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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ious Artist - 안녕하세요 카바레 사운드입니다
Various Artist - 안녕하세요 카바레 사운드입니다 ⓒ 배성록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 '레이블'이란 개념이 존재하는가? 예전에 그런 시절도 있었다. 동아기획이 건재하던 '좋던 시절'엔 그랬다. 내놓는 작품마다 뛰어났고, 히트를 기록했고, 무엇보다 음악적으로 통일감이 있었다. 동아기획이라는 딱지를 보면 신뢰감이 생겼고, 결코 후회하는 일이 없었다. 적어도 92년 이전까지는 그랬다.

그럼 요즘에는 레이블이란 게 없단 얘긴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굳이 따지자면 SM 같은 곳도 레이블은 레이블이다. 연예 제작사에 더 근접한 곳이라 그렇지. (게다가 그 회사와 소속 가수의 관계는 레이블과 뮤지션의 관계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드림 팩토리도 레이블이다.

여긴 좀 사정이 낫긴 하다. 열심히 만들고, 그럭저럭 들을만 하고, 제작한 음반들 간에 연결 고리도 있다. 이것뿐인가? 아쉽게도 한국 음악 시장이란 곳이 그 수준이다. '오버그라운드'라는 동네에 떠오르는 레이블이 그게 다라니. 그런데 오버도 아니고 인디 바닥에서 5년여를 꾸준히 음반제작에 매진하며 꿋꿋이 버티고 있는 '레이블'이 있다니, 이건 주목할 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곳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카바레 사운드'이며, 소개할 음반은 그 레이블의 5주년 편집음반인 '안녕하세요 카바레 사운드입니다'이다.

카바레 사운드는 지금으로부터 5년여 전인 96년, 현재 카바레의 대장인 이성문의 EP '불만'을 내놓으며 그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그리고 현재까지 12장 가량의 음반을 발매하며 꾸준하고 근근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 편집음반의 부클릿을 보면 알겠지만, 카바레가 만들어온 음악들은 그다지 단순하게 설명될 부류의 것이 아니다. 카바레는 그간 레게부터 브리티쉬 포크, 테크노, 서프 음악에 이르기까지 온갖 장르를 도입하는 실험실이 되어 왔다. '로파이'라는 인디의 미학에 충실했고, 주류 시장의 상업적 공식보다는 적게 찍어 팔더라도 자존심을 지키는 행보를 이어 왔다. 이런 일은 한국에서 그다지 쉬운 '짓'은 아니다. IMF로 튼튼한 기업이 죄다 거덜나고, 대기업들이 음반 산업에서 줄줄이 손을 떼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돈 안되는 음악을 해 왔다는 사실은 부클릿에 있는 말마따나 '경의를 표할 만' 하다.

CD는 두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두 번째 CD에서는 카바레가 발표한 음악들을 겉핥기 식으로나마 살펴볼 수 있다. 무성의해 보이는 보컬과 성깔있는 가사, 의도적인 로파이와 아마추어리즘으로 무장한 이성문의 '노래 1'을 비롯해, 미친 듯이 돌리는 볼빨간의 '지루박을 돌려요', 서프 뮤직과 길거리 공연의 전도사 '오!부라더스'의 '순정', 정통 브리티쉬 포크를 구사하는 위치 윌(Witch Will)의 'Golden Boy'등은 얼핏 보기에는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카바레가 만든 작품들이 일관된 요소를 갖추고 있음을 파악하게 만든다.

바로 '아무도 하지 않던 음악의 완전한 차용'이다. 브리티쉬 포크도, 거라지 록도, 레게도, 레그타임 피아노도, 국내의 그 누구도 제대로 손대본 적 없는 스타일들이다. 그것을 특별한 정제 작업이나 국지적 변형 없이 거의 원래 형태 그대로 소화해내는 카바레의 음악은 비평적인 관점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린다. 다시 말하면, 외국 음악 장르를 고대로 똑같이 만드는 작업이 올바른지 어떤지에 대한 판단력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앞으로 카바레가 보여줄 음악의 방향이 몹시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 해답은 첫 번째 CD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정용 피아노를 위한 프로젝트'가 들려주는 레그타임 피아노 연주와 각종 잡음의 어우러짐, 버스라이더스(Busriders)가 선보이는 본류에 가까운 레게 음악, Damon & Naomi를 연상시키는 플라스틱 피플(Plastic People)의 슬로우 코어, 노을준(Nouljune)의 보사노바,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연상시키는 Sweet Jane의 거라지 록 등 온갖 스타일이 총망라된 첫 번째 CD를 통해 우리는 카바레가 앞으로 무엇을 해 나갈 것인지 파악할 수 있다. 발견할 수 있는 첫 번째 사실은, 이 밴드들이 거짓말같은 오리지널리티를 가졌다는 점이다. 가령 버스라이더스의 'Drive Reggae'는 웨일러스의 음악을 커버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창적인 색채를 뿜어낸다. 스웻 제인의 '주먹쥐고 일어서' 역시도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What Goes On'의 커버이지만, 그러면서도 부정할 수 없는 독자적 의미를 지닌다.

이게 카바레라는 레이블의 작업 방식(로파이, 저예산, 인기 음악 조류 무시하기, 순수 작가주의)에서 유래하는 것인지, 혹은 외국의 스타일이 한국어 노랫말에 실려 불러질 때 발생하는 화학적 변화 때문인지는 판단을 유보하겠다. (칼럼니스트 오공훈은 이 해명 불가의 현상에 대해 "길거리에 흔하게 굴러다니는 그런 종류의 음악이 아니었다. 물론 완전히 '독창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구석이 있었지만, 뭔가 다른 건 사실이다. 그 '뭔가'가 나를 사로잡았다.

이 음악은 한마디로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음악이었다. 상업성은 눈꼽만치도 없는 순수한 모습의 음악이었다"라고 구술하고 있다) 여하튼 카바레 사운드는 '어, 이건 아무개 음악과 유사하잖아'라는 반응이 나옴과 동시에 '하지만 독특하군'하는 반응을 유발한다. 하긴, 오리지널리티란 것 자체가 괘멸된 상황인데다, 카피 밴드가 발전해서 오리지널을 창조하는게 다반사이니 그런 엇갈린 반응도 당연할런지 모른다.

카바레 사운드는 어려운 여건과 많지 않은 판매고에도 불구하고 '레이블'로서 자존심과 존재감을 꾸준히 지켜 왔고, 확장해 왔다. 아마도 이들에게 남은 몇가지 과제는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그간 지향해온 영미 음악 스타일의 차용을 한단계 위의 오리지널리티로 승화시키는 작업. 그리고 '마타도어'처럼 이름만으로도 막강한 파워로 작용하는 레이블로서 카바레를 지켜나가는 것. 이 둘을 카바레가 일궈낼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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