은 교사와 학부모, 학생의 적극적인 의견개진과 협력이 있을 때 비로소 교육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잊은 게 아닐까.

다섯째, 학부모의 폭력행위에 대한 의견은 분명 과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들이 당한 체벌 때문에 학부모가 달려와 교사를 폭행해야 하는 이러한 교육현실은 자칫 학교라는 곳이 학생들에게 폭력을 가르치는 폭력학습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금치 못하게 한다." 이런 최원호 기자의 생각은 학생들의 상식을 믿지 않기에 과장된 것이다.

보통의 학생들이라면 학부모에 의한 교사 폭행사태를 보고 따라 배워야 한다거나 그 폭행이 옳다고 생각치 않는다. 그런데도 최원호 기자는 학부모들의 폭력에 의해 학교가 마치 "폭력학습장"이 되는 듯이 적고 있다. 오히려 학생들이 학교에서 폭력을 학습하게 된다면, 그것은 학교에서 학생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폭력, 혹은 교사에 의한 폭력 때문일 것이다.

여섯째, 학교가 모든 일을 담당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문제를 가정으로만 떠넘겨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최 기자는 "청소년들의 폭력이나 비행은 '자기통제력' 발달에 따라 지배되는 것으로 이러한 자기 통제력은 가정교육을 통해서 조절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특히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적고 있다. 당장 입시만으로도 정신을 차릴 수 없는 학교 공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지식교육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또한 입시교육 위주가 아니라 하더라도 학교는 모든 문제의 근원지도 아니다. 그렇다고 청소년의 비행, 폭력 문제를 온전히 가정에서만 책임질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가정교육만으로 충분할 것 같다면야, 굳이 학교에서 '도덕'이니 '사회'니 하는 과목을 공부할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듣지 못하는 채, 몇 년째 학교에 가방 싸들고 다녀야하는 아이들에 대한 걱정, 학교교육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무엇에 있겠는가?

교육을 둘러싼 수많은 사건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나 자신 청소년 공부방에서 일하면서, 어쩌면 교육계의 담론, 특히 언론을 통해 유포되는 담론에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하기에 이 글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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