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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선을 앞둔 시기, 신문의 편파·불공정·왜곡보도에 대한 감시운동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대표세대인 3,40대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희망네트워크'(www.hopenet.or.kr)의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가 7월 9일(화) 김창수 민족회의 정책실장의 칼럼을 출발로 홍세화씨의 <이회창씨의 '비국민'론과 조중동>으로 이어간다.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에는 김창수씨 외에도, 방인철 전(前) 중앙일보 문화부장,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 문학평론가 김명인씨,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최민희 사무총장, 권오성 목사, 상지대 서동만 교수, 김택수 변호사, 한서대 이용성 교수, 소설가 정도상씨, 대학생 오승훈씨 등 각계 전문가가 참여한다.

이처럼 다양한 구성을 가진 '13인위원회'는 일간신문을 주요 대상으로 한 지속적인 모니터링 작업과 함께 칼럼 형식의 신문비평을 <오마이뉴스>에 지속적으로 기고할 예정이다. - 편집자주


▲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저자 홍세화씨.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서해 교전이) 우리 어민들이 어로 제한선을 넘은 행위 때문에 자초된 것이라는 식의 보도는 참으로 한심스럽고 개탄스러운 일", "이런 식으로 이번 일을 정략적으로 호도하고 물타기 하려 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일부 어민들이 어로저지선을 넘어 조업한 사실을 보도한 MBC 등에 한나라당의 주요당직자회의가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비판한 이튿날 이회창씨가 던진 말이다.

과연 누가 이번 서해 교전 사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는지 "'햇볕'이 교전 불렀다"고 단언하는 <조선일보>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조선일보>가 '햇볕'을 비틀면서 안보상업주의를 펴는 데 대해선 익히 잘 알고 있는 터였다. 하지만 강력한 대선 후보인 이회창씨가 자기와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고 규정한 것은 새로운 일이다.

국가보안법 개폐에 반대하는 한나라당이 국회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에서, 그 당의 대선 후보인 사람이 자기와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비국민"으로 규정할 때, 또 그것이 거대 언론에 의해 용인될 때, 과거 독재 시대로 돌아가지 않으리라고 장담하기 어려워진다.

이 후보의 '비(非)국민' 규정은 '황국신민'들만 국민이 될 수 있다고 강제했던 일제시대의 일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런 발언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대권을 움켜쥐고 군대, 검, 경찰, 정보 등의 물리력을 동원하여 비국민을 사회에서 배제시키려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만약 <조중동>이 그들 스스로 주장하듯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수호하려 한다면, 이회창 후보의 발언에 담겨 있는 전체주의적 성격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켜 마땅했다. 그러나 물론 그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회창 후보에 의해 비국민으로 규정된 MBC 등 다른 언론에 공세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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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통상 일부 언론에 의해 보도된 기사의 편파와 왜곡에 대해 비판을 한다. 그러나 이번 경우처럼 이회창 후보의 '비국민'론에 대해 약속이나 한 듯한 조중동의 침묵 역시 비판받아 마땅하다. 사회적 공기인 언론이 마땅히 해야 할 비판적 역할을 방기할 때, 이것 역시 또 다른 형태의 편파와 왜곡이며 부작위 범죄인 것이다.

오늘의 거대 언론은 권력을 견제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정치권력에 대한 견제라는 언론 본연의 소명을 뛰어넘어 권력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하는 권력 그 자체라 할 것이다. 그들이 신봉하는 자유민주주의도 그들의 사익을 위할 때만 유효하다.

그들의 권력 의지는 "동아일보 폐간론" 운운했다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취중 발언에 대해서는 물고 늘어지게 하지만 "창자를 뽑아버리겠다"는 이회창 후보의 취중 발언은 문제 삼지 않게 한다. 이 후보의 비국민 발언이 독재와 전체주의로 연결될 수 있는 위험을 말해주는 것이다.

아직 집권도 하기 전인 한나라당이 벌써 언론 통제에 나서고 있는 것일까, 특히 이회창 후보에 대한 비판에는 재갈을 물리려고 작정한 듯하다. <한겨레> 기고문을 문제 삼아 정경희씨에게 5억원 손배소를 청구했는가 하면, 아들들의 병역 문제를 다시 다룬 <오마이뉴스> <신동아> <일요시사> 등에 손배소송을 제기하였다.

아들 둘이 병역을 필하지 않은 사실이 자랑할 일은 분명 아닌데 그처럼 공세로 나오는 것은 그들의 오만성을 빼면 설명하기 어렵다. 거대 언론과 한통속이고 국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며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당의 대선후보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을 비국민으로 규정할 때 그 사회는 이미 독재의 길로 들어선 것이 아닐까?

이회창 후보는 "당신의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으나 당신이 그 견해를 발표할 자유만은 옹호한다"고 볼테르의 말을 인용한 적이 있다. 언론사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언론 탄압이라면서 비난하는 과정에서였다. 시민단체의 낙천낙선 운동 때에는 "실정법 위반"이며 "악법도 법"이라더니 세무조사엔 "정의로운 법만 법"이라고 했던 사람이다.

이처럼 말바꾸기를 자유자재로 하는 이회창 후보이지만 그의 '비국민'이 '국민'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후보의 국민/비국민의 잣대는 이후보의 편인가 아닌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여지없는 '비국민'이다. 20년만에 여권을 받아 대한민국 국민이 될 수 있었던 나는 다시금 비국민의 처지가 되어야 하는가보다.

덧붙이는 글 | 희망네트워크(www.hopene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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